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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저승 최후의 날 1~3 - 전3권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아란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평점 :
지구 멸망의 날, 저승은 과연 무사일까?
SF 적 상상력과 민속 신앙에 대한 연구가 만나 본격 저승 판타지가 탄생했다. 누구도 미리 가보지 못해서 당연히 미스터리인 저승 세계가 마치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생하게 책 속에서 묘사된다. 칼날이 잎처럼 매달린 나무가 자라는 사출산이라는 저승 입구와 삼도천 위를 오가는 열차 그리고 구름 차를 타고 다니는 염라대왕의 비서실장까지, 책 속에서 묘사되는 저승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전통적 모습과 사뭇 달라 보였다. 그러나 망자들이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심판을 받은 후 새로운 삶, 즉 환생을 위해 나아가는 곳이라는 면에서 전통 사료에서 흔히 묘사되던 사후 세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이 책은 지난 2019년 <대멸종>이라는 제목으로 줄간된 안전가옥 앤솔로지에 수록된 단편 [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 ]을 장편화한 책이다. 그것도 3권씩이나. 그때와 주제는 비슷하다. 저승을 믿는 신앙을 가진 이승 사람들의 기억 덕분에 존재하는 저승 세계. 만약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사망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책이다. 대단히 파격적이고 신선한 주제라고 여겨져서 그때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번에 읽은 장편은 훨씬 스펙터클한 장면과 복합적인 인물들 그리고 다양한 저승들이라는 배경이 더해져서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했다.
천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호연은 민속학 전문가인 친구 예슬과 함께 알두스라는 별을 관측하러 천문대로 향한다. 가는 길에 알두스 별이 폭발하고 주위가 환해지던 그때, 그들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바로 저승길에 오르게 된다. 그들은 칼이 번쩍이는 사출산에 떨어지지만 구조대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저승 내부로 도달한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하고 바로 수많은 사망자가 갑작스레 발생하면서 저승에 비상이 걸린다. 큰 전쟁이나 돌림병일 때도 그런 경우도 없었기에 염라대왕을 중심으로 비서실장 기영과 저승의 관리들은 대규모 사망자 사태에 대한 진상 파악에 들어간다.
한편, 별이 폭발하는 장면을 본 후 사망했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이어지면서 호연은 알두스 초신성이 붕괴하며 내뿜은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선 때문에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망했을 거라는 가설을 세운다. 비서실장 시영은 천문학 전문가들을 모으고 그들의 의견을 수집해 본 결과, 호연의 가설이 옳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의견을 교환하던 중, 자신들이 믿는 종교에 따라 각각에 맞는 저승행을 가게 된다는 이야기, 즉 저승도 결국 이승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호연은 신앙이 소멸되면 저승세계도 함께 없어지지 않겠냐는 또 다른 가설을 떠올린다. 그러한 그녀의 가설은 모두의 두려움과 저항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 소수가 믿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저승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위기의식은 팽배해지는데....
3권이라서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왔지만 페이지 터너라고 할까? 흥미로운 설정과 스릴 넘치는 전개로 책장은 정말 술술 잘 넘어갔다. 특히 현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 저승의 모습과 대멸종의 시대가 되는 바람에 더 이상 망자들을 사람으로 환생시킬 수 없어서 갈등을 하는 장면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사실 저승 하면 큰 죄를 저지른 망자를 엄벌에 처하는 염라대왕의 서슬 퍼런 모습을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현대화된 저승에서는 망자가 스스로 반성하는 시스템을 구현한다. 그리고 동물과 식물마저 방사선으로 죽어버린 탓에 망자들을 방사선이 미치지 않는 물속의 생물, 물고기나 미생물로 환생시키자는 아이디어에서는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정말 한계가 없이 뻗어나간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승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가설에 부합하는 근거가 하나둘씩 자리를 잡으면서 대책 마련에 힘쓰는 저승 세계의 관리들. 각 분야별 전문가과 함께 논의를 한끝에 저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사망하지 않게 만들거나 생존자들이 저승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된다. 그들은 미래의 생존자들이 저승을 알 수 있도록 경전을 쓰기로 함과 동시에 과거에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한 신앙의 경우가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신앙이 되살아났을 때 과연 저승 세계로 되살아났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완전히 사라졌다가 다시 발굴된 북유럽 신앙에 나오는 저승 세계 중 하나인 발할라를 찾아 지도도 없고 GPS에도 없는 저승 간 여행길을 떠나게 되는 비서실장 시영과 호연... 그들은 과연 소멸의 위기에 처한 저승을 구할 수 있을까?
아포칼립스 장르가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비장함과 평범한 영웅들이 절망을 이겨내고 세상을 구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동시에 즐기고 싶은 독자들은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동시에 사후 세계를 믿지만 과학 지식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별이 폭발하면서 벌어지는 저승 위기 탈출극인 저승 최후의 날, 다양한 독자층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