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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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신이 어디에 있듯 나는 이해한다.”

[가장자리]는 단편 소설집이다. 위태롭게 삶의 가장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곳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이들의 삶은 위험하고 힘들고 불안하고 어둡다. 각 단편들은 충분히 묘사되고 서술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의 한 장면을 마치 사진 찍듯이 포착해 내는 작가. 글은 온통 이미지로 가득하다. 어떤 이야기들은 불온하지만 동시에 매우 아름답다.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보여주기를 원하는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 그녀는 우리가 읽기보다는 경험하고 느끼길 바란다. 물처럼 유연하지만 몸처럼 감각적인 그녀의 글.


우리는 삶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삶의 가장자리에서 헤매고 있을까? 책을 읽다 보니 가장자리에서 허둥대는 것은 책의 등장인물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든지 완전히 소속되지 못한 비주류라고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저자 리디아 유크나비치는 매일매일 고비를 느끼며 경계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전쟁 피난민, 장기 배달자, 성매매 여성, 학대받는 여성, 성 소수자, 마약 중독자, 노숙자들의 충격적인 삶이 걸러지지 않은 채 여러 단편 속에서 검은 꽃처럼 피어나고, 그들을 바라보는 독자, 정확히 말해서, 나는 심장이 찔리는 듯한 신체적 고통을 실제로 느낀다. 그녀는 비극과 불행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다.

단편들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을 살펴보자면


The pull [이끌림] 은 대단히 아름답게 묘사된 소설이다. 우리는 물에서 태어나 물로 되돌아간다는 걸 보여주는 듯한 작품. 물이 하는 얘기를 들으며 물과 한 몸이 되길 즐기던 소녀는 탱크와 미사일이 수영장과 그녀의 세상을 파괴한 후 피난길에 나선다. 피난선은 바다 중간에서 멈춰버리고 멀리 떨어진 해안가를 향해 용감하게 헤엄치는 소녀와 언니.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바닷속 그녀들은 살기 위해 싸운다. 누가 그녀들을 바다로 빠뜨린 건가?


“ 헤엄치는 여자아이와 언니의 아름다운 몸, 그 밑의 거대한 물을 향한 이끌림, 뗏목 위에서 가망 없이 희망하는 사람들의 눈동자와 심장을 향한 이끌림, 그들 주변에서 끓어오르는 거대하고 그릇된 세계를 향한 이끌림의 끝은 - 이 이야기는 결말이 없다 ”

The organ runner [장기 배달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주인공 아나스타샤는 8살 때 손목 절단 사고를 당해 한쪽 손을 거의 못 쓴다. 사고 이후 가족들에게 버려진 채 다른 가족에게 입양된 그녀. 세상은 불친절했고 그녀는 장기 배달부로 자라나게 된다. 인위적으로 맺어진 가족들 중 키릴이라는 남자애는 오랫동안 아나스타샤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장기를 팔고 다른 누군가는 이식을 받는다.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강하게 자라나 희망을 엿보는 아나스타샤가 대단하게 보였던 작품. 그러나 결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다.

“아나스타샤는 미국을 생각했다. 잔혹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찢어지고 꿰매어진 그 기이하고 기형적인 소위 ‘주(state)’라는 것들을, 발 위에 꿰매놓은 손처럼 여전히 위태로운 주와 주 사이의 경계선을 생각했다. ”

Street Walker [거리 위의 사람들] 안전하고 한가로운 동네. 언젠가부터 피 묻은 주사기가 발견되고 거리를 떠도는 남녀가 눈에 띈다. 한때 마약 중독자였던 주인공은 떠돌며 살 수밖에 없는 성매매 여성의 힘든 삶에 깊이 공감하고 그녀를 집으로 초대해 1시간의 휴식을 준다. 동네 사람들은 마약과 성매매를 퇴치하려고 순찰대까지 조직하지만 수선 떠는 그들의 모습이 두려움에 몸과 정신이 마비된 좀비 같다고 느끼는 주인공.

"우리는 전부 균열을 품고 살아간다. 균열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아니면 균열이 모든 것을 허물어트리면 켜켜이 쌓인 살갗과 지방과 주택 보유자의 삶이, 깔끔한 머리 모양과 잘 먹은 화장이 남는다."


충격적이고 불편하지만 동시에 기괴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작품 [가장자리] 이 책 속 단편들은 물처럼 어둡고 물처럼 무의식적이며 물처럼 유연하다. 문장은 물처럼 흐르고 물처럼 강렬하고 물처럼 리드미컬하다. 스토리라기보다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각 단편들은 날것 그대로의 표현과 강렬한 묘사로 독자들의 마음속에 쑥 하고 들어온다. 누군가에게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불행과 비극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는 듯한 저자.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는 강렬한 고통 속으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간다. 가장자리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헤엄쳐서 삶에 도달할 우리 모두를 위해서 쓰인 책 [가장자리]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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