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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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카시의 친절함을 저주하고

성실함을 저주하고 아름다움을 저주하고

특별함을 저주하고 약함과 강함을 저주했다.

그리고 다카시를 정말 사랑하는

나 자신의 약함과 강함을 그 백배는 저주했다.

제130회 나오키상 수상 작품인 단편소설집 [울 준비는 되어있다]는 에쿠니 가오리 작가 특유의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로 여성의 사랑과 삶을 이야기한다. 다소 드라이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대단히 세련되고 감각적인 필체가 돋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인 틀은 사랑과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인간 실존을 말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저자는 사랑 앞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외로움을 담아내고 있다. 활짝 피었다가도 어느 순간에 저버린 꽃잎처럼 찰나의 생명력을 가진 사랑..... 우리는 가끔 그것 앞에서 절망하기도 한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는 각기 다르지만 비슷한 총 12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격렬한 감정이 동반되는, 사랑의 시작과 끝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저자는 시종일관 남과 거리 두듯이 등장인물들의 감정 표현에 거리를 둔다. 이야기는 담백하고 가볍고 깔끔하게 전개가 된다. 그래서인지 주인공들의 좌절이나 고통이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치 날카로운 면도칼에 베이면 처음에는 상처가 보이지 않다가 점점 피가 번지듯, 이야기를 읽고 나면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지면서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이 올라온다.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에서 주인공 야요이는 요양병원에 계신 시어머니를 외면하고 끝내는 시어머니가 맡긴 고양이마저 내다 버린 남편이 낯설기만 하다. 남편이 고양이를 버렸다는 사실보다 그가 농담처럼 던진, 바다에 버렸다는 말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놀랍기만 하다.

" 문제는 고양이의 소재가 아니다.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을 텐데."

[뒤죽박죽 17살 소녀] 평범했던 17살 소녀 마유미의 어색했던 첫 데이트 이야기. 날씨는 좋았지만 데이트 상대의 형편없는 운전 실력과 이상한 태도 때문에 모든 게 최악으로 느껴졌던 데이트이다. 그러나 아름답지도 않았고 푸근하지도 않았던 그때가 계속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결국은 모든 것이 즐겁지 않았다. 우리는 할 일도, 할 얘기도 없었다. 히로토와 같이 어디를 가기는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골] 이혼하기로 한 부부 시호와 히로키 부부는 이혼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시댁에 방문한다. 시댁 식구들은 시호와 히로키가 좋아하지도 않는 마작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하고 시호에게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겨우 자리를 파하고 홀가분함을 느끼는 시호와 히로키. 시호는 누군가의 허물처럼 보이는 잠수복, 차갑고 텅 비었지만 주인의 체온을 상상하게 만드는 그것을 히로키에게 선물한다.

"우리 한때는 서로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이제 아무 느낌도 없어."

[울 준비는 되어 있다] 건강한 영혼을 가진 다카시와 풍요롭고 행복한 연애를 했던 주인공 아야노. 하지만 다카시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 뒤 그런 감정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한 사랑이었는데....

" 나는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다카시도 나도 변했는데 어느 쪽도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 둘 다 영원히, 사막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프링클러일 수 있다고, 쉬 믿었다."

[울 준비는 되어있다]에 나오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눈물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고 슬픔의 바다를 건너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에 성공하여 결혼이라는 제도에 안착했든, 뜨거운 사랑 끝에 이별하고 혼자 남았든, 그들은 상실과 고독이라는 단어를 온몸에 더덕더덕 붙인 채 살아간다. 한때는 자유롭게 사랑했고 그 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었으며 사랑이 끝난 후에도 외로움과 고독이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녀들. 어색하고 서투른 그녀들의 몸짓 속에서 나 자신의 자화상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참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인간은 혼자라는 말이 떠오르게 만든 소설집이었던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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