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
김동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께나 무게에 상관없이 다른 책에 비해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책이 있다. 음식으로 따지자면 서민의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뜨끈한 국밥 같은 책이랄까? 이 책 [사람이 온다]가 바로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김동규 교수는 부드럽고 다정하시지만 굳은 심지를 가진 분일 것 같다. 글에서 향기도 나지만 동시에 뜨겁게 타오르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않는 모습에 분노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모습에 함께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달까?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책, 가짜가 난무하는 세상에 진짜를 구분해 내려는 책, 그런 책이 바로 [사람이 온다]이다.

저자 김동규 교수님은 한양대에서 광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젊은 시절에는 광고 회사에 몸담았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하다가 그만 해고를 당하는 바람에 교편을 잡게 된 듯 보인다. 아직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군사 정권에 대항하는 운동을 하고 직장에서도 노동 운동을 하였다니 가족들에겐 걱정덩어리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그의 젊은 시절이 아름답게 보인다.

"내가 겪은 봄이 그러한 충격이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때까지 믿고 있던 견고한 합리의 세계는 성전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듯 사라졌다. (...) 역사는 진전한다는 것. 사람의 모듬 살이를 지배하는 것은 악이 아니라 선한 의지라는 것. 그러한 모든 신뢰가 파괴된 집처럼 폭삭 내려앉았다."

젊었던 시절 군사 정권의 독재에 맞서서 투쟁하다가 군부대에 감금된 채 모진 고문을 받았던 때를 회상하면서 쓴 글에서, 저자는 한순간에 사람과 사회 그리고 신에 대한 신뢰를 잃었던 것을 고백한다. 신이 있다면 이런 피비린내 나는 세상을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밤길을 걷다가 무심코 올려다본 밤하늘에 가득했던 별들이 눈 안으로 쏟아지는 경험을 하면서 저자는 모든 시절에 신이 그와 함께 했음을 깨닫는다.

" 그는 열려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진화한 인간이었다. 집권 기간 중의 문제점과 한계를 솔직히 인정했고 그 바탕 위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 사는 세상'의 실체적 내용과 성취를 구상했던 노무현. 그의 죽음이 지금도 애통한 것은, 퇴임 이후 그의 안에서 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구체화되었던 '새로운 한국 진보 정치의 구조물'이 땅을 다지기도 전에 함몰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솔직하게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가 못마땅한 적이 더 많았노라고. 좌파를 지향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한, 어찌 보면 얼치기 정권이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 노무현을 지극히 사랑했던 저자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망가지고 있는 한국의 정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하기도 한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던 인간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과 비통함이 뚝뚝 묻어나는 글이었다.

"환상이 현실을 대체하는 세상은 불온하다."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는 현상을 일으켜 "시뮬라크르"라고 하는데, 우리가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도 어쩌면 가상이 현실을 대체하는 암울한 상황일 수 있다고 짚어내는 저자. 특히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인공 지능 기계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인간들이 바로 "시뮬라크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기계가 창조한 환상의 세상에서 행복을 만끽하며 진짜 현실을 잊어버린 비루한 인간들.... 어쩌면 그런 인간들의 모습이 바로 가상 현실에 웃고 우는 우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라고 그는 지적한다.

오랜만에 책 다룬 책을 읽은 느낌이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진짜 어른을 만난 느낌도 든다. 사람 위에 군림하지 않는, 알량한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진짜 지식인을 만나 것 같기도 하다. 저자 김동규 교수에게서는 서슬 퍼런 에너지도 느껴지지만 정말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세월호 아이들의 비극에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하고 그런 사고가 발생하도록 내버려 둔 정권을 향해 분노하고 원통해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눈을 번쩍 뜨고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조금 얻은 느낌이다. 우리의 소중한 공동체가 한 걸음 더 진보하기를, 보다 나은 세상이 되기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분들께 추천하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