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의 시대 우리 집 - 레트로의 기원
최예선 지음 / 모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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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인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서 가끔 눈에 띄는 단독주택이나 한옥을 발견하곤 한다. 사는 게 있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집들이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거란 생각에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언제 지어졌고 어떤 양식일까? 문득 궁금해진다고 할까. 집이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겐 재테크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고된 하루 끝에 몸을 뉘고 편안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기도 한 것. 각자의 개성에 따라 집은 여러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터, 특정 시기에 지어진 집들은 더욱더 독특한 이야깃거리가 있지 않을까?

과거의 문화유산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저자 최예선씨는 직접 답사하고 리서치하며 실제로 살아보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건축 유산을 밀도 있게 탐구한다. 도서출판 모요사에서 갓 출간된 그녀의 책 [모던의 시대 우리 집]은 격동과 변화의 시기였던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 사이 우리네 집이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옛것에서 새것으로 넘어오기까지 과도기였던 이 시기가 바로 레트로의 기원이라 말하는 그녀, 저자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도슨트처럼 우리를 그 현장으로 친절하게 안내한다.

과도기 시대 집의 정원 풍경은 어떠하였을까? 아파트 속에서도 화분을 여러 개 가꾸며 푸르름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우리. 당시에도 꽃과 나무를 사랑하던 문인들은 정원 가꾸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특히 파초를 좋아했던 문필가 이태준이 머물던 성북동 집의 정원인 수연산방에서 자라나던, 흐드러지는 파초들은 이태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특히 서양 문화에 탐닉했던 작가 이효석이 가꾼 정원은 '잘 익은 살냄새'가 나고 '비밀을 가진 몸 냄새'를 풍길 만큼 실재하는 감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 즉 삶과 영감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수많은 꽃들이 하늘거리는 수연산방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한 인간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모아놓은 자신만의 박물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식물과 글자와 옛이야기와 지나간 시절의 매혹적인 정조를 모두 담아두던 '호기심의 방(분더카머)'이다. 파초 아래 의자를 놓고 앉아 남국의 정취를 몽상하는 비일상의 공간이자, 탄생과 성장과 소멸을 보며 글을 쓰게 하는 영감의 장소다"

가끔 도시의 변두리에 지어진 작은 성당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 때가 있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이지만 왠지 우리 전통 가옥인 한옥을 떠오르게 만드는 건물 라인에 눈길이 가곤 했는데, 이 책에 따르면 1930년대쯤 지어진 대다수의 성당 건물은 서양식 건축과 우리 전통 구조가 혼합되어 지어진 것이라 한다. 어쩐지 벽돌 건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더라니... 특히 벽돌 건축의 걸작이 명동 성당이라 손꼽는 저자. 타오르는 불꽃을 닮은 건축물인 명동 성당은 20세기 전에 완성되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장엄함과 숭고함의 산물이라고 한다.

"벽돌은 글과 분명 닮은 점이 있다. 집착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벽돌은 흙과 불에 대한 집착이며, 벽돌집은 집착이 완성한 건축이다. 흙과 불이 빚어낸 빨강의 산물. 벽돌은 뼈대가 되는 동시에 외피도 된다. 벽돌을 쌓아 올리며 집은 힘을 갖고 무너지지도 불타지도 않는 갑옷을 입는다. 안과 밖이 같은 질감, 같은 색깔이다"


우리 전통 가옥의 구조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고 새로운 공간의 창출로 이끌었던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일제 강점기의 예술가였던 김유방이었다. 그는 근대기 주택 개조론의 첫 문을 연 사람인데, "과연 우리의 집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해방'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엄청난 부호였던 그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 몸을 담그다가 마침내 건축이라는 예술 분야에 눈을 뜨게 된다. 특히 당시 여성들의 노동 공간이었던 부엌과 제사를 지냈던 대청을 언급하며 해방되지 못한 관습과 변화해야 할 마땅한 제도라고 언급하는 김유방. 그는 서구 부르주아 저택이 보여주는 수십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공간에 집중하며 집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지 못하면 부부와 부모 자식도 별거해야 한다는 극단적 선언을 하기도 한다.

"삶이 달라져야 집이 달라지며, 집이 달라지면 삶도 달라진다. (...)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열망이 끓어올랐던 김찬영(김유방의 본명)이라면 당연히 건축이라는 분야에 푹 빠져들 만했다. 모던 시대가 담보하는 신 주택과 신가 정의 풍경, 따듯하고 단란한 근대 가족이 표상하는 풍경을 그가 열렬히 바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일본에 지배를 당했던 굴욕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일까? 모던 시대의 삶과 공간에 대한 그동안의 분석이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30년 당시는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물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창조성과 감각에 의해 새로운 건축 양삭이 도입되고 그에 따라 우리 삶의 방식도 180도로 바뀌었던 시대다. 생각이 바뀌면 삶이 변하고 집의 구조와 집을 채우는 것이 달라지듯, 집이야말로 삶의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저자 최예선.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전통과 모던이 충돌하는 집과 그 속의 여러 가지 것들을 보여주면서 모던 시대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여 현재에 이르렀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모던 시대 집과 소유주들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며 아련한 향수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미래의 공간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된다. 상당한 자료와 사진 등을 통해서 레트로의 기원이 된 모던 시대의 집을 친절하게 소개해 주는 [모던의 시대 우리 집]을 꼭 읽어봐야 할 인문학 서적으로 추천한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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