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전시관
설혜원 지음 / 델피노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설혜원 작가의 [허구의 전시관]에는 기발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7가지 단편 소설들이 실려 있다. 뭐라고 할까? 알록 달록 화려한 표지라는 문을 열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도저히 전개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허구들이 독자들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당긴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환상 동화가 현대물로 재해석되어, 풍자와 해학을 더한 채 현대인들의 부조리를 꼬집고 비튼다. 모든 이야기들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빈한승빈전] 이라는 단편은 인간에겐 자유 의지가 있으나 선택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이야기다. 주인공 빈한은 조선 시대를 살았던 나무꾼이고 승빈은 현대의 한국에서 경찰 공무원을 지망하고 있지만 사실 둘은 같은 사람이고 그들의 삶은 동시에 발생하고 있고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관찰당한다. 마치 RPG 게임 속 주인공 같은 빈한과 승빈을 엿보는 고차원적인 존재가 그들의 삶을 꼼꼼히 데이터화하고 정리하여 상벌을 내린다는 독특한 내용의 이야기.

" 그러나 저들이 불규칙적이라 느끼는 삶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이의 노동으로 적확하게 짜여 집행된 결과이다. 인생의 상벌은 중요한 문제이기에 몇 번에 걸친 심의가 있은 뒤 결재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초인종이 울렸다] 에서 주인공 "그녀"는 꼭 따라잡고 이기고 싶은 세련된 "미영"으로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소개받게 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남루한 옷을 걸친, 얼굴빛도 좋지 않은 도배사 남녀가 "그녀" 앞에 등장하게 되고. 그들의 꼬락서니에 기가 막혔던 "그녀" 가 가정부에게 일을 맡기고 그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거만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그녀" 가 한낮에 들이닥친 불청객들에 의해 참교육을 당하는 이야기. 웃기기도 하지만 잔인한 농담의 향연이 펼쳐진다.

"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소리 질렀다. 연분홍이 아니라 코랄핑크라구. 붓을 든 남자가 벽에 콜알핑크, 라고 썼다. 여자도 붓을 들어 콜알핑크 옆에 짧은 평행선을 두 줄 그리곤 연분홍이라고 썼다. 남자도 여자도 썼다기보다 그렸다."

[디저트 식당]이라는 단편 속, 주인공은 창작 요리를 전공하는 학생이고 요리 창작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흔히 가던 건물의 지하에 디저트 식당이 새로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되는 주인공. 그 식당에 들어간 그는 황홀한 맛과 향기를 풍기는 디저트들 사이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마치 흡입하듯 그것들을 집어 삼킨다. 현실에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던, 50도 각도로 기울어진 피사의 케이크탑을 입으로 가져가던 순간, 디저트 식당의 여주인이 주인공에게 경고의 말을 날리는데... 내용은 비슷하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통해 느껴지는 색감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연상시킨 작품.

" 소실점의 법칙은 이 공간이나 그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과 사물도 관계도, 세상의 모든 것이 그 나름의 소실점을 벗어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하죠. 예컨대 사물의 앞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란 말이에요. 옆모습 뒷모습, 심지어 그 안의 속 모습도 겉모습과는 다르죠."

이 책에는 저 세상에서 바로 건져올린 듯한, 기괴하고도 신기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각 단편들은 럭비공 처럼 앞으로 어디로 튈 지 전혀 알 수 없다. 눈 앞에 펼쳐진 여러 문들 중 하나에 노크하고 입장하면 다시 복잡한 미로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특히 [잉어와 잉여]라는 작품을 읽다보면, 내가 나비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인가? 를 외쳤던 고대의 사상가 장자가 떠오른다. 모든 사물을 차별하지 않았던 정신적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른 장자가 [잉어와 잉여] 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헤엄치는 느낌이다.

환상과 판타지 그리고 풍자와 해학이 어우러져 기묘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소설 [허구의 전시관]. 장르 소설을, 특히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을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