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마치 비트코인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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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선 무관심, 다정한 폭력

차가운 도시의 이면 아래 웅크렸던 몸을 서서히 펼쳐내는 청춘의 기록 "

[인생 마치 비트코인] 은 차갑고 비정한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한편으로는 홀가분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 달까? 외로워서 SNS에 기대거나 돈과 성공을 안겨줄 불투명한 미래를 추구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그런 현대인의 자화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한 오피스텔의 관리인으로 일한다. 그러나 말이 좋아 오피스텔이지 방은 침대 하나 들이기도 벅찬 크기이다. 그뿐 아니라 얇은 벽 때문에 옆집 소음을 참아야 하고 건물이 따닥따닥 붙어있어서 창문을 열었다가 앞 건물의 사람과 눈이 마주칠 각오를 해야 한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이 오피스텔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것도 월세 50에 관리비 12만 원을 내고.

원래 그는 시골 출신이지만 시골 생활에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친구와 함께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용산 전자 상가에서 일하다가 월급을 떼어 먹히기도 하고 마트에서 무거운 것을 나르다가 심각한 관절염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도 닥치는 대로 돈을 모았던 터라 종잣돈을 쥐고 있었지만 잘못된 주식 투자로 인해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후 경마장 시절에 알았던 사장님 덕분에 그가 가진 건물 중 하나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403호 입주자가 2달째 월세와 관리비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불길한 예감대로 403호 문 앞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주인공. 역시나 입주자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날따라 청소업체 사장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 주인공은 직접 방을 청소하게 되고, 죽은 이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다가 완전 새것처럼 보이는 아이 신발과 그녀가 직접 쓴 가계부와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의 눈에 비친 살아생전 403호의 이미지는 그냥 게으른 여성이었다. 답답할 정도로 삶에 서투른 듯한 여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녀가 남긴 일기장을 읽게 되면서 주인공은 점점 그녀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소설가로 데뷔까지 했던 그녀는 글을 정말 잘 썼고, 그녀가 남긴 그 일기장을 읽고 난 뒤 그는 유품뿐만이 아니라 그가 정리해야 할 다른 일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 튼튼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다. 여자 역시 403호의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있었다니. 나와 403호 둘만의 비밀이 아님에도, 일기장을 봤다는 이유로 나는 세상에서 그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인 양 착각했던 것이다 "

그냥 잔잔하게 흘러가는 소설이구나..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가슴속에 뭔가 묵직한 감정이 쑥 들어왔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그 감정이 느껴진 것은, 주인공이 죽은 이의 일기장을 탐독하게 되는 시점부터였다. 살아있을 적에는 투명 인간에 불과했던 한 사람의 존재가, 죽은 후 누군가에게 이렇게 크게 다가오게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의 이면, 어느 그늘진 곳에 참으로 고독하고 또 고독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탁월한 필력으로 묘사한 [인생 마치 비트코인]. 작품성 뛰어난 한국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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