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 이브 생로랑 삽화 및 필사 수록본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브 생로랑 그림, 방미경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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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담 보바리는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절망적인 혼란 상태에 빠진 여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남자인 플로베르가 어쩌면 이렇게 여자의 마음을 잘 알았을까? 싶을 정도로, 고전문학 [마담 보바리]는 순진하기 짝이 없던 아가씨가 잘못된 사랑의 열정에 휘말려 점점 타락하게 되는 상황을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다. 마담 보바리, 즉 엠마가 한때의 불장난 같은 사랑, 혹은 성애에 빠져서 인생을 조금씩 잃어버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누구에게 인지 모를 울화통이 터져나갔다. 엠마를 꼬여낸 뒤 냉정하게 차버린 양아치 로돌프에게 인지, 아니면 엠마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몰랐던 둔한 남편 샤를에게 인지, 아니면 소중한 인생을 시궁창으로 던져버린 엠마 본인인지... 하여간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울화통이 터져나갔다. 이것은 고전인가? 아니면 고전의 옷을 입은 " 부부의 세계 " 인가?

샤를 보바리와 혼인하여 마담 보바리가 되기 전, 엠마는 농장을 꾸리는 아버지를 도와서 성실하게 집안을 관리했다. 만약에 샤를이 엠마 아버지의 다친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서 시골로 오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그녀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혹시 모르지, 근처에 사는 비슷한 수준의 농부나 장사꾼과 결혼해서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았을지도.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샤를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과 결혼한 엠마의 모습이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깊고 검은 눈동자의 아름다운 엠마, 그녀는 귀족의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무도회에 가서도 남자의 시선을 끌고, 빛을 발하는 그런 종류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이기 전에 너무나 평범한 샤를. 샤를은 그녀가 그냥 아내로 자신의 곁에 머물러 주길 원했다. 자신을 위해 집안 살림을 도맡고 남편을 지지해 주는 그런 종류의 여인 말이다. 샤를은 성공한 사람이지만 지루한 편이고 관습대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융통성 제로. 아내와 좀 더 친밀해지고자 노력은 하는데 어쩐지 둘의 사이는 삐걱거리기만 한다. 샤를이 낭만적인 사랑 혹은 열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너무나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샤를은 성실하고 아내에게 충실하지만, 엠마가 책을 통해서 배운 이상적인 " 사랑 "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사랑의 언어와 제스처를 모르는 사람이다. 엠마는 사랑이 너무너무 고파서 죽을 지경이다.

좌절과 절망은 쌓이고 쌓여, 마침내 고여있던 흙탕물이 썩어가는 것처럼 그녀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 낯설지만 환상적인 남정네들과의 부적절한 애정행각을 몹시도 바라게 된 것. 그러나, 엠마가 책에서 읽었던, 혹은 혼자 상상했던 남녀상열지사는 사실 현실에서는 조금 불가능한 것. 그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부부는 그냥 의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 제 생각입니다 ) 책 속에서 펼쳐지는 환상은,,, 그냥 뭐랄까? 만들어진, 플라스틱 같은 사랑인데 말이다.. 쩝. 어쨌든 남편과의 거리로 인해서 생긴 외로움은 조금씩 그녀를 갉아먹으며 성품까지 변화시킨다. 그녀의 유순했던 성품은 조금씩 음흉하고 세속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아! 내가 만일 엠마의 언니였다면 머리채를 잡아끌고 와서 방 안에 가둬놨을 텐데..... 너무도 안타까운 이 상황. 마담 보바리는 남자들에게 외로움이라는 페로몬을 뿌리고 다니며 그들을 본인 쪽으로 끌어당긴다. 잘생기고 훤칠하지만 여자에게 손톱만큼의 책임감도 없던 양아치 로돌프, 그리고 엠마에 대한 큰 애정도 없으면서 단지 힘든 현실을 잊어보려 그녀를 만난 어린 레옹, 그들과 치명적인 사랑을 시작하게 된 엠마. 엠마는 환상적인 나날을 보냈을 수도 있지만, 그들과의 애정 행각은, 독자들의 예상대로 엠마에게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만을 남기게 된다.

애정행각으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담 보바리에게는 또 다른 큰 문제가 있었다. 남편인 샤를이 돈을 많이 벌었지만 엠마의 어마어마한 물질적 욕망을 다 채워줄 수는 없었다. 당시 플로베르는 돈만 많고 교양이 없는 부자들이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을 많이 본 게 아닐까?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쓸데없는 물건을 구매하고 애인들의 애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에게 비싼 물건을 사주는 엠마의 욕망이 가득 찬 두 눈동자가 보이는 듯하다. 그녀는 결국 돈만 밝히는, 매우 부도덕하고 사악한 상인인 뢰뢰에게 걸려서 차용증을 계속 쓰던 끝에, 원금을 훌쩍 넘어서는 채무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남편인 샤를이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은 시간문제, 그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자신의 인생과 샤를, 그리고 소중한 딸의 인생까지 쓰레기통으로 처박은 것을 깨달은 엠마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되는데....


한심한 마담 보바리라 손가락질 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과연 엠마만 비난을 들어야 하나? 여기서 마담 보바리의 편을 들자면, 그녀는 사실 책을 많이 읽고 호기심도 많고 지루한 현실보다는 가슴 뛰는 이상을 바라는, 그런 인물로 묘사된다. 여자에게 제한이 많았던 당시 사회 말고, 그녀가 시간 여행을 해서 현대 사회로 왔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 거라고 본다.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는 작가가 되었을 수도, 예술가가 되었을 수도, 혹은 큰 사업체를 이끄는 리더가 되었을 수도 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부적절한 애정 행각과 그로 인한 금전의 손실이 그 당시에는 큰 논란을 낳았을 수도 있지만, 엠마가 지금 살아있다면? 과연 서로 맞지 않는 샤를과의 결혼 생활을 그냥 유지하고 살았을까? 그냥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양아치같은 남자를 만나건, 한참 연하를 만나건, 사랑에 실패하고 눈물바람으로 삶을 살아가더라도 그건 자신의 몫. 엠마에게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천재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그린 삽화 13점이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열 다섯 살에 그렸다는 삽화는 당시 귀족들의 사교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면도 있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주인공 마담 보바리의 아름다운 모습과 순수했던 순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남자들과 춤추며 행복해하는 엠마...... 앞으로 있을 불행은 전혀 모른 채 홍조를 띤 얼굴이 슬프게 보이기까지한다. 이 책 [마담 보바리]가 고전이기에 현대물을 읽는 것보다는 힘들 거라는 예측을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대책 없는 이 마담 보바리가 빵빵 터트리는 사건에 가슴 떨면서 책에 푹 빠져들었다. 사슴 같은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엠마, 마담 보바리. 그녀의 이야기가 오늘 내 가슴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더 이상 그녀를 판단하게 되지 않는다, 단지 슬플 뿐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리뷰를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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