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어교사
유디트 타슐러 지음, 홍순란 옮김, 임홍배 감수 / 창심소 / 2021년 12월
평점 :
" 16년 전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잊혀진 사랑, 묻혀진 과거, 지울 수 없는 낙인
시간은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운명은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잔인한 신들은 주사위를 던지고 인간의 운명을 가지고 노는 듯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교사 마틸다와 작가 크사버의 운명도 그러하였다. 물론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너무나 어리석은 인간들이기에 흔히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를 하는 법이다. 이 책
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이 책 [국어교사]는 추리소설의 요소가 있긴 하지만, 한 편의 장편 드라마? 혹은 대하드라마를 시청한 느낌이 든다.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사랑, 그러나 곧이어 뒤따른 잔인하고 추악한 배신. 누군가의 엄청난 성공이 펼쳐지고 그 후 이어지는 인생의 실패...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좌절 등등 인생에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주제들이 녹아들어있다.
대학 시절 만나 첫눈에 서로 반하게 된 마틸다와 크사버. 그 후 10년 가까이 서로와 함께 하지만, 열정적이고 충실했던 마틸다에 비해서 크사버는 삶과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마틸다는 크사버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함께 기르며 인생을 나누길 원했지만 크사버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마틸다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그녀의 곁을 떠나버리고 한 부유하고 성공한 여성과 갑작스럽게 결혼을 발표하고 아이도 낳는다. 마틸다는 잡지를 통해서 그의 소식을 알게 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과 아이를 가진 그를 보며 처참한 기분을 느낀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어느 날,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마틸다는 청소년을 위한 창작 워크숍을 개최하게 되고, 강연자로 크사버가 초대된다. 굉장히 반가워하며 이메일로 마틸다의 근황을 묻는 크사버에 비해서, 마틸다는 차갑기 짝이 없다. 16년 전 크사버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복수의 칼날을 품었을 듯한 차가운 대답. 참으로 기묘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만남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이 글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현재와 과거가 순서에 관계없이 교차된다. 읽는 와중에 크사버가 그때 왜 그랬는지, 마틸다는 왜 그랬는지, 아이스크림의 껍질을 조금씩 벗겨먹는 것처럼 이야기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마치 액자식 구성처럼, 크사버의 할아버지 이야기와 마틸다가 지하에 가둬놓은 누군가의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책을 다 읽어보기 전까지는 그 이야기가 누군가의 상상인지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고 해야 할까? 작가는 우리의 현실은 비현실 속에서 탄생하고 비현실은 현실을 창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순한 맛이었다. 엄청 매운 맛을 가진 책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미친 듯이 사랑했지만, 처절하고 잔인하게 배신을 당한 여인이 있다. 그녀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완전 범죄를 노린다. 그리곤 연인을 영원한 고통에 빠뜨릴 만한 짓을 저지른다. 그러나, 그녀가 소설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그들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모든 비밀들은 진실과 거짓의 한 중간에 놓여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놓여있달까? 창작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러한 것처럼. 책을 다 읽고 모든 이야기의 내막과 진실을 알고 나면 진심으로 큰 감동이 몰려온다. 책의 띄지에 등장하는 " 사랑과 배신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커다란 주제를 한편의 실내악처럼 장인적인 언어로 엮어냈다." 라는 수상 사유가 딱 어울리는 책 [ 국어교사 ]
- 이 서평은 출판사의 협찬으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