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자를 쓴 여자 새소설 9
권정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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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자를 쓴 여자]는 고딕 장르를 현대물로 옮겨온 듯하다.

검은 모자에서 검은 고양이까지, 온통 검은색이 책을 장악하고 있다.

겉으로 봤을 땐 별 이상이 없는 듯 보이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주부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끊임없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도대체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공무원 준비를 오래 했던 민은, 시험 준비에 지쳐갈 무렵, 마치 운명처럼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완벽한 남자라고 볼 수 없지만 세심하게 민을 챙겨주는 남편 덕에

스스로 결혼 생활이 행복하다고 세뇌하며 살아가는 그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출장과 외박이 잦아지기 시작하고

민은 어떤 장소를 가더라도 자신을 따라붙는 눈길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약수터에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아들 은수를 잃게 되는 민.

훗날 생각해보면 풀숲에서 번뜩이던 눈빛이 분명히 있었다.

슬픔에 젖어 살아가던 부부 앞에 교회에 버려진 아이와 한 고양이가 나타나고

부부는 과거처럼 행복하게 살아갈 희망을 품으며 그들을 입양하게 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입양 이후 민을 둘러싼 상황은 더욱 더 이상하게 돌아간다.

반려견은 눈을 심하게 다치고, 사랑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에게 아주 불길한 저주를 내린 것만 같다.

웬만한 공포 소설을 읽어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스멀스멀 다가오는 공포를 느꼈다.

민이 마주하고 있는 소위 "악" 혹은 "불안" 이 마치 끝없는 어둠처럼

느껴져서였다. 그녀는 바닥없는 우물에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은수가 죽은 후 민은 헌 옷 수거함 옆에서 검은 맥고 모자를 쓴 채

자신의 아파트를 뚫어지듯 바라보는 여성을 발견한다.

미소를 짓는지 울고 있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

도대체 [검은 모자를 쓴 여자]는 뭘까?

민에게 그녀는 자신의 가정을 위협하는 제 3의 여자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무너져내려가는 민이 불행의 이유를 찾기 위해 애써 만든 환상일 수 있다.

[검은 모자를 쓴 여자]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실체일 수 있지만

동시에 허구와 망상 일 수도 있다.

우리들 마음 속에도 있지만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도 있다.

과거에도 존재했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며

세상에 창조되었을 때도 있었지만 멸망할 때 까지도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 왼쪽과 오른쪽이, 위와 아래가,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고 동그라미 안에 뒤섞여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

[ 작가의 말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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