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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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전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살아난 남자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내 목숨을 끊으러 "

언젠가 미스터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 시간여행자 " 편이 소개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화기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듯한 몸짓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휴대폰으로 보이는 듯한 장치를 귀에 대고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던가 스포츠 경기 관람 중 휴대폰으로 보이는 것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물론 사진이 조작되었거나 착시 현상으로 인한 잘못된 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실제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 있다면 어떨까?

이 책의 주인공 진은 사회의 낙오자 중에서도 최하급들이 몰리는 강원 카지노의 한 전당포에서 일하고 있다. 카지노는 온갖 범죄와 타락의 온상지이다.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린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어떤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 도박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칩을 훔쳐 달아난다. 현금을 다 날리고도 미련이 남은 도박꾼들은 죽은 자리를 떠도는 지박령처럼 카지노를 떠나지 못하고 소유물 ( 시계, 핸드폰, 차 등등 ) 을 야금야금 팔아서 현금을 확보한 뒤 다시 대박을 노리기도 한다. 카지노라는 배경에서 풍기는 어두움과 SF 의 재기발랄함과 상상력이 만난다면 과연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까? 꽤나 독특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책 [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 를 만나보자.

주인공 장진은 성사장이 운영하는 한 전당포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도박판 지박령들이 맡기는 물건의 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하여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한지를 알아보는 일인데, 어느날 재수 없는 일에 휘말리고 만다. 다른 전당포에서 이미 확보한 차를 확인하러 갔다가 그 전당포에서 나온 무리들에게 쫓기게 된 장진. 한참 두들겨 맞고 어느 공중 화장실에 숨어들어가지만, 화장실에 그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다. 왜냐하면 같은 시각 장진은 이미 자신이 일하고 있는 성 사장의 전당포에 가 있었기 때문.

사실 장진에게는 비범한 능력이 있었다. ' 포트 ' 를 만들어 ( 아마도 웜홀 같은 개념? )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 무리들에게 쫓기던 날도 스스로 깨닫지 못했지만 ' 포트 ' 가 형성되어 공중화장실에서 성 사장의 전당포로 바로 넘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능력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을 그는 곧 깨닫게 된다. 성 사장의 왼쪽 손가락 중 2개의 마디가 왜 절단되어 있는지를 알게 되고 ( 포트가 닫히기 전 제때 빠져나오지 못하면 절단됨 ) 아빠와 새엄마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느낀다. 사실 에너지는 어마어마하지만 아직 ' 포트 ' 능력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던 장진, 그러나 능력을 키우면 키울 수록 무시무시한 힘이, 자신을 해칠 의도를 가진 힘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데......

눈깜짝할 사이에 시공간을 넘나드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대개의 독자들은 아마도 기쁨의 탄성을 지를 지도 모른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현장에 직접 갈 수도 있고 비행기 값이 없어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능력이 나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면 어떨까? 능력 때문에 목숨을 내놔야할 상황이 온다면? 아마도 그런 능력을 심어준 신을 원망하거나 아니면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를 올릴지도 모른다. 이 [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 속의 장진은 원망도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빌지 않는다. 다만,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할 뿐. 마치 먹이를 쫓는 하이에나처럼 자신을 뒤쫓는 무리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을지...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소설 [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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