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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즐거운 조울증
기타 모리오.사이토 유카 지음, 박소영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5월
평점 :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였던 기타 모리오 ( 원래 이름은 사이토 소키치 ) 와 딸인 사이토 유카 사이에 이루어진 일종의 대담집이다. 일평생 조울증으로 힘들었던 저자 기타와 아버지의 조울증으로 인해 아마도 더 힘들었을 가족 ( 딸 유카, 아내 기미코 ) 이야기인데, 엉뚱하게 그지없는 작가의 여러 에피소드들 덕분인지, 심각하다기 보다는 시종 일관 유쾌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대담집이다.
아기 유카를 키우던 신혼 시절에는 다소 평온하게 흘러갔나보다. 여행을 즐기고 약간 독특한 유머감각을 갖춘, 괴짜같은 남편 기타 모리오씨에 비해서, 유카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기미코는 다행히 현모양처 스타일이라 딸 유카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성실히 돌보는 일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저자 기타씨도 약간 무심하긴 했어도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나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제목에도 나와있듯이 기타씨에게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들이닥친다. 그것은 바로 " 조. 울. 증 " 조증과 울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병이 발생한 것이다. 울증일 때는 잠만 자던 기타씨에게 조증이 찾아오면 그는 열정과 에너지로 가득 찬다. 영어, 중국어를 동시에 배우고 난데없이 영화 제작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기타씨.
그는 돈이 많이 드는 영화 제작을 위해서 주식 거래를 시작힌다. 하지만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터라 주식 거래가 잘 될리가 없다. 결국엔 돈을 다 잃고 파산하게 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돈을 빌려 홍콩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 (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낙천적이라고 해야할지... 당시 1인당 5만엔이었다고 하니 지금 가격으로는 몇백만원 했을 듯 )
그 뿐 아니라 조증이 올때면 아내인 기미코와 유카를 친정으로 내쫓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리고 밥을 먹다가, " 바보야! " 라고 소리를 지른다든가 자신만의 독립 공화국을 세우기도 했다는 기타 모리오씨. 그런 아버지의 정신적 질환으로 인해서 심적 고통을 겪었을 수도 있을 가족들이지만 딸과의 대화는 시종 일관 유쾌하기 짝이 없다. 아마도 딸인 유카가 괴짜같은 아버지 기타 모리오씨의 유머감각을 그대로 물려받아서인듯하다.
" 영화를 만들고 싶어. 영화를 만들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니까 오늘부터 주식거래를 할거야 " 라고 하더니 증권사와 주식 거래를 시작했어. "
( 70쪽 기타 모리오가 조증에 걸려 주식 거래 시작 )
" 이 몸은 원대는 대로 살 테니 집에서 나가 " 라고 했어. (...) 기미코도 유카도 집에서 나가! " 라고 말했어. (...) 나와 엄마를 집에서 쫓아내서 나는 외갓집에서 초등학교에 다녀야 했어."
( 72쪽 기타 모리오가 가족을 내쫓는 장면 )
" 초등학교 6학년 때 한번 파산했지? 진짜 파산. 하지만 그때는 다들 돈에 대한 감각이 없어졌는지 아빠가 홍콩으로 여행 가자고 해서 당시 가사도우미였던 나나짱까지 다 같이 돈을 빌려서 홍콩에 갔잖아."
( 84쪽 파산 후 다같이 여행을 떠나는 장면 )
과거를 회상하며 딸과 다정하고 유머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기타 모리오 저자. 젊은 시절 갑작스럽게 찾아온 증상 때문에 괴짜같은 행동으로 가족들을 괴롭힌 부채감을 이 대화를 통해 조금은 내려놓는 듯 하다. 딸인 유카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어머니 몰래 콜라를 마셨던 추억같은 것도 공유하며 아버지와의 대화를 한껏 즐긴다. 아버지 때문에 딸 유카가 괴로웠을까? 아니면 즐거웠을까? 대답은 직접 책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오래된 친구같은 아버지와 딸의 대화가 너무나 흥미롭고 즐거웠던 에세이 [ 아빠는 즐거운 조울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