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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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는 여자였다.

언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모르는 여자였다. "

자고 있다가 갑자기 잠을 깼는데 어두컴컴한 산 속에서 구덩이를 파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구덩이를 파고 있는 나의 곁에 시체 한 구가 놓여있다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너무 놀라서 기절초풍할 것이다. 이는 이 책 [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 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 염지아 " 가 겪는 상황이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이중 인격 혹은 의학적으로 말해서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는 여성이다. 지아가 어릴 적에 눈 앞에서 어머니가 군인에게 사살당하는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난 후 그녀는 " 혜수 " 라고 불리는 제 2의 인격을 가지게 되었다. 염지아는 소심하고 겁많은 그냥 평범한 여성이지만, 엄청난 스트레스가 몰려올 경우에, 평소의 염지아는 의식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 혜수 " 라는 제 2의 자아가 그녀의 몸을 차지한다.

문제가 있다면, 이 혜수라는 인물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 싸이코패스 " 라는 것이다. 굉장히 흉폭하고 난폭한 인물, 아니, 오히려 냉정하고 교활한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던 염지아가 하루는 다른 요양 보호사와 작은 마찰을 겪게 된다.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던 염지아는 그대로 의식을 놓아버리고 그때 혜수가 출현하여, 상대방의 손바닥을 연필로 뚫어버린다. ( 엄청나지 않습니까? 후덜덜 ) 이로 인해 더 이상 요양원을 다닐 수도 없고,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게 된 지아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돌봐주던 재필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 지아와 혜수의 경계는 그곳에 있었다. 혜수는 은밀한 악, 어둠, 구역질 나는 뒷골목, 선한 사람의 등을 처먹는 일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 사기꾼,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범죄자의 영역에 있었다 "

그러던 어느날, 염지아는 자신의 몸을 빌린 혜수가 그동안 재필 아저씨와 성관계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뱀 같은 혜수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직장을 잃게 만들고 저런 식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게 만들자 분노와 염증을 느낀 지아는 아버지에게 약간의 돈을 받고 집을 나온다. 그런데 집을 나오는 길에 자신이 손을 다치게 만들었던 요양 보호사의 남편인 덕호를 만나고 자신을 위협하는 덕호에게 두려움을 느낀 지아는, 일부러 칼로 자해를 하여 혜수를 불러낸다. 찢어질 듯한 웃음 소리와 함께 등장한 혜수, 그와 동시에 아득하게 멀어지는 덕호의 목소리 뒤로 혜수가 만들어낸 환영이 펼쳐진다. 돌아가신 엄마를 만났다가, 개구리같은 복장을 한 군인도 만났다가, 땅으로 꺼졌다가 하늘로 솟기도 하면서 정신을 잃었던 지아는,, 갑자기 깨어난다. 그리곤 자신의 손에 들린 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서울에 있던 지아는 어느새 묵진의 조대산에 내려와 있었고 낯선 여자의 시신을 땅에 파묻고 있었는데.......

푹 자고 일어났는데, 살인자가 되어있다라.... 정말 끔찍하지 않을까?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라고 시작되는 노래도 있는데, 이 다중인격이라는 병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도대체 어떤 충격과 공포 그리고 고통이 사람의 인격을 두 갈래로 만들어버리는 것일까? 두 갈래, 세 갈래 혹은 여러 갈래로....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한다는 건 정말 공포 그 자체일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내 몸을 도둑맞는 것이지 않는가? 선한 사람이면 또 몰라... 범죄자의 영역에 속하는 인물이 내 몸을 빌려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정신을 차린 후 찾아간 집에서 확인한 결과, 자신이 19년동안 혜수의 정신으로 살았다는 경악할 만한 소식을 듣게 된 염지아. 그동안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남의 손에 연필로 구멍을 내고도 아무렇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고 아무렇지 않게 구덩이에 파묻은 혜수의 그동안의 행적을 파헤치기 위해서 이제 염지아가 나선다. 이제는 혜수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다. 굳게 마음 먹은 염지아는 묵진에 내려가게 된다. 마치 무덤처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지역 묵진. 한때 번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더러운 찌꺼기로 가득한 마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아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인물들이 있다. 지아가 묵고 있는 모텔의 층수를 세거나 밑에서 기다렸다가 그녀를 미행하는 인물... 그는 과연 누구이고 왜 염지아를 쫓고 있는 것일까?

지아가 묵진으로 오게 되면서, 몇몇 드러나는 사실들이 이 이야기를 더욱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머지는 읽는 사람들의 몫!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점점 흥미로워진다. 이 책의 저자 하승민은 신인 작가 답지 않게 필력이 대단히 풍부하고 이야기의 구성도 잘 짜는 듯 하다. 표현력도 풍부하고 뭐라고 할까? 이야기에 완전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염지아와 혜수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에게 푹 빠져서 읽다보면 책장이 저절로 넘어간다.

지아는 과연 혜수를 없애고 난관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꿈 속에서도 등장할 듯한 강력한 존재감이 돋보였던 이야기 [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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