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트리플 5
장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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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얼굴 안에서 조금씩 조용히 소용돌이치는 세계

단편집 [ 마음만 먹으면 ] 은 그동안 트리플 시리즈를 거쳐간 다른 젊은 작가들처럼 실험적인 작품들이 실려있지만 하나같이 어딘가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든다.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각 작품에 대한 이러한 키워드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우선, 등장 인물들의 억눌러진 폭력성, 경계가 확실한 세계와 그 주위를 맴도는 이방인들, 그리고 그 이방인들도 선뜻 남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는 것. 자연스럽게 오고 가지 못하는 감정은 결국 어딘가에서 뭉치고 곪아 있다가 언젠가는 터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들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미묘하게 폭력성을 내비치는 것 처럼.

단편집의 첫번째 작품 [ 곤희 ] 에서는 갓 단독 판사직을 수행하게 된 주인공 " 나 " 가 등장한다. 인간의 선의만을 믿고 원칙대로 내린 그녀의 판결 이후 피고인은 자살을 해버렸다. 세상을 모르는, 치기어린 신입 판사에게 내려진 부장의 벌칙은, 보육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야 하는 곤희 라는 여성을 잠시 돌봐주는 일. 누가 봐도 곤희는 사회적 약자이고 보육원에서 사건에 가까운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정황이 있다. 그러나 결국 곤희의 사정을 외면하게 되는 " 나 " 는 자신의 세계에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곤희의 무언의 메세지를 받기도 했지만 초짜 판사의 치기어린 공명심으로는 구제할 수 없는 세상, 경계가 확실한 세계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조금씩 부장이 내리는 테스트의 정답을 찾아가게 된다.

“ 함께 있는 동안 알게 된 거지만 곤희는 자신의 불행을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어쩌면 그런 교환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몰랐다. 아이는 부끄럼 없이 불행을 전시하고, 누군가는 그 불행을 구경할 티켓을 구입한다. 그렇다면 곤희는 정신의 스트리퍼였을까. 그애가 하는 건 정확히는 교환이라기보다 제공에 가까웠다. 곤희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가 원하는 걸 알아. 그걸 줄게 ”

두번째 작품 [ 마음만 먹으면 ] 에서는 하루 아침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거식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한 소녀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에는 병원에 있었던 과거와 이제는 어린 딸을 두게 된 현재가 교차하면서 그녀가 왜 거식증이라는 병에 걸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짐작하게 만드는 과거 엄마와의 에피소드와 자신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현재 딸과의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과거 정신 병원에 있던 시절, 조현증에 걸린 듯한 환자인 피자 이모를 대하는 보호사들의 모습과 주인공에게 비전문적인 치료를 행하는 의사의 모습을 통해서, 이 정신병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과거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 있던 그녀는 딸을 양육하는 와중에, 자신이 왜 거식증에 걸리게 되었는지의 원인을 조금씩 파악해 나간다.

" 엄마는 본인에게만 흥미로운 소식을 내게 전해주었다. 막냇삼촌이 신붓감을 인사시켰다고 했다. ( .... ) 영리해 보이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엄마는 한숨 쉬었다. " 귀가 짝짝이더라 ." " 나는 우산이 없어! 나는 우산이 없어! 나는 우산이 없어! 나는 세 번 소리 질렀다 "

[ 새끼 돼지 ] 는 발달 장애를 가진 사촌 오빠의 아내인 이주여성 호아가 잠시 친정인 베트남에 가 있는 사이 그들의 아이인 하엘이를 잠시 맡게 되는 사촌 동생의 이야기이다. 사회적 약자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하엘이는 어른들의 무관심과 폭력적인 태도에 노출되면서, 일종의 눈치, 즉 때와 장소에 따라 스스로를 끼워 맞출 줄 아는, 조숙함을 가진 소년이 되었다. 아들을 원했던 남편과 하엘의 이국적인 외모에 반한 딸 수빈이의 열광적 애정 공세로 하엘이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인 듯 보였는데.... 그런데 한번 이방인은 영원한 이방인인 것일까? 하엘이는 가족과 하엘 사이에 놓여있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허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조금씩 나 있던 가족 사이의 균열을 통해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찾아보려한 걸까? 한국도 아니고 베트남도 아닌 무국적자로 보이는 듯한 하엘의 분노어린 주먹이 눈에 선하다.

" 제발....." 나는 눈두덩을 누르며 말했다. " 남 일에 간섭하지 마."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 이제 나는 안다. 나는 남편이 아니라 하엘에게 말했다. 네가 우리에게 있어 남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었다. (...) 하루라도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는게 하엘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의도를 찾아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이 책은 작가가 독자를 향해 숨바꼭질 놀이를 하자고 제안을 해온 것 같은 .. 그런 느낌이 든다. 추측하고 파악하고 나름의 결론을 한번 내려보세요.. 라고 하는? 혹은 굳이 메세지를 찾아내거나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읽고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을 만끽하라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가지 드는 느낌은.. 무감정 혹은 무감동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감추고 공처럼 돌돌 아버린 감정은 이상한 방식으로 증폭되어 작품 내내 분위기를 긴장시킨다. 각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이 어색하고 쭈뼛거리고 편치 못해 보인 것이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싶었다. 인간 관계 혹은 인간과 세상과의 역학 관계를 고민하게 했던 작품 [ 마음만 먹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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