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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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잃을 수 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이 되기만 한다면

이 책은 한 나라의 몰락과 파멸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불운이라는 악마가 휘감아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베네수엘라를 그려내고 있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무덤에 묻힌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신의 무덤을 파헤쳐 같이 묻힌 소장품을 훔쳐가고, 정부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를 벌인 자들은 지하에 있는 감옥에 끌려가서 두들겨맞거나 총구로 강간을 당하고 결국에는 사지가 절단되기도 한다. 물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하여 현금 수십 뭉치로도 약을 살 수 없어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책을 들여다보자면,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가 이제 지옥으로 변했고, 시민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죽인다.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시민들은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여 재산을 뺏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믿는 정도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베네수엘라의 지옥과도 같은 상황은 다른 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때때로 보도되기는 하지만,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세세하고 심각하게 보도되고 있지는 않다.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지옥과도 같은 상황.... 책이 현실을 얼마나 담고 있는 걸까?

사실 책이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저자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와 주인공이 정말 많이 닮아있다는 점이다. 서른대의 나이, 언론계에서 근무했다는 점, 피난을 갔다는 점 등등... 그런 것만 봐도, 한때 어깨를 감싸 안았던 이웃이 이웃을 약탈하고 공격하고 강간하는,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진실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주인공 아델라이다의 일인칭 관점에서 쓰여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제대로 된 병원치료도 받지 못하고, 약을 구하지도 못해 세상을 떠야만 했다. 아델라이다는 이제 어머니도 없고 연인도 없는 혈혈 단신이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사회 불안은 점점 심해져서 이제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독자들은 그녀의 어머니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혁명의 아이들이라는 테러 집단과 정부와 손잡은 여러 무리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는 상황을 보게 된다. 결국, 아델라이다의 아파트에 정부와 손을 잡고 사람들을 약탈하고 재산을 앗아가는 무리의 여자들이 침입하여 아델라이다는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자신의 옆집 여인인 아우로라 페랄타가 어떤 연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스페인 여권을 이용해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소설을 읽고 있자니 분노와 슬픔 그리고 아픔이 몰려온다. 우리 나라도 한때 정부와 군부의 군화발에 우리의 이웃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또다시 그러한 비극을 경험하는 나라를 지켜보자니 너무 안타까웠다. 아델라이다는 이제 베네수엘라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처럼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서 온 힘을 다 하고 있지만 사실 일단 탈출하고 난 뒤에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지 계획은 없다. 사실 그녀는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삶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절실하다.

이 책은 난민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죽음과 삶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삶을 향하는 누군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효과적으로 그 느낌을 전달하는데는 조금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생과 사의 중간에서 자칫하면 어둠의 골짜기로 낙하할 수 있는 아델라이다의 절실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조금 덜 전달되었지 않았나 싶다, 좀 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표현과 속도감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산티아고와 아델라이다의 만남, 여자 보안관이 이끄는 테러 집단들의 침입 그리고 옆집 여자의 죽음 등등등 몰입감이 있는 장면들이 있긴 하나 이야기가 조금 늘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어쨌건 지옥과도 같이 변해버린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이 책을 통해서 너무나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써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폭력과 만행을 자행하는 정부와 사람들을 보며 분노에 치를 떨어야 했다. 우리에게 잊지 못할 과거를 생각하게 해 준 [ 스페인 여자의 딸 ]. 희망을 잃어버린 채 탈출 준비를 하던 아델라이다는 지금 무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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