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트리플 4
임국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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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수진은 한 만화영화가 완결 날 때마다 말로 다 표현할 길 없이 서글펐다.

결말을 본 순간 수진은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홀로 퇴장하거나 추방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사랑하던 그들은 이제 나랑은 무관한 세계에서 씩씩하게 살아가겠지 ”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집에 돌아가면 나를 맞이하는 건 어둠이 살짝 깔린 작은 방 그리고 TV 였다. 부모님은 직장일 때문에 바쁘셨고 언니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러나 현실의 친구보다 더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TV 속 존재들이었다. 둘리와 친구들이 뭉쳐서 심술남 고길동을 괴롭힐 때 함께 웃었고 ( 어른이 되어보니 참... 어진 아저씨였다 길동님 ㅠㅠ ) 달려라 하니에서 하니가 엄마를 그리며 달리기 할 때 그녀와 함께 울었다.

그러다 만화가 끝나면? 나는 어두운 방 한 구석에서 외로움에 몸서리쳐야했다. 지독한 허무함이라고 할까? 가상 속 세계에서 항상 기쁘고 즐겁고 별 걱정없이 함께 놀아주던 친구들이 그날의 임무를 마치고 사라지면 나는 비참하고 외롭고 힘든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매일 매일 만화에 허덕였던 나는... 방구석 애니키드? ㅋㅋ 어쨌건 나를 키워준 건 적어도 7할이 만화였다. ( 이 상투적인 문구 ㅋㅋㅋ )

이 책 [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 도 만화,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와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외롭고 초라하고 남루하기 그지 없는 현실을 벗어나 가상의 세계로 날아가면 엄청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과 함께 매직봉을 휘두르며 불의에 맞서는 공주가 될 수도 있고 강호를 쥐락펴락하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짜릿한 모험 속에서 우정과 사랑 그리고 실연과 단절을 통해 인생을 배운 그들을 만나보자.

첫번쨰 이야기 [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 속 만경은 일 때문에 아버지가 항상 집에 없어서 저녁 시간이 널널한 수진의 집에서 함께 만화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낸다. 비록 만화라는 영역에서는 확고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투명한 존재인 만경은, 인기 많고 활달한 수진을 보며 그녀를 선망한다. 어느날, 오빠에게 쥐어터진 수진을 불쌍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얻어맞은 날도 이상야릇한 기쁨에 휩싸인 만경은.... 어쩌면 매직봉을 휘두르는 수진을 따라다니는 집사역할을 택한 건지도 모르겠다.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고도 친하게 지내던 그들은, 함께 미술 동아리에 가입하게 된다. 거기서 특정 만화 속 주인공을 빼다박은 지수를 만나게 되는 만경. 그는 지수에게 한 눈에 반해버린다. 이대로 수진과 지수 그리고 만경이 만화 속 주인공들 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천년 만년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현실은 어찌 이다지도 가혹한건지. 어느날 수진과 지수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만경은 그날로 그들과 인연을 끊게 된다. 그들의 세상이 무너지고 말았고 이제 과거는 어른이 된 만경의 기억 속에서 파편화된 이미지로만 존재하게 되는데....

[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 속 3편의 작품 -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코인노래방에서, 추억은 보글보글 - 은 등장 인물들의 관계로 인해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 1편에서 혹은 2편에서 조연으로만 존재하던 수진 오빠와 만경 형의 브로맨스가 3편에 등장하고 2편에는 만경과 수진의 못다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펼쳐진다. 끝이 찝찝했던 영화의 속편이 이어지면서 뭔가 완결이 난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작가의 필력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레트로의 느낌을 물씬 살려줘서 그런지, 이 책의 작품들은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등등 우리가 한창 감성이 예민할 적에 느꼈던 친구들과의 우정 사랑 그리고 동성 친구들에게 품곤 했던 이상 야릇한 마음 (?) 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고 있다. 터프한 언니한테 반해서 꽃과 초콜렛을 갖다 바친 추억이 보글보글 솟아 오르고 예쁜 친구에게 한 눈에 반해, 친구 이상의 마음을 품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 참 민망하지만 ) 떠오른다. 그때는 내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성장통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임국영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매우 신선하고 톡톡 튀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고 현실을 그려내는 감각이 남다른 것 같다. 그냥 나와 우리들의 학창 시절, 멋모르고 까불던 시절을 그대로 책으로 옮겨놓은 것 같아서 읽는 동안 너무 너무 즐거웠다. 이 책을 색깔로 치면 무지개색? 음악으로 친다면 옛날 노래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 같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 상투적 문구 2 ) 나를 낳아준 것이 부모님이었다면 나를 키워준 건 그들이다. 브라운관 ( 지금은 패널 ) 속에 존재하는 그들 - 정의를 위해 싸우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 이 나머지를 채워줬다고 하면 너무 큰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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