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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평점 :
" 두 시대, 두 인종, 두 가족
한 발의 총성으로 깨어나는 도시의 암울한 역사 "
미국이라는 다인종 국가에서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 문제는 비단 오늘 내일 문제가 아니다. TV에는 백인 경찰들이 무장하지 않은 흑인들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도 " Black Lives Matter, Too ( 흑인들의 삶도 소중하다 ) "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최근에는 코로나와 관련해서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거나 폭력까지도 불사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많은 듯하여 심히 우려스럽다.
그래도 현재는 인터넷과 같은 채널을 통해, 우리가 실시간으로 이런 일들을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모르고 지나간 사건도 허다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 중에서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온 사건이 있었다. 바로 " LA 폭동 "인데, 백인 경찰들이 흑인인 로드니 킹을 무차별 구타하고는 아무런 법적 처벌 없이 넘어가서 거기에 분노한 흑인들이 일으킨 폭동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흑인들은 당시 LA에 살던 아시아인들을 향해 분노를 폭발했다. 그들의 가게에 침략해서 물건을 훔치고 생명을 빼앗고 건물에 불을 질렀다. 혐오가 혐오를 낳고 폭력이 폭력을 낳았던 것일까?
이 책 [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는 LA 폭동이 발생했던 시점과 현재를 오고 가면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인종 간의 혐오와 갈등을 다루고 있다.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을 다루고 있는 데다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어서 생생한 현장감이 전달된다. 비록 인종과 인종 사이에 발생한 폭력을 다루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용서와 희망이라는 빛을 비추는 듯하여 좋았다. 단지 흥미 위주의 스릴러가 아닌, 진정으로 사회적 모순을 돌아보고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 간의 화합을 모색해보는 작품인 [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 속으로 들어가 본다.
주인공 숀 ( 아프리카계 미국인 ) 은 어릴 적 슈퍼를 운영하던 한 한국인 여자의 손에 누이 에이바를 잃었다. 단지 우유를 사러 들어갔을 뿐인데 그 작은 아시아계 여자는 누이가 우유를 훔치러 온 것으로 착각을 했고 거기에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에이바는 한국인 여자가 기절할 수 있을 정도로 폭행을 가했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총으로 에이바의 뒤통수에 대고 쏘았고 에이바는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 당시 한국인 여자는 과실치사 혐의를 받고 30년 정도 지난 현재,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숨어서 살고 지내고 있다. 부모를 잃은 채 에이바에게 의지한 채 살아가던 숀은 이제 하늘 아래 실라 이모 한 분뿐이다.
그레이스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2세이다. 그녀는 다른 한인 2세들과 달리, 엄격하고 통제가 심한 한국인 부모님의 말에도 고분고분하게 교회를 다니고 약국을 함께 운영하며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너무 성실하고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부모님이 너무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머니 이본과 큰 마찰을 겪은 후, 부모님과 말도 섞지 않는 언니 미리암 때문에라도 자신이 부모님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했던 그레이스와 그레이스 가족의 삶에 엄청난 변고가 발생하고 마는데....
이 책에는 숀과 그레이스의 가족 외에도 많은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범죄를 저지르다가 교도소에 다녀온 사촌 레이, 교도소에 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오랫동안 그의 부재를 겪어야 했던 레이의 아들,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왠지 부정하고 싶어 하는 듯한 그레이스의 언니 미리암, 그리고 백인이면서 유독 미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 문제에 주목하는 기자... 이 책은 그들의 눈으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바라보고 있다. 어떤 문제는 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비극을 더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는지를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고 해야 할까?
영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가족이 등장하고 한국인 마트와 김밥이 등장해서 꽤 친숙한 소설이었던 [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 그러나, 마냥 가볍게만 다룰 수 없는 주제인 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 그리고 세대를 내려가면서 발생하는 비극을 다룬 책이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한국인들만이 형제 자매가 아니구나. 인간과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요소들 - 가족, 삶, 사랑 등등 - 을 공유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가 아닐는지.. 인종을 가르는 구호 말고,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고 용서할 수 있는 한마디를 마음에 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 [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