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불의 딸들
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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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게 뭔지 알고 싶니?

약한 건 사람들을 자기 소유물처럼 다루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소유라는 것을 아는 게 강한 거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을 다룬 작품들은 특별히 더 감성을 자극한다. 물건처럼 취급받으며 강제로 고향을 떠나와야만 했던 그들의 선조들, 그리고 이후 노예제라는 폭력 아래 신음해야 했던 그들의 모습은 슬픔과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일제의 만행 탓에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우리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하니까.

그들의 모습을 다룬 많은 이야기들이 있긴 하지만, 과거나 현재의 모습을 단편적으로만 비추는데 반해, 이 작품은 3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두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많은 그들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식으로 흘러와서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이국적이거나 낯설게 느껴졌던 그동안의 작품들에 비해서 이 [ 밤불의 딸들 ] 은 매우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책이 줄거리를 펼치는 방식이 참 독특하다. 장편 소설이라고 하지만 마치 단편 소설처럼 느껴지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작은 에피아와 에시라는 두 자매의 스토리가 열고 있다. 이들은 어릴 때 헤어져서 각기 다른 운명의 절차를 밟는다. 에피아는 노예 무역을 지휘하던 영국 장교와 결혼하는데 일종의 매매혼이라, 그녀의 가족은 대대손손 어떤 저주나 벌을 받는 듯 하다. 한편, 에시는 부족 간의 전쟁으로 인해서 노예로 잡혀 미국 대륙에 노예로 팔려간다. 땡볕아래의 고된 노동 그리고 남편의 죽음 등등 엄청난 고난을 겪는 에시, 그러나 그녀의 자손들도 그녀 못지 않는 고난을 내리 겪어야만 한다. 미국에서의 노예 해방은 허울좋은 문구일 뿐,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생각보다 책이 정말 잘 읽혀서 좋았다. 낯선 지역과 이름 때문에 독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경우 에피아와 에시를 비롯하여 그들의 자손들까지 포함, 14명의 삶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역동적으로 펼쳐져서 더욱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다소 호흡이 짧게 느껴지고 한번 애정을 준 캐릭터들이 어느새 스토리의 뒷편에 놓여있다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 예를 들어서 에피아의 아들인 퀘이의 심리묘사가 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그런 거? ) 그래도 늘어지지 않는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미국의 역사 선생님이 노예 제도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좀 더 현장감 있고 생생하게 가르치고 싶다면 이런 책을 이용해서 가르쳐도 좋을 듯 하다. 노예 매매가 어떤 뒷 배경을 두고 시작되었는지 ( 이미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전투를 통해 사람들을 사고 파는 관습이 있었고 ) 영국이나 미국으로 팔려간 노예들은 과연 어떤 생활을 했는지 ( 에시가 겪는 고난과 고통 그리고 그녀의 아들인 조와 조의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슬픔이 잘 설명해줄 수 있을 듯 ) 그리고 그 이후 흑인들의 생활은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20대의 소설가가 썼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물론 역사적 사실이나 정보를 사전에 조사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녀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사명감에 의한 것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땅에 갑작스럽게 끌려와 살아야했지만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곳에 살았던 자신의 조상과 그들의 후손인 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정체성을 제대로 짚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있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스토리 구성도 마음에 들지만 등장 인물에 대한 묘사도 잘 이루어진 듯 하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필력이 매우 뛰어나고 풍부하게 느껴진다. 재미와 감동을 골고루 갖춘 역사 소설을 찾는 분들께 추천해드리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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