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건너뛰기 트리플 2
은모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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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했든 안 했든, 결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든 두고 있지 않든

애인이 있든 없든.. 어쨌든 간에 현대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을 곁에 두게 되고

관계를 맺게 된다. 배부르면 만족했던 예전에 비해서 현대인들은 이제 관계의 질을

염두에 두게 된 듯 보인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이 생존을 보장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보다는, 이제,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한가?를 고민하는 우리들.

그래서인지, 행복하지 않은 관계를 지속하기 보다, 차라리 혼자 살기를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 경호가 품고 있는 따스함과 단순함. 그 두 가지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연애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도 과일의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도려내듯

필요 없는 부분은 제거하고 원하는 부분만 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누군가와 한집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일의 본질이 거기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자음과 모음 출판사의 트리플 시리즈 2 : 오프닝 건너뛰기를 읽고 재작년부터 시작된

나의 결혼생활이 떠올라서 매우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책의 제목과 같은

[ 오프닝 건너뛰기 ] 에는 갓 결혼한 따끈따끈한 신혼부부가 등장한다.

수미와 경호는 코로나 덕분에 골치 아팠던 결혼식을 건너뛰고 곧바로 결혼과 신혼생활에

돌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마냥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이상을 꿈꿨던 신혼생활은

서로의 성격 차이만큼이나 적나라한 현실로 드러난다. 떡볶이 국물이 튄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자고 뉴스를 보며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 해맑게 막말 (?)을 하는 경호를 바라보며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수미.

“ 경호는 수미가 원하던 적당한 온기를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

그 점을 잘 알고 있건만 옆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과 평생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수미라는 이름으로 내가 쓴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지

도대체 구분이 가지 않았다. 신혼 생활 초반, 의견이 맞지 않아 새벽까지 말싸움을 하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집을 뛰쳐나간 적이 정말 얼마나 많았던가!!!!

하루에도 열 번씩, 내가 미쳤지,를 연발했던 결혼생활...

이게 맞는 건가? 이게 맞는 거겠지? 이게 최선일 거야... 라면 스스로를 설득하던 나와

주인공 주미가 겹쳐 보였다.

“ 수미는 화로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적당한 틈을 사이에 두고 포개진 나무가 타고 있었다.

(..)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뭔가가 하염없이 끊어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났다.”

관계에 대한 정체성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힘들어하는 은우가 등장하는 단편

[ 쾌적한 한 잔 ] 과 계획도 목적도 없이 간 여행에서 영혼의 단짝을 만나는

세영을 그리는 [ 앙코르 ] 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공감을 하고 몰입한 단편은

역시 [ 오프닝 건너뛰기 ]였다. 넷플릭스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지루하게 반복되는

오프닝은 수미의 말처럼 그냥 건너뛰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경호의 말처럼

본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서 보는 게 맞는 걸까?

관계를 그리워함과 동시에 관계 속에서 괴로워한다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 작품 [ 오프닝 건너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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