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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어머니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유아기의 기억,
검은 머리털 묶음,
그리고 네 권의 살인 고백 노트
주인공 류스케는 애견 카페를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해도 자신의 운명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 지에와 결혼을 약속한 뒤 부모님과의 상견례도 마쳤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애견 카페에는 회원이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런데 운명이란 참으로 잔인하면서도 예측불가능하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말기 췌장암 소식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다.
그리고 이번에는 결혼을 약속했던 지에가 류스케의 돈을 빌린 후 잠적해 버린다.
운명이 뻗는 날카로운 훅에 맞아 기절하기 직전이었던 류스케,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 집 장롱 안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이상한 물건을 발견한다.
수십년도 더 되어보이는 공책 4권과 검은 머리칼 한 묶음...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목 ‘ 유리고코로 ’ 가 과연 무엇일까? 의아해하면서 책을 펼쳐보았다.
알고보니 ' 유리고코로 ' 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 평안 ', ' 안정 ' 등을 뜻하는 말인 일본어 ' 유리도코로 ' 라는 단어가 있을 뿐.
장롱에서 발견된 공책은 누군가의 일기장이었고 그 안에서 류스케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한다. 거의 30년도 더 전에 쓰여지기 시작한 그 일기장에는
여러 건의 살인 고백이 들어있었고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를 누군가의 그 행적을
보고 놀란 류스케는 혹시 지에의 실종이 이 일기장의 주인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데......
저자의 이력이 대단히 독특한 소설 [ 유리고코로 ].
저자는 주부에서 승려 그리고 작가로의 변화를 꾀한 정말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이런 종류의 심리 스릴러를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 [ 유리고코로 ] 는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뒷머리가 서늘해지고 머리칼이 쭈뼛 서는 듯한 공포감을 선사한다.
소설 속 등장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우물에 비유하자면, 동전을 떨어뜨렸을 때,
' 쨍 ' 소리가 영원히 들리지 않을 듯한, 끝도 없는 추락을 경험해야 하는,
즉,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심연이라는 공포를 이 책인 [ 유리고코로 ] 가
표현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일기를 통해
누군가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추적해나간다는 면에서
추리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호러나 스릴러에 가까웠던 작품 [ 유리고코로 ]
간만에 짜임새있는 플롯의 일본 스릴러 소설을 읽은 듯 하여 매우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