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에 출간된 이 책은 단순한 탐정 소설이라기 보다 오히려 정치 범죄 스릴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오래 전에 쓰인 책이 현재도 여전히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은 그때와 현재가 어느 정도 공유하는 접점이 있다는 걸까? 사실 그 당시는 범죄가 다소 미화되고 낭만적으로 여겨지던 시절이라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에도 숨겨져있던 정치인들의 부패와 타락, 성 스캔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우리는 여전히 반복되는 범죄와 부패 그리고 비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실 해밋은 미국을 대표하는 범죄 스릴러, 그것도 하드보일드 범죄 스릴러 작가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인지 그의 작품을 읽노라니, 예전에 읽었던 레이먼드 챈들러 작가의 작품도 떠올랐다. 강렬하고 건조한 하드보일드식의 사건 전개와 문체.... 많은 작가들이 그의 스타일을 따라하려고 했다가 실패했다고 하니, 그의 인기를 과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대실 해밀이 1920~1930년대 범죄 사건들을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가 실제로 탐정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탐정일을 하면서 당시 뒷골목을 접수했던 갱스터들의 권력 독점과 범죄 행각, 즉 도박과 밀주 제조 그리고 뇌물을 통해 경찰과 정치인들을 장악했던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기에 이런 훌륭한 작품을 낼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 책은 탐정 소설로 분류되고 있지만 사실 주인공 네드 보몬트는 탐정이 아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갱스터인 폴 매드빅의 오른팔, 즉 해결사라고 보면 된다. 네드는 도박을 매우 좋아하고 폴의 뒷처리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폴이 상원의원의 딸인 재닛 헨리를 목표물로 삼으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폴은 재닛과 결혼하게 해준다면 다음 선거에서 상원의원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해주겠다면서 거래를 제안했지만, 갑작스럽게 재닛의 오빠인 테일러 헨리가 차이나 거리에서 죽은 채 발견되면서 폴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테일러가 살아있을 때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 있는걸
목격된 사람이 바로 폴이기 때문.
네드 보몬트는 즉각적으로 행동에 착수한다. 그는 폴과의 우정 그리고 자신의 직업까지 위태롭게 만들면서도 폴의 결백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 뿐 아니라 경쟁 구도에 있는 갱스터와 부패한 지방 검사 그리고 기사를 조작한 신문사 등의 계략을 잘 피해가다가 몇 번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 실패를 겪기도 하지만 결국엔 테일러 헨리의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혀낸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 - 시적이면서도, 짧고 날카로운 문체 - 를 이용하여 훌륭한 작품을 이루어냈다. 그렇지만 역시 하드보일드의,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좀 더 어필할 작품이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네드 보몬트는 손을 뻗어 테이블에 놓인 묵직한 맥주잔을 움켜잡았지만 집어들지는 않았다. 잔을 움켜잡느라 몸이 다소 기울었을 뿐, 그는 매드빅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야윈 얼굴은 굳어 있었고, 긴장한 탓에 입가에 선명한 주름이 졌고,
짙은 눈동자는 매드빅의 푸른 눈동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제프가 말했다.
이렇게 얻어터지기 좋아하고 이렇게 패고 싶은 놈은 처음이네. (....)
앞이 보이지 않는 네드 보몬트는 뺨 한가운데를 정면으로 가격당했고
바닥에 큰대자로 쓰러졌다.
우리의 탐정 아닌 탐정, 네드 보몬트는 많은 위험을 이겨내고 폴의 결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여기서 한가지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제목인 [ 유리 열쇠 ] 가 의미하는게 과연 뭘까? 이다. 표지에 나온 이미지에서 보듯, 만약 유리로 만든 열쇠로 문을 열려고 시도하면 열쇠는 당연히 부러질 것이고 그 문은 영원히 밖을 향해 열려있을 수 밖에 없다. 소설 속 재닛의 꿈 속에서 그녀와 네드가 뱀을 피해 집 안으로 들어가지만 열쇠가 유리가 부서져서 뱀에게 죽고 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이 과연 그녀의 사악한 행위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 유리 열쇠 ] 를 통해서 작가가 전하려 하는 메세지는 어느 정도 독자에게 전달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진정한 탐정물, 혹은 추리물이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나름 위트있는 대사들도 많고 빠른 전개와 네드의 몸을 던지는 액션 묘사로 인해서 읽는 내내 즐거웠던 소설 [ 유리 열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