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가
정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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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를 예감하지만 그것이 언제, 누군가에 의해,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다 ”


젠가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 젠가 ] 라는 탑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무너져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탑이다.

마구잡이로 쌓아올린 블록으로 이루어진 탑은 누군가의 서투른 손길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제목을 [ 젠가 ] 라고 붙인 것은 작가의

아주 영리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조직이나 공동체가 마치 젠가 게임의 탑과 같다면?

존재 자체가 매우 불안정하고 조금만 손을 대도 쉽게 허물어 질 사회에 살고 있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까? 현재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 [ 젠가 ] 속으로 들어가보자.

고진시를 대표하는 " 내일 전선 " 은 대기업은 아니지만 나름 탄탄한 이력을 가진 회사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영업부 과장 서희철은 발주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부장에게 호되게 깨지고 있다. 하지만 오랜 회사의 관행 ( 급할 때 품의를 거치지 않는 것 ) 으로 일을 처리하다가 실수한 건데 그걸 아는 부장이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게 이해되지 않는 과장 서희철.

" 내일 전선 " 의 골품제도 때문에 ( 고진 출신만 성골이 될 수 있음 ) 승진이 어려운 부장 김호열은 마침 경쟁자가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있는 이때 자신이 승진의 가능성을 거머쥘 수 있는데 서희철의 발주 실수로 인해서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한편, 부장에게 깨지고 발주한 기업인 영원 폴리텍을 찾아가 사정해보려던 서희철은

부장인 김호열이 그렇게 펄펄 뛰었던 이유가 자신의 승진 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혼자 살겠다고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부장에 대한 복수심으로 활활 타오르는 서희철. 부장과의 사건을 회사 노동 조합 홈페이지에 올리게 된다.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면서.


" 이런 경우에도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게 가능합니까 ? "


한편, 고진시 출신이라 성골로 대접받았던 이형규는 이제 모든 것을 잃을 지도 모르는

기로에 서 있다. 회사의 회식 자리에서 술김에 신입 여직원에게 키스를 시도하려다

실패하고 그 장면마저 다른 누군가에게 찍히고 알려진 것.

회사에서 징계 처분을 받은 그는, 집에서도 징계 처분을 받는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것. 이제 집에서도 쫓겨난 그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 걸까?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형규.


"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고 계급과 계급이 부딪치는 곳 " 내일 전선 "

이곳에 머물고 있는 개미들은 꿀이 붙어있는 나무의 꼭대기에 올라가느라

부단히 애를 쓴다. 계급 제도에 의해서 유리한 자리에서 출발하는 개미도 있고

출발이 늦지만 부지런히 다른 개미를 밟고 올라가는 개미들도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는 무너질 나무인 것을... 한치 앞도 보지 못하고

엎치락 뒤치락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작가는 이 소설 [ 젠가 ] 를 통해서 우리 사회를 갉아먹는 

개인과 조직의 부패와 모순을 지적한다.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에 있는 계급제도 ( 능력과 하등 상관없는 )

하청기업에 발주를 주면서 단가를 후려치고 뒷돈을 받는 개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사적 정보를 불법적으로 캐내는 개인 등등

다양한 부패와 모순들이 개인의 부도덕을 통해 드러난다.


"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개인의 욕망을 예리하게 포착하다 "


본격 사회 고발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책을 만난 것 같다.

저자 " 정진영 님 " 이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조직 속의 개인들의 욕망이나

기업과 신문사의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도 예리하게 잘 포착하고 있는 책이다.

결국 개인이 조직에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기업과 같은 조직이

 더 큰 공동체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고민과 성찰이 없다면 

끝은 절망 뿐이란 걸 보여주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힘있는 서사와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서 재미있었던 소설 [ 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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