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소설가의 상상력을 더한 퓨젼 역사소설 [ 인목대비 ] 를 읽게 되었습니다. 궁이라는 다소 폐쇄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실록에만 부분적으로 실려있을 뿐 후손인 우리들은 이렇게 누군가의 상상력에 의지하여 우리 조상의 치열했던 삶을 들여다볼 수 밖에 없게 되었네요.
평생 한 여인을 사랑하였지만 그녀로부터 미움과 증오를 되돌려받은 비운의 남자 광해!
비록 품에 품을 순 없을지라도 그녀를 치열한 당쟁 속에서 지켜내고자 갈등하고 번민하는 남자의 이면을 반전이라는 트릭을 써서 잘 풀어낸 소설인 것 같아요. 이제 그의 이야기를 들여볼까요?
복사꽃 만개한 한양의 필운동 나들이에서 휘정 ( 나중에 인목대비가 됨 ) 을 처음 본 광해는 그녀에게 치명적인 끌림을 느끼고는 어머니 공빈 김씨가 물려준 한쌍으로 된 금실 나비수 향낭 중 하나를 전달하며 그녀가 입궁 하기도 전에 이미 그녀에 대한 그의 불타는 마음을 보여숩니다다. 하지만 그에게만 가슴 뛰는 연정이었을 뿐, 휘정에게는 어렴풋한 그림자로밖에 각인되지 않은 젊은 선비의 모습.
이렇게 그들의 인연의 끈은 끝끝내 이런 식으로 비껴나갑니다.
절대로 궁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무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광해의 부왕인 선조의 계비로 간택된 휘정. 동시에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그녀를 새어머니로 맞이하게 되면서 세자인 광해의 마음은 복잡한 심정이 된다.
4년 만에 인목대비로부터 적자인 영창대군이 출생하지만 이내 선조가 승하하게 되면서
아들 사이에는 왕위 계승에 대한 갈등이 발생하고 이들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인목대비는 세자였던 광해에게 보위를 승계토록 한다는 언문 교지를 내리며
그가 자신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보호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부디성군이 되어주시오.”
“너를(영창대군)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이 어미가 너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정녕 이것뿐이란 말이냐?”
역사는 승리한 자의 입장에서 쓰여지는 것이라 우리는 광해군에 대한 사실을 어쩌면 0.0000001 프로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 수도 있어요.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걱정하고 혁신을 시도한 성군이었다는 시각과 가족들을 죽이면서까지 왕위를 지켜내려고 했던 잔혹한 인물이라는 여러가지 다른 시각으로 비춰지는 왕이지요.
그러나 그에 대한 후손들의 평가가 어떠했건간에 피비린내나는 혈투와 암투가 벌어지는 궁이라는 곳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내려던 시대의 로맨티스트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목대비는 과연 광해와 당파로부터 영창대군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광해는 형제 간의 갈등과 붕당 간의 당쟁 싸움에서 얼마나 소신을 가지고
자신이 꿈꾸는 국정을 이끌어가는 성군이 될 수 있을까요?
광해와 인목대비의 이야기뿐 아니라 조선 중 후기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은 소설입니다.
참으로 질기고 지독한 인연이었다.
한 번도 내색한 적 없었다. 한 번도 아는 척한 적도 없었다.
필운동에 복사꽃 핀 봄날, 향낭으로 마음을 전해주던 붉은 노을 속 젊은 선비가 광해 당신이었느냐 물어본 적도 없었다.
한눈에 사랑을 가져간 열아홉 살 꽃같던 처자가 인목 아니, 휘정 당신이었노라는 고백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질기고 기나긴 마음의 끈이자 비밀의 숲이었고, 결코 맞받아칠 수 없었던 수평선과 지평선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가슴으로 울던 짝사랑 같은 연정이었고 애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