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이렇게 책을 빨리 읽어버릴 줄 몰랐는데 어쨌든 단숨에 읽어버린 책 –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니까 그냥 쉼없이 달려올 수 밖에 없었다, 왜? 결말이 너무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강렬하고 신비스러운 에너지가 머리 속에 가득차는 걸 느꼈다.. 원작이 훌륭한 책들은 보통 영화로 만들어지긴 하지만 이 책이 과연 영화화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만큼 복잡한 플롯과 복선을 가진 영화이다.

책의 화자는 습기로 가득찬 숲 속에서 깨어나는데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공포스런 어둠이 깔려있는 숲이다. 그는 누군가가 계속 따라온다는 느낌을 받는데 보이지 않는 시선이 그의 등으로 계속 내리 꽂힌다.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이 없고 그 숲 속에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지도 전혀 감 잡을 수 없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머리 속에 떠오른 이름은 바로 Anna.

한참 후에 그는 자신의 이름이 Aiden Bishop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왠 낯선 자의 몸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영혼이 갇혀 있는 걸까 ) 곧이어 마스크를 쓴 정체모를 인물이 다가와서는 풀려나고 싶으면 한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내야 한다고 퉁명스럽게 이야기한다.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그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을 8번 되살아야하는데 매일 아침 다른 자의 몸에서 깨어난다는 것도 특징이다. 만일 그가 살인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실패하면 그는 첫째날로 되돌아가고 기억은 깨끗하게 지워지며 그는 이전에 수없이 했던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그런데 Aiden 만이 이 복잡한 시간의 흐름에 갇힌 유일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더욱 더 복잡해진다. 두 명의 다른 사람들이 이 무한대의 시간대에 또한 같이 얽혀있고 그들을 쫓는, 미지의, 칼을 휘두르는 남자가 있다. Aiden 과 Anna 그리고 익명의 경쟁자들은 게임판 위의 말들이고 모든 것들은 위태위태한 상태이다.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이라는 이 책은, 살인 사건이 없는, 아름답지만 혼란스러운 살인 미스터리이다. 밀실 스릴러이자 동시에 독자가 조금 이해하기 힘든 타임 워프 이론이 중심을 차지한다. 잘 균형잡힌 이 책의 플롯은, 천천히 그러나 매우 신중하게 책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와 비밀들을 드러낸다. 작가가 매우 정교하게 설정한 문장을 매우 신중하게 살펴봐야 이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가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길을 헤매는 느낌이 들었는지 모른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작가가 설치한 덫에 갇히게 된다. 그 속에서 뺑뺑이 도는 내 모습이란.... ( 이해하지 못하고 방황함 )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거나 넘어지거나 겨우 탈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흩어져 있는 이 모든 단서들은 결국 어떤 결말로 이어질 것인가?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필력도 뛰어난 소설이다.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도 놀라왔던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미세한 변화, 그들의 선택 그리고 그로 인한 파급력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끊임없이 뿌려지는 떡밥 ( 복선들 ) 과 퍼즐 조각들도 놀라웠다. 매우 정교한 스토리 라인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보고, 한 사람의 머리에서 이 책의 구성이 나왔다는 사실도 또한 놀라웠다.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은 주로 Aiden Bishop 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가 돌리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함께 걸려있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수레바퀴가 천천히 돌면서 다른 누군가의 삶과 운명도 바뀐다. 이야기는 영혼이 머무르는 각 몸, 즉 숙주의 기억에 머무르는데, 그 묘사가 마치 누군가가 풀장에 잠시 몸을 담구었다가 나온 것처럼 묘사된다. Aiden 의 영혼이 머무르는 각 숙주들은 각각 비밀을 품고 있고 거짓투성이의 삶을 살고 있는데 Aiden 의 자아정체성은 그가 잠시 머무르는 이 비열한 성격의 숙주들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성차별주의자, 이기주의자, 비열하고 남을 조종하며 학대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런 캐릭터들... 도저히 호감이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독자들의 흥미를 끌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면에서 작가의 필력이 빛나는 듯하다.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치 소용돌이치듯 독자들을 미스터리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헤매던 Aiden 의 노력 덕분에 결국 이야기의 전말이 드러나고, 독자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결론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결말이라니..... 작가가 마지막에 터트린 반전에 놀라서 나는 열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긴 숨을 쉬었던 것 같다. 도대체 이 괴물같은 작가는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와 인셉션이 만났다 “ 표지의 홍보문구처럼 이 책은 읽는 독자에 따라서 호불호가 진짜 많이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가 싫은 사람들은 이 책도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SF를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 타임워프나 잠재의식에 대한 주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추천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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