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우주선의 시간 - 제1회 카카오페이지×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수상작
이지아 지음 / 스윙테일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 25년 7일 14시간

훈이 나를 떠난 후 지나가 버린 시간들.

나는, 우리는 그 시간들을 회복할 수 있을까. ”

내가 SF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극적으로 변해버린 지구에서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하는 인간들을 그린 디스토피아물도 좋고 새로운 터전을 향해 나아간 새로운 인류를 상상한 부분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게된 이 [ 버려진 우주선의 시간 ] 은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 즉 안드로이드가 인간성을 갖출 수 있느냐? 라는 부분을 화두로 제시한 면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점점 A.I. 기술은 발전되어가고 있고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이제는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휴머노이드의 탄생을 기대해볼만도 하지 않을까?

한때는 유능한 우주 경찰 다비드 훈을 싣고 다니면서 해적과 범죄자를 소탕하던 정찰선 티스테. 점점 낡아가는 정찰선 티스테를 포기하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고장난 부분을 꼼꼼하게 수리를 해가며 돌봐준 훈에게 인간의 애정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던 티스테. 그러나 훈은 하나밖에 없는 딸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지구에 돌아가게 된다.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갔지만 25년째 돌아오지 않은 훈. 토성의 한 구석에 버려진 채 모래에 파묻혀서 부스러져가던 정찰선 티스테를 구해준 건 바로 어레스 박사님. 안드로이드 분야를 연구하던 어레스 박사는 티스테를 구한뒤 그를 안드로이드로 탈바꿈시켜준다.... 안드로이드가 되면서 티스테가 맨 먼저 한 일은 엄청난 눈물을 쏟아낸 것이다.



한편, 지구에서는 훈의 손녀인 룻이 버거버거라는 직장에서 쥐꼬리만큼의 돈을 벌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낮에는 알바를 뛰고 저녁에는 해킹으로 약간의 돈을 벌고 있긴 하나, 지구의 대기오염으로 인해서 폐병을 앓고 있는 엄마를 위해서 큰 돈을 벌어야 하는 룻은 어느 날, 정찰선을 제조하는 우주로직사에서 할아버지 훈이 몰던 정찰선인 ‘ 티에스티 원 ( TST 1 ) ’에 매우 큰 액수의 배상금을 걸어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액수의 배당금!! 그 돈이 있으면 어머니에게 맑은 공기도 줄 수 있고 에메랄드 존이라는 좋은 환경으로 이주할 수도 있다. 룻은 지체없이 티스테를 찾아 토성행 우주선에 몸을 싣는데........

책을 읽다보니 문득 얼마 전 친구와 들렀던 식당 생각이 났다. 식당 외부와 내부가 한옥의 느낌이 나서 참 예스럽고 고풍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둘러보고 있었는데 주문한 음식을 들고 온 건 바로 서빙 로봇이었다! 완전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랄까? 서빙을 해준 로봇의 화면에 뜬 완료 버튼을 눌렀더니 순간 화면에 미소가 떠올랐다. 갑자기 애정이 생긴 나는 그 로봇이 기계라는 사실도 잊고 작은 소리로 고마워~ 라고 속삭였다. 수십년 전만해도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인공지능 로봇이라니.... 그런데 이 소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눈물을 흘리고 애정을 느끼며 인간이 먹는 음식을 나눠 먹는 안드로이드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 버려진 우주선의 시간 “ 은 기계에 몸에 인간의 마음이 깃들 수 있을까? 라는 고민과 그런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진정한 우정을 쌓아갈 수 있을까? 라는 저자의 자문에서 시작된 소설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단순 기계인 정찰선 티스테가 낡아서 점점 삐걱거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애정의 끈을 놓지않고 티스테를 돌아준 훈과 그런 훈에게 엄청난 애착을 가진 채 25년간 소식도 없는 그를 기다리다가 마침내는 절망과 배신감을 느껴 이제는 훈 대신에 돌아온 손녀 룻에게 못다한 복수를 하려는 인간보다도 더 인간같은 안드로이드 티스테를 그리고 있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 ( 비대면 수업, 교통정보 앱, 스마트 tv, 자율주행 차 등등등 ) 이제는 실생활에서 이용이 되는 만큼 인간만큼 높은 지능과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개발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기계와의 소통을 상상화한 이 작품이 아주 흥미롭다고 볼 수 있다.

약간 아쉬웠던 부분은 토성에서 지구로 돌아가던 중에 들른 여러 행성들과 장소들 ( 타이탄 운터데르테 시장, 달의 이면 F 구역 등등 ) 에 대한 배경 설명이 조금 부족했다는 것이다. ( 시장에 대한 장소적인 혹은 역사적인 묘사 등등이 약간 부족하다고 느낌 ) 그리고 우주에서 고아가 된 채 떠돌다가 해적이 되거나 범죄자가 되어버린 외계인에 대한 묘사도 조금 더 개성있게 넣었다면 조금 더 SF 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지 않았을까 해서 아쉽긴 하다. [ 버려진 우주선의 시간 ] 에서 구축한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되어 갔는지도 묘사가 되어 있었다면 보는 재미가 아마 더 쏠쏠하지 않았을까 싶다.

룻은 자신의 목적대로 티스테를 우주로직사에 넘겨주고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을까? 티스테는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 파트너이자 자신의 대장이었던 다비드 훈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처음엔 각자의 이익과 각자의 동기로 시작된 여행이었으니 결국은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에도 진정한 우정이 오고갈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 [ 버려진 우주선의 시간 ]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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