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이별 열린책들 세계문학 252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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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할리우드의 한 나이트 클럽 바깥에 주차되어 있던 롤스 로이스 차에서 한 주정뱅이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그의 여자친구는 그를 도로에 남겨둔채 떠나고 만다. 마치 버려진 강아지와 같은 신세가 된 그를, 냉소적인 사립탐정 필립 말로가 일으켜 세워 자신의 집으로 태우고 가서 재워주고 아침도 챙겨준다. (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기가 쉽지 않았지 싶은데,,이 낯선 자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부분을 발견이라도 한 걸까? )

그 주정뱅이의 이름은 테리 레녹스이고 그 여자는 테리의 전부인이자 출판업계의 거물인 할런 포터의 딸인 실비아 포터이다. 테리는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백발이고 얼굴의 반은 화상과 같은 상처로 뒤덮혀있다.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말로는 라스베가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겠다는 테리를 위해서 라스베가스로 가는 경비를 쥐어준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서 그는 테리가 전부인과 재혼했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그러나 테리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아내에게는 여러 명의 남자 친구가 있었고 테리는 단지 그녀의 난잡한 사교 생활을 언론이 캐내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 즉 껍데기만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어두운 얼굴로 모자를 쓴 채 나타난 테리는, 총을 든 채, 아직 잠도 덜 깬 말로의 집에 나타나 멕시코 접경 지역인 티후아나까지 차를 태워주길 요청한다. 거기서 멕시코의 외진 지역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려 한다.


테리는 손에 총을 들고 왔지만 자신은 아내를 총으로 죽이진 않았다고 한다. ( 말장난? 실제로 아내는 청동상에 얼굴이 짓이겨져서 죽은 채로 발견되기 때문 ) 탐정 말로는 자신의 친구 테리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하고 그를 티후아나까지 태워준다. 돌아와보니 그를 기다리는 것은 두 명의 경관들. 말로는 살인 용의자를 도와줬다는 혐의로 구금당하게 되고 경찰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폭력과 심문을 당한다. 그럼에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말로는 결국 멕시코에서 테리가 살인을 했다는 자백의 편지를 남긴 후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린 후 겨우 풀려난다.

테리가 멕시코에 묻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말로는 경찰, 가족 변호사, 그리고 지역 검찰 게다가 전쟁 전우였지만 현재는 갱스터인 테리의 친구로부터 테리 사건에 대해 더이상 조사하지 말 것을 요구받는다. 테리가 아마도 죽기 전 보냈을 것으로 보이는 편지에 우정의 표시로 5000달러의 돈을 받았지만 말로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테리는 죽었고 그 사건은 이제 종결되었다.

말로가 이제 친구의 죽음에 대해서 관심을 덜 가지려할 무렵, 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출판인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온다. 그는 말로에게 작가가 과거에 저지른 일로 인해서 누군가로부터 공갈 협박을 받고 있는지는 않은지 밝혀달라고 요청한다. 현재 그 작가는 폭음으로 인해 제 정신이 아니고 최근 쓰고 있다는 범죄 소설도 마무리 못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출판업자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사건을 의뢰한 것이다. 이 사건을 맡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말로 앞에 그 작가의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섹시한 아내가 나타나 자신의 남편이 폭력적인 알콜 중독자일 뿐만 아니라 3일째 실종중이라는 사실도 알리면서 말로에게 사건을 맡아주길 청한다.


과연 말로가 기꺼이 그를 찾아나설까? 추리를 많이 읽어 봐서 나름 감각이 있는 독자들은 이 새로운 사건 의뢰와 얼굴이 짓이겨진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했던 테리 레녹스의 아내 살인 사건과 어느 정도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살인범이 도대체 누굴까? 알쏭달쏭한 죽음을 맞이한 ( 여전히 말로가 믿지 않는 테리의 살인과 죽음 ) 테리일까? 아니면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일까? 하지만 쉽게 살인범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책 내용 자체를 즐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 은 1940년대 할리우드를 가로지르는 다소 어둡지만 활력넘치는 범죄 세계를 매우 역동적으로 선보이고 있고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유명 작가의 필력은, 이 책이 추리소설이 아니라 고전 문학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필립 말로는 이후로 쓰여진 거의 모든 하드 보일드 시리즈 소설의 모델이 될 정도로 하나의 교본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니 말로가 등장하는 소설이 너무 낯설다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가 툭툭 던지는 냉소섞인 농담과 독백은 매우 재미있고 한번씩 배꼽을 잡기만들 정도로 웃기기까지 한다. 이 책은당시 사회분위기를 많이 반영하는 사회 서사물 (?) 같기도 하다.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비참하지만 그것을 숨기려 행복한 척하고 오히려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 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듯이 그려지기도 한다.

말년의 레이먼드 챈들러는 거의 알콜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음주를 즐겼다고 하니,,, 어쩌면 이 기나긴 이별의 두 메인 캐릭터이자 살인 용의자 테리 레녹스와 로저 웨이드의 주정뱅이와 같은 모습은 자신의 한 부분을 그려낸 모습이 아닐런지.... 두껍고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1940년대 헐리우드의 비정한 현실을 잘 묘사해보여준 듯한 레이먼드 챈들러의 [ 기나긴 이별 ]

사설탐정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딱히 평범한 날은 아니었지만 아주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사람이 이런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부자가 될 수도 없는 데다 재미도 별로 없다. 때로는 두들겨 맞거나 총질을 당하거나 유치장에 처박히기 일쑤다. 드문 일이지만 죽기도 한다. 두 달에 한 번씩은 이 일을 그만두고 그럴싸한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가 제멋대로 흔들거리기 전에. 그런데 그때마다 초인종이 울리고, 내실 문을 열고 대기실로 나가면 새로운 얼굴이 새로운 골칫거리와 새로운 슬픔을 한 아름 안고 나타나서 약간의 돈을 내민다. P. 238~239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택시가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보았다. 다시 계단을 올라갔고 침실에 들어가 침구를 걷어 내고 새것으로 갈았다. 베개 밑에 긴 갈색 머리카락 한 올이 남아 있었다. 가슴속에 납덩이가 쿵 떨어지는 듯했다. 프랑스인들이 그런 느낌을 잘 표현했다. 젠장, 그 인간들은 모든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언제나 정곡을 찌른다. 이별을 할 때마다 조금씩 죽어 가네. P.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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