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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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온 그 아이들의 영혼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어린 시절에 어둠과 악을 경험하고 그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종종 범죄자가 된다. 학대와 방임 그리고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는 범죄자의 마음 속에 단단히 뿌리내린채 어른이 된 그를 강하게 통제한다. 이 책 [ 미로 속 남자 ] 의 여주인공 사만타를 납치했던 토끼가면을 쓴 사내 [ 버니 ] 도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린 시절 경험한 어둠과 악을 극복하지 못한 채 괴물이 되어버렸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달되면서 영원하게 이어지는 악을 표현한 듯한 소설 [ 미로 속 남자 ]. 이 소설은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아이들의 정신적 상처와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사만타는 그녀가 13살이었을 때 등교를 하다가 납치가 되었고 15년만에 기억을 잃은 채 사회의 품으로 돌아온다. 도로가에서 알몸으로 발견된 그녀. 경찰에 신고를 했던 목격자는 사만타 외에 토끼 가면을 쓴 한 남자가 주위를 어슬렁거렸다고 증언한다. 하트 눈을 가진 토끼 가면을 쓴 신원 미상의 남자.... 그가 과연 범인일까?

한편, 사만타가 실종되었을 당시 그녀의 부모에게서 거액의 선금을 받고 사건 의뢰를 받았던 사립 탐정 브루노 젠코. 그는 어린 딸을 잃어버리고 종종걸음을 치던 부모에게 돈만 받아챙기고 결국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사만타의 어머니는 큰 병을 얻어 몇 년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난 상태이다. 심장병을 얻어 얼마 살지 못하게 된 브루노는 속죄하는 심정으로 사만타를 납치했던 범인을 추적한다. 사건은 반복되는 법,,,경찰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사만타와 같은 실종 사례를 찾아낸 그는 R.S. 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의 실종 사례를 발견한다.

3일동안 실종되었던 R.S. 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뭔가 끔찍한 경험을 했는지 360도로 변한채 돌아왔다. 이식증 ( 흙이나 석고 등의 음식이 아닌 것을 섭취하는 현상 ), 유뇨증 ( 괄약근 조절 능력 상실 ) 을 보였고 성적 억제력 결핍이라는 상태를 보이기까지 한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에서 이상한 모습을 보였던 것. 결국 R.S. 의 부모는 친권을 포기하고 그는 위탁가정에 맡겨지게 된다. 그런데 브루노는 R.S. 가 심리 치료 당시 그렸다는 그림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동네, 즉 평범한 배경을 그렸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평범하지 않았던 것. 그들은 모두 토끼 머리를 뒤집어썼고 눈은 하트 모양이었던 것이다.

한편, 실종 당시의 충격 등으로 인해 기억을 완전히 상실한 사만다는 병원에서 그린 박사라는 프로파일러에게 여러 다양한 질문을 받게 된다. 마치 미로 같았던 납치 장소와 상황을 떠올려보도록 요구받는 사만다. 범인을 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말에, 그녀는 마지막 한 방울의 기억까지 쥐어짜면서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려 애쓴다. 조금씩 기억을 떠올리는 사만타의 증언은 처절했던 납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독자들의 심장까지 벌렁거리게 만든다. 특히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벼랑 끝의 상황은 그녀가 왜 기억을 잃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잊을 수 밖에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던 것이다!!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죽거나. 사만타는 첫 번째 대안을 택하려다 생각을 바꿨다.

그래서 복도로 뛰어나가는 대신 여자애에게 달려들었다. 여자애 역시 똑같이 달려들었다.

상대의 의도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대치하는 자세로 거의 동시에 문으로 향했다.

철문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한때는 탐정으로 명성이 드높았지만 이제는 심장병을 얻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립탐정 브루노 젠코. 목숨 걸고 범인을 추적하는 그의 모습이 짠하기도 하면서 감동적이기도 하다. 비협조적인 경찰들과 갈등하고 부딪히면서 묵묵히 자신의 빚을 갚아나간다.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 사만타가 프로파일러 그린 박사의 도움을 받아서 과거를 떠올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중간에 자신의 아이를 출산했지만 곧바로 아이를 잃어버린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교묘하고 악랄한 범인이 사만타와 여러 실종 아동들을 가지고 논 정황이 드러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묘미는 어마어마한 반전에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 인물과 관점 그리고 배경까지 모두 뒤집어버리는 작가 도나토 카리시. 책에 대한 소개글에서 나온 것처럼 갑자기 강한 펀치를 맞은 듯 정신이 하나도 없다. 분명히 범인을 찾았는데 그가 범인이 아니다??? 사건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범인이다??? 전문가의 포스와 냄새를 풍기면서 등장한 사람에게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된다???

이 [ 미로 속 남자 ] 는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미로 처럼 독자의 추리력을 가지고 노는 듯 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감과 긴장감은 당연한 요소이고 그 뒤에 따라오는 엄청난 반전에 넋을 놓게 된다. 피해자를 가지고 놀았던 범인처럼, 독자들을 가지고 오는 듯한 작가 도나토 카리시의 희대의 문제작 [ 미로 속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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