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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다른 나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9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평점 :
현실과 허구가 뒤섞이는 소설 [ 당신과 다른 나 ].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던 점은, 내가 과연 독자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왜곡된 기억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인가? 한참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마치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를 걷는 것 같았다. 걷고 또 걸어도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나선형의 거리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소설이라고나 할까?
이 책은 일단, 한 부부가 들려주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처럼 시작된다. 아내는 근래 들어 낯설게 느껴지는 남편 때문에 마음이 답답하다. 이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 그는 물건이 어디있는지 제대로 찾지 못하더니 급기야는 키우지도 않았던 개를 찾아헤매기 시작한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뭔가를 사서 들고 가는 남편을 분명히 봤는데 집에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그녀는 낯선 사람처럼 변해버린 그를 보며 생각한다.
" 그이가 도대체 내게 무얼 숨기려고 하는지, 그게 진짜 무엇인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사람이 찾으려 했던 것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 어디에도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개라니요? 어떻게 그걸 잃어버려요?
무엇보다 애당초 키운 적도 없는 그것을 그이는 어디서 찾겠다는 걸까요 ."
한편, 남편은 아내 미양으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과 꼭 닮은 남자를 찾는 광고문을 인터넷에서 봤다는 이야기. 심지어 자신이 소유한 셔츠를 입은 그 남자를 남편이라며 누군가 찾더라는 이야기.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라 되도록 무리에서 튀지않으려 노력한다는 그는, 옷 색깔도 되도록 브라운 계통이나 회색으로 고른다. 너무나 무난해서 사람들이라는 배경 속으로 곧잘 녹아드는 그를 닮은 사람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의미심장한 말을 속으로 속삭이는 남자 주인공.
"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실은, 당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어.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그건 실수였지. 당신에게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았어......
내가 말하면, 그게 무엇이 됐든 미양은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미양은 나를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 중략 ) 지금 내 감정이 진짜라는 걸, 내 사랑에 하나도 거짓이 없다는 걸, 미양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도대체 이 소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뭘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심각한 건망증 혹은 치매에 걸려버려서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남편을 데리고 사는 아내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 세상에 반드시 나를 닮은 누군가가 한 명 쯤은 있다는, 그 도플갱어 이론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예전에 TV에서 봤던 한 드라마가 떠올랐다. 현실과 만화 속을 오고가던 주인공들. 현실 속 그들의 모습과 만화라는 허구 속 다른 존재인 그들은 서로에게 끊임없는 영향을 미친다. 만화라는 허구 속 존재가 위기에 처하면 현실 속에 존재하는 도플갱어도 위기에 처한다는 이야기.
[ 당신과 다른 나 ] 속의 남편의 직업이 제약회사 연구원인 줄 알았다. 아내인 미양이 그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러나 알고보니 남편의 직업은 소설가였다. 세계 속에 또다른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는 소설가. 남편은 자신을 자꾸 연구원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내가 걱정된다. 그러나 아내는 있지도 않는 개를 찾아다니는 남편이 낯설기만 하다. 도대체 누구의 기억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의 존재가 어떤 이야기 속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살아 숨쉬리라는 보장은 없는가? 작가는 현실이라는 세계와 그 속에서 창조된 허구라는 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의 끝부분에선 약간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내가 어딘가에서 창조한 나의 캐릭터가 언젠가 내 집 방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