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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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양들의 침묵 > 을 통해, 꿈에 나올까봐 무서운, 섬뜩하고 잔혹한 인육 살인마 " 한니발 렉터 " 박사를 연기했던 배우 안소니 홉킨스. 날카롭게 빛나는 눈동자로 FBI 신입요원 클라리스 스탈링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안소니 홉킨스. 그는 한니발 렉터 박사를 연기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그는 완전히 렉터 박사 그 자체였다. 이 책 " 한니발 라이징 " 은 한니발 박사를 이렇게 소름끼치는 살인마로 만든 과거의 사건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미샤의 팔을 붙들고 매달린 한니발이 문 쪽으로 질질 끌려간다. 동생에게서 떨어지지 않자 ' 푸른 눈 ' 이 한니발의 팔 위로 무거운 헛간 문을 쾅 하고 닫는다. 뼈가 부러지고 다시 문이 열린다. 그가 장작개비를 가지고 돌아와 한니발의 머리를 후려갈긴다. 눈 앞이 번쩍하는 끔찍한 고통. 정신이 혼미해진다. 미샤가 소리친다.

" 아니바!"

한니발 라이징 중 90쪽

1946년 리투아니아.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독일군과 러시아군의 싸움은 민간인에 대한 폭격과 살육으로 변질된다. 한니발의 부모는 렉터 성을 버리고 숲속으로 숨어들었지만 독일군 폭격기에 의해서 한순간 잿더미로 변해버린다. 눈앞에서 까맣게 타버린 부모님과 선생님을 목격했던 어린 한니발. 그는 여동생 미샤와 함께 술 속 산장에 단둘이 남겨지는데, 어느날 들이닥친 약탈자 무리들,,,, 이후 한니발이 기억하는 거라곤 그들이 미샤를 어딘가로 데리고 가버린 것이다.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그 사건 이후 한니발은 실어증에 걸린다. 그리고 원래 자신의 집이었던 하지만 현재는 고아들을 위한 보육원으로 변해버린 렉터성에서 다른 고아들과 함께 머무르게 된다. 밤이면 밤마다 미샤가 끌려가는 악몽을 꾸고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한니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짐승같은 자들의 손길에 끌려가던 여동생의 목소리 " 아니바! " 가 그의 귓전에 아직도 생생하다.

한편 전쟁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던 한니발의 삼촌이 감옥에서 풀려나 부인인 레이디 무라사키와 함께 한니발을 데리러 보육원을 찾아온다. 레이디 무라사키는 미샤를 잃은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한니발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아직도 미샤가 죽음을 당한 그 무의식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니발을 그녀는 돕고 싶어 한다. 한니발은 미샤가 죽은 그 시점과 공간이라는 꿈 속에서 헤매고 있는 듯 하다. 상담과 최면요법 등등의 치료가 아무 소용이 없다. 영혼없이 껍질만 남아 있는, 그러나 복수심으로 인한 분노만이 가득한 한니발.

한니발, 악몽의 땅은 잊어버리렴. 넌 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될 수 있어. 이제 그만 꿈의 다리를 건너 나와 함께 가자꾸나.

한니발 라이징 중 119쪽

정신병원의 환자를 죽이고 신체와 장기를 요리해 먹었던 엽기적인 살인마, 그러나 동시에 예술감각이 뛰어나고 저급한 인간들을 참지 못했던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그의 이중성을 만든 과거가 이 책에서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어머니 같은 숙모 레이디 무라사키에게 음란한 욕설을 퍼부은 푸줏간 주인 폴의 머리를 절단한 것이 그의 나이 13세. 잔잔한 호수를 그리는 섬세한 손으로, 전광석화같은 살인을 자행한 한니발.

이 책은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짐승같은 놈들에게 그 누구보다 소중한 여동생 미샤를 빼앗긴 일이 한니발 속의 살인 본능을 깨운 듯 하다고. 살인자는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책을 보니 둘 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인간의 무의식은 모든 걸 저장한다. 특히 한니발같이 넓은 머리 속 궁전을 지어놓은 사람들은 절대 잊지 않는다. 여동생을 위한 복수가 곧 시작된다. 피의 잔치 그리고 죽음의 향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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