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 예민하고 소심해서 세상이 벅찬 인간 개복치의 생존 에세이
이정섭 지음, 최진영 그림 / 허밍버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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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나 인간 사회에 안 맞는 거 같아

 

개복치의 소심함을 표현한 정보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고 한다.

1. 거북이와의 충돌을 예감하고 겁이 나서 죽음.

2. 일광욕하다 새한테 쪼여 상처 곪아 죽음.

3. 바닷속 공기 방울이 눈에 들어가 스트레스로 죽는다고 한다.

혀를 차게 만드는 이러한 사소한 이유로 죽을 수도 있다니,,,,, 극도로 소심한 사람이 개복치에 비유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 사회와 안 맞는 인간이라... 너무 소심해서 개복치에 비유되는 인간이라... 그 비유법이 완전 재미있다!! ( 나만큼 소심한 분인가? ) 너무나 궁금해서 펼쳐든 책 < 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 평범한 에세이는 가라! 이 에세이는 너무너무 재미있고 독특하다. 작가의 냉소 넘치는 위트와 살짝 비튼 유머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책을 읽었다. 전체적으로 감정이 과해서 흘러넘치는, ( 내가 생각하기에 ) 요즘 유행하는 힐링, 치유 에세이가 아니라서 다행, 작가가 기자 시절 경험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다행. 그리고 작가가 좋아하는 영화나 책의 장르가 나와 비슷해서 다행. ( SF 책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었다 )

이 책 곳곳엔 너무나 공감이 가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내용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34쪽 " 알아보면 부담스럽고 몰라보면 서러워한다 "에서는 저자가 자주 가던 카페에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된 사연이 나온다. 그 당시 잡지사에 다니던 저자는 맛있는 스콘이 나오던 카페를 잡지에 소개했는데, 기사를 너무 좋아하게 된 주인아저씨가 저자를 과하게 좋아하게 된 것. 소통 없는 고독을 즐기고자 간 카페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선물까지 안겨주는 주인아저씨가 너무 부담스러운 나머지 그는 다른 카페로 발걸음을 돌린다.


이런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다니! 내가 세상에 얼마 없는 개복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나의 경우도 " 군중 속의 고독 " 그리고 " 익명성 " 을 즐기는 편이다. 자주 가는 장소에서 만약 주인아저씨가 아줌마가 나를 아는 척하는 순간 다른 장소로 향하게 되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나도 저자와 같은 개복치, 소심한 인간, 다른 사람의 지나친 관심을 못 견디는 유별난 인간이었구나...

이 책에는 이외에도 작가가 초보 기자 시절 겪었던 일화나 좋아하는 영화와 책에 대한 감상을 맛깔나게 그려낸다. 54쪽 : 서대문 경찰서의 카이저 소제 편에서는 눈 깜짝 하나 안 하고 거짓 정보를 줄줄 읊었던 다방 누님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술값을 안 내고 도망갔다가 잡혀온 그녀는 자신을 30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소개하지만 알고 보니 40대 다방 누님이었다. 일화 마지막에 기자에게 천진하고 해맑은 미소를 날리는 그녀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67쪽에서는 영화 Her 속에 나오는 테오도르와 OS인 사만다와의 관계를 짚어보면서 진실한 사랑이 뭔지, 사랑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하는지를 짚어내는 저자. 85쪽에서는 SF 영화 < 노인의 전쟁 > 소개를 하면서 크고 켤 수 있는 감정 장치를 가진 오빈 종족의 예를 들면서 " 감정 "이라는 것에 익숙지 않은 " 극소심자들"의 폭주와 주위 사람들과의 충돌을 익살스럽게 그려낸다. 저자의 글로 인해서 이 두 영화와 책을 보고 읽고 싶다고 느꼈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일종의 " 개복치 "이니까.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위기의식을 느껴서 이런 제목을 붙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록 소심하지만 나름대로 " 소확행 " 을 즐기며 잘 살아가고 있는 저자. 어떻게 하면 소심한 자들이 이 험한 세상을 잘 이겨내며 살아갈 수 있는지 위트 있게 보여준 일종의 여행 가이드였다. 인생철학을 이렇게 찰지게 표현할 수 있다니 저자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기만 하다.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싣고 계시다니 한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에세이 같지 않은 에세이 ( 지루하지 않다는 이야기 )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선했던 에세이 { 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몇 번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근래에 보기 드문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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