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리병 속 지옥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6
유메노 큐사쿠 지음, 이현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추리소설의 극한을 실험한 아웃사이더,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탐구하다 "
이 책을 과연 추리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오히려 기담집이나 심리 스릴러라 부르는게 더욱 적절히자 않을까 싶다. 사건이 발생하고 단서를 찾아 범인을 추적하는 일반적인 장르가 추리라면 이 책은 그런 영역과는 약간 다른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해설에 나오는 것처럼, 저자 유메노 규사쿠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관해 끊임없이 탐구한 작가인 듯 싶다. 기계 문명에 길들어진 인간의 잔혹성과 이상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꿈.. 그것도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내밀한 자기 고백같은 소설이다.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을만큼 잔인한 주위 환경과 사악한 힘이 사람들을 조종한다. 그들은 광기에 젖어들어 이성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행동을 자행한다. 저자는 고백체 서술을 이용하여 주인공의 이상심리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상심리를 표현하면서 괴이한 미소나 광기어린 웃음을 짓는 사람들... 혹시 저자는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지켜보지 않았을까?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들은
1. 기괴한 북 : 오토마루 가에 내려오는 요물스런 북 이야기. 북 안에 깃든 사악한 영이 여러 가문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이야기이다. 북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게 만든다면 믿을 수 있을까? 북은 사람으로 하여금 죽이게 만들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만든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해보려했으나 뛰어넘지 못한 사물에 깃든 무시무시한 힘 이야기.
" 구노가 자신의 마음만을 담아 만들었다고 하는 이 북에서 나오는 죽음을 부르는 음색.... 그 힘... 그 음기의 바닥에는 영겁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원망의 울림이 남아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지우기 힘든 슬픈 집념이 담겨 있었다 "
2. 유리병 속 지옥 : 외딴 섬에 좌초된 남매 이야기이다. 그들은 3개의 병에 쪽지를 담아서 물길에 실어 보낸다. 언젠가는 그들이 구조가 될 수 있도록... 그러나 편지 내용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간다. 나이가 듦에 따라서 단순히 오빠, 여동생 관계 였던 그들은 서로에 대한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래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여동생에 대한 불순한 마음을 품게된 오빠의 절절한 마음이 실려있는 유리병 속 지옥. 아름다운 섬이지만 그들에게는 지옥이다.. 되도록 빨리 벗어나야 하는.
" 연필이 닳아서 이젠 길게 쓸 수 없습니다. 이러한 가혹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여전히 하느님의 벌을 두려워하고 있는 저희의 진심을 이 병에 담아 바다에 던지려고 합니다. 내일이라도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기 전에.... 적어도 두 사람의 육체만이라도 더럽혀지기 전에 "
3. 기괴한 꿈 : 저자가 꾼 여러 이상한 꿈을 기록한 듯 하다. 보통 꿈을 꿔본 사람은 알겠지만 논리성은 떨어져도 이미지는 생생하다. 특히 그것이 악몽이라면. 기계에 의해서 사람들의 몸이 잘려나가고 영혼이 없는 인형들이 차를 운전하는 꿈.. 유리로 만든 세상에서 쫓겨나거나 자기 자신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둔다는 독특한 꿈이야기가 실려있다..
" 그래서 이 공장에는 몸의 일부분, 혹은 생명 그 자체를 빼앗은 경험이 없는 기계는 없다. 검은색 벽이나 천장 구석까지 피의 절규나 냉소가 배어 있었다. 그 정도로 이 공장의 직공들은 열심이었다. 그 정도로 이 공장의 기계들은 진심이었다 "
유메노 규사쿠의 작품 세계의 특징은 추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의 서술방식은 편지글 형식이나 자백하는 형식을 결합해서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이상한 경험을 한 인물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여 본인이 겪은 사건이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내면세계, 즉 인간의 극단적인 이상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문학적인 미를 추구하고자 했다. 하나의 독특한 자기만의 추리소설의 장르를 세운듯한 유메노 규사쿠의 작품 [ 유리병 속 지옥 ]. 기괴하고 섬뜩하며 뭔가 잔인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