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라
L.S. 힐턴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 10년 전 난생처럼 우피치 미술관에 방문해 아르테미시아의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 앞에 서 있던 때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 유디트는 힘줄이 도드라지고 근육이 불거진 자신의 팔에서 나온 힘으로 그를 적절하게 도살하고 무자비하게 톱질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여자의 일이라고, 아르테미시아는 무표정하게 말하고 있다. (...) 나는 그녀에게, 박물관의 그 소녀에게 수많은 약속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 빚을 졌다 "

(262쪽)

 

 

 

미술관에서 넋을 잃고 그림을 바라보던 소녀 주디스. 미술을 사랑하던 그녀는 붓을 잡는 대신 칼과 총을 잡는다. 그녀가 가는 길 곳곳마다 쌓이는 시체들. 본인의 그림을 누가 그렸다면 한 손엔 지폐를 나머지 한 손엔 해골을 쓰다듬는 모습이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미술계와 사교계가 배경이 된 특이한 범죄 스릴러 [ 마에스트라 ]. 고독한 늑대형의 남자가 주로 주인공인 보통의 스릴러와 달리 이 책의 주인공은 미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다양한 언어능력을 갖춘 미모의 여성인 주디스이다. 순수하게 예술을 사랑하던 모습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악녀로의 변신에 성공한 그녀. 운명의 여신은 그녀가 가는 곳곳마다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나 그 미소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주디스는 꿈의 직장이었던 미술품 경매소인 런던의 브리티시 경매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석사학위까지 따낸 자신의 지식이 별 쓸모가 없다. 상사의 뒤치다꺼리와 같은 잡일만 도맡는 그녀. 쥐꼬리만한 월급에 일상생활마저 힘들어질 무렵, 우연히 만난 동창생인 린의 소개로 카슈타트라는 샴페인 클럽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맡게 된다. 낮에는 경매소 직원으로 밤에는 클럽 여성으로 바쁘게 살아가던 그때, 그녀는 상사 루퍼트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포착한다. 누가 봐도 가품인 스텁스라는 화가의 말 그림을 진품으로 경매에 내놓으려 했던 것. 그런데 그것을 추적하려 했다가 루퍼트에게 적발된 순간 해고를 당하게 되는 그녀.

이때부터일까? 운명의 향방이 180도로 바뀌게 되는 것은... 분노와 서러움 때문에 떠났던 남프랑스 여행에 동반했던 클럽 고객 제임스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친구 린이 그에게 먹였던 신경 안정제 때문이었을까? 두려움에 떠는 친구 린과 달리 주디스의 머릿속은 다음 단계로 이미 움직이고 있다. 발각되지 않고 사고 현장을 무사히 빠져나가기.. 과연 주디스는 자신의 바람대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 사건을 처리할 수 있을까?

마치 군더더기처럼 느껴졌던 그녀의 화려한 사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걷어내니 박진감 넘치고 스릴 있는 이 책의 진가가 보였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주디스는 그림을 보며 갑부들이 누리는 화려한 생활을 꿈꾸어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돈 많은 남자에게 기생하며 부를 축적하고 꿈을 이루는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그녀는 빠른 머리 회전력과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결단력 그리고 남자를 주무르는 능력 등을 이용하여 점점 본인이 원하는 세속적 욕망을 이루어낸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는 판단하는 것은 여기서 부차적 문제인 것 같다. 목표물을 향해 뛰어가는 살기등등한 치타를 보는 느낌이다. 그녀는 엄청난 부를 키워간다. 물론 약간의,, 아니 엄청난 유혈사태가 동반된다. 치밀한 계획과 전문 킬러 못지않은 살인 솜씨로. 주디스가 살짝 미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광기 어린 몸짓들이 포착된다.

이제 왜 이 책이 19금이 된지 알 것 같다.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의 잔인함이 동반되는 살인 장면과 생생하게 묘사되는 선정적인 장면들. 묘사가 엄청나다. 처음엔 이런 장면들이 왜 필요할까? 싶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느낀 게 이 책은 예술과 외설, 화려함과 천박함 등의 사이에서 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소개된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나중에 꼭 감상하고 싶다.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사랑과 욕망,, 삶과 죽음 우리는 어느 것이 반드시 옳고 그르다고 할 수가 없다. 이런 책들을 보면 더욱더 그러하다. 인간이 품고 있는 폭발적인 욕망이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나는 소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충격과 경악,, 공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런 소설은 또 처음이네..

화려함을 좇던 사교계의 피라미는 어느새 거대한 부를 이루어낸 범죄의 마에스트라가 되었다. 미술관에서 봤던 그 그림은 어쩌면 그녀의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의 역할을 한건 아니었을지.. 무능력한 가장 대신에 그림을 그려 팔았던 아르테미시아의 강인한 정신이 그대로 표출된 그림을 보면서 꼬마 주디스는 주먹을 꼭 쥐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한 어머니를 보면서 더욱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를 일....

심장 약한 사람이 보면 몇 번이고 깜짝깜짝 놀랄만한 책이다. 그러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건 전개와 순간의 재치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주디스의 활약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다. 다만,,, 윤리와 도덕은 잠시 넣어두고 읽어야 할 책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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