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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평점 :
“ 나, 얼음 웅덩이에 발을 내디디니 회색 얼음이 발밑에서 우지끈 부서지네. 당신, 내 마음을 만지려거든,
조심하소서
조금만 만져도 얼음이 깨지듯 부서져서 내 비밀스런 마음이 드러날 테니 “
80쪽 - 미클로스가 릴리에게 보내는 시 -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 속을 걷는다고 상상해보자. 언제 빛이 비칠지 모르는 상태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람 과연 몇이 있을까 ? 더듬더듬 손으로 짚어가며 앞으로 나아가보지만 탈출구가 어디쯤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된다면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나의 운명을 점쳐보게 될 것 같다. 그러나 몇 번이나 생사의 고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한 남자가 있다. 그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 시작!
여기에 누군가에게 정성스런 편지를 쓰는 한 남자가 있다. 두꺼운 안경을 쓴 깡마른 몸매에 혈색이 좋지 않은 남자 미클로스. 얼마전까지 나치에 의해서 헝가리에 있는 유대인 수용소에 있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재활을 위해 스웨덴에 있는 병원으로 오게 된 남자이다. 책을 읽다보니 이 책의 제목인 [ 새벽의 열기 ] 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체온계를 몸에 품고 있다가 새벽마다 39도까지 끓어오르는 열을 재곤하던 미클로스.
그는 현재 심한 폐결핵 진단을 받고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이다. 사망선고가 내던져진 즉,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 상황에서도 옅은 미소를 띄며 그 소식을 듣고 있는 이 병약한 청년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주인공 미클로스는 얼마 못 살거라는 의사의 선고를 가볍게 무시하는 듯 하다. 그는 자신이 살아낼 것이라 굳게 믿으며 스웨덴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백명 이상의 헝가리 아가씨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신은 반드시 결혼할 것이고 편지 상대자 중 반드시 신부감을 찾을 것이라 장담하는 미클로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한 남자의 희망과 사랑 이야기를 쓴 사람은 바로 헝가리 유명 영화감독인 가르도시 피테르이다. 이 [ 새벽의 열기 ] 는 저자의 첫 장편 소설이자, 자신의 영화 [ 새벽의 열기 ] 의 원작 소설이라고 한다. 전 세계가 사랑한 이 감동적인 실화소설은 절망 속에서 희망과 사랑을 찾아 삶을 개척한 피테르 감독의 부모님 이야기이다.
우여곡절끝에 운명의 상대를 찾아낸 미클로스. 그녀의 이름은 릴리. 미클로스가 입원해 있는 아베스타 재활원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엑셰 군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들은 6개월간 편지를 교환한 다음 만나기로 한다. 건강을 염려하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릴리를 만나러 온 미클로스. 깨진 안경알 속에 신문을 끼워넣고 다 빠져버린 치아 대신에 금속 치아를 한껏 드러내며 웃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미클로스를 본 뒤 릴리는 당황하여 자신의 친구인 사라에게 자신인 척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이를 어쩌나. 미클로스는 릴리를 한번에 알아본다.
" 난 당신을 이런 모습으로 상상했었어. 오래전부터..... 꿈속에서... 안녕, 릴리 "
릴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워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 껴안았다.
( 164쪽 )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 수용소의 처참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그들... 가족의 생사는 알길이 없다. 그 누구보다도 죽음에 가까이 갔었던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과 희망이라는 단어는 남다른 의미를 띌 수 밖에 없을 일. 더더군다나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미클로스는 2번이나 죽음을 극복한,, 어찌보면 위대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홀로코스트라는 잔인한 환경은 그들을 이미 지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나 그들은 희망을 품고 사랑을 이루었다.
이 책은 그러한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듯 하다. " 편지 " 라는 흔한 소재로, 결코 흔하지 않은 희망과 사랑을 말하고 있는 소설 [ 새벽의 열기 ]. 새벽을 불태울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