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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인간의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듯한 소설을 만났다. "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 " 이 소설의 주인공은 끊임없이 본인이 어느 시공간에 놓여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유는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 나 " 는 정신줄을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 나 " 라는 정체성이 무너지고 허물어져갈때 우리는 공포를 느낀다. 네가 미쳐가고 있는 걸까? 나는 분명히 봤고 공격을 당했다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나를 비웃듯 세상은 네가 틀렸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곤 덧붙인다. " 넌 정상이 아니야.. 넌 미쳤어 "
독자들을 많은 혼란 속에 빠뜨리는 소설 [ 소포 ] 를 읽었다. 주인공은 엠마라는 이름의 능력있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녀는 세미나를 마치고 투숙한 호텔에서 당시 여성들을 두려움에 빠뜨렸던 연쇄 살인범 " 이발사 " 에게 강간을 당하고 머리칼이 밀린 채 거리에 버려진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엠마는 그 사건 때문에 유산을 하고 만다.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 바깥에 나갈 수도 없고 제대로 된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된 엠마. 그런데 마침 그녀에게 날아든 한 통의 소포. 알고보니 옆집 남자에게 온 소포였으나 그녀가 받게 되었다. 그 소포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엠마는 두려움을 억누른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정찰을 나가는데...
엠마는 사건 이후로 사회성을 한순간에 잃어버린다. 즉 다시 말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어버린다는 것. 그녀의 주위에 맴도는 남성들이 모두 그녀를 공격한 살인범으로 보인다.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이 가스불을 제대로 껐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주위 남자들이 자신을 공격한 그 살인범 " 이발사 " 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일종의 병에 걸린다. 편집증과 망상 때문에 해서는 안될 일들을 저지르는 그녀... 책을 읽다가 심장이 쫄깃해지고 조마조마해서 몇 번이나 책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팔을 잡고 싶었다. 그러지마 엠마!!!!
독자들도 혼란에 빠진 채 글을 읽어내려가게 된다. 엠마의 상태가 과연 정상일까? 아니면 이 모든게 그녀가 만들어낸 망상의 연속일까? 어릴 때부터 옷장 속의 괴물 아르투어를 목격하고 대화를 해온 엠마. 사건 당시 호텔엔 1904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거기에 머물렀었다고 주장하는 그녀. 거울 속 " 도망가, 빨리 " 라는 문구를 목격했던 엠마. 옆집 남자 대신 받았던 소포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고 자신에게 쪽지를 건넸던 남편의 동료 형사는 쪽지를 건넨 일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엠마가 미친 걸까? 누군가 엠마를 스토킹하면서 그녀를 미치게 만드는 걸까? 실제로 많은 영화와 책들은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서 병원에 가두기 위해서 덫을 놓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럼 남편이 그녀를 공격한 범인인가? 도대체... 실마리를 잡을 수 없는 소설.
사실 신경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엠마는 많은 범죄를 저지른 이후이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을 변호해줄 콘라트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있는 엠마. 그 대화 안에서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그녀의 망상과 범죄 등이 드러난다. 우리말 표현 중에 미치고 팔딱 뛴다.. 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분명히 봤고 들었고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이 부정해버릴 때 사람은 미치는 것이 아닐까? 소설 끝으로 갈때까지도 도저히 엠마의 상태와 범인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소설... 엠마의 정신적인 불안감과 심리적 압박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살인범에게 공격당했을 때 느꼈던 그 진동소리.... 냉장고나 핸드폰의 진동소리에도 깜짝 깜짝 놀라는 그녀. 엠마는 정신병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걸까? 믿을 수 있는 변호사인 콘라트가 그녀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고 그녀의 결백을 증명해줄 수 있을까?
한편의 잘 만들어진 전형적인 사이코 스릴러이다. 두려움에 덜덜 떠는 엠마가 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파헤치는 소설 [ 소포 ]. 이 책을 읽고 나면 뒤를 돌아볼 것이다.... 누군가 나를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