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구리하라 유이치로 엮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19년 2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거나 그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은 독자들은 알 것이다. 그가 음악에 얼마나 조예가 깊은지를. 거의 모든 그의 작품에는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등장하는 낯선 곡 이름에, 가끔씩은 읽던 책을 덮어두고 곡 검색을 하러 간 적도 있다. 다른 예술가들도 뮤즈를 필요로 하듯이, 음악이 그에게는 글 창작의 뮤즈가 되어주나 보다.
이 책 [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음악을 정리하고, 그 음악을 해설하면서 하루키 작품에서의 의미나 역할을 알아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음악과 하루키라는 작가와의 연결고리를 알아보려는 기획에서 시작된, 약간은 특이한 음악가이드라고, 이 책을 쓴 저자는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은 음악과 그의 작품과의 연결고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열서너 살 때부터 재즈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음악은 제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코드나 멜로디나 리듬, 그리고 블루스 감각 같은 것들이 제가 소설을 쓸 때 매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사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다양한 음악이 하루키 작품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1980년대 이후의 음악, 록, 팝, 클래식, 재즈 이렇게 다섯 파트로 나누어 보여준다. 다섯 명의 평론가들이 각 장르별 스무 곡씩, 즉 합계 100곡에 대해서 일종의 평론을 해준다. 다시 말해서 작품 속에 숨겨져 있거나 놓쳤던 음악의 새로운 일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작품에 등장한 음반의 탄생 비화, 내포된 의미 그리고 책 속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그 속에 담긴 화자들의 내면에 관한 설명들을 정말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평론가들은 다음과 같이 무라카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악의 은유적, 비유적 모습에 대해서 열거한다.
1979년 작가로 데뷔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1960년대에 ‘손이 닳지 않는 먼 장소’에 대해서 노래한 브라이언 윌슨(비치 보이스)를 통해서 ‘상실’이나 ‘죽음’의 모티프를 자신의 작품에 적용했다. (p109)
하루키의 작품인 " 상실의 시대 " 에서는 친구의 죽음을 두고 애도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문학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하루키가 위의 음악을 듣고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매우 닮아 있다. 공통된 키워드는 ‘한 치 앞은 다른 세계.’ (p155)
하루키의 작품에는 유독 저쪽 세계, 즉 가상의 공간이 많이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이런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닐지?
하루키의 작품의 주인공이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 그 전조 또는 계기가 되는 것이 클래식 음악인 경우가 적지 않다. [ 1Q84 ] 에서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그렇다.(p158)
하루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좋아했던 음악을 반드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들도 음악을 들어본다면, 혹시나 그가 느꼈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느낄 수 있으므로 이해하기가 조금 더 쉬워질 것이라 본다. 급하게 읽을 필요 없이 하루에 한 두곡을 들으면서 책 속의 배경을 연상해 보고, 작품 속에 숨겨진 의도를 찬찬히 음미하면서 즐긴다면 좋은 힐링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