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탕 내리는 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상상해본다.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이 하늘을 가득 메운 장면을. 그리고 떠올려본다. 킬킬대면서 땅 속에 별사탕을 묻고 있는 어린 자매들. 이 아이들은 이런 말을 중얼대며 별사탕을 땅에 묻고 있다.

" 별사탕을 묻으면 그게 일본 밤하늘에 흩어져서 별이 된다고 상상했어. 여기서 보는 별은 이를테면 일본에 사는 누군가가, 어쩌면 우리 같은 아이가 일본 땅에 묻은 별사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생활 등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을 묻는 듯한 소설 [ 별사탕 내리는 밤 ]. 사실 책을 읽으며 혼자서 이렇게 중얼 거렸다. 참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구나... 혀를 끌끌차면서 읽었는데, 어느새 나는 진지한 얼굴을 한 채 책의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었다.

뭐든지 공유하다 못해, 남자 친구까지 공유하던, 어린 시절의 카리나와 미카엘라 자매들. 다소 차분하고 정리된 느낌의 카리나에 비해 자유분방하고 감정적인 미카엘라.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마치 쌍둥이처럼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서로의 영혼까지 들여다보는 자매들. 일본 사람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타국에서 이민생활을 꾸려가느라 바쁜 부모 대신에 서로를 의지한다. 다른 어떤 자매들보다 각별한 사이이다.

남자 친구를 공유한다고? 뭔.. 이런 개념없는 행동이 다 있냐... 라고 중얼거렸다. ( 책 읽다가 이렇게 많이 중얼거리기도 처음 ). 연예인들처럼 공공재도 아닌데,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발칙한 자매들이로구나.. 라고 또 중얼거렸다. 그런데 사랑을 믿지 않고 남자도 믿지 않는 이 자매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세월은 흐르고 그들은 이제 각자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아.. 사실 잘 살아가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내 눈엔 다소 삐걱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자매들.

딸 하나를 키우며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미카엘라.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다소 결핍되어 있는 느낌의 미카엘라. 아이는 없지만, 능력있고 잘생긴 남편과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카리나. 그런데 이 남편이... 여자친구가 많다. 흔히 말하는 " 열린 결혼 " 을 살아가는 부부. 카리나는 남편을 사랑하긴 하지만 ( 미카엘라와 공유하기를 거부했으니 진정한 사랑이 맞을 듯 ) 다른 많은 여자들과 그를 공유해야 하는 고통을 매일 느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카리나에게 꽂혀서 그녀의 미묘한 심리 변화 포착에 온 신경을 기울이게 되었다. 곁에 있으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그녀의 남편 " 다쓰야 ". 뭐가 그리 당당한지...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고 온 날에도 아내인 카리나에게 로맨틱한 사랑의 언어를 들려준다. 카리나가 느낄 비참한 기분에 자꾸 공감하게 되었다. 마치 해맑은 다쓰야가 수집한 여러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느낌? 물론 장난감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난감이겠지만, 그런 느낌이 계속 들지 않을까? 라고 또 혼자 중얼거려본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은, 그런데, 또 있었다. ( 이 책엔 정상적인 연애를 하는 듯한 사람들이 없는 듯... ) 바로 미카엘라의 딸인 아젤렌의 사랑 이야기. 그녀는 엄마의 상사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나이 차이가 30살이 넘고 엄연히 가정도 있는 유부남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책을 읽다보니까.. 어쩌면 진정한 사랑의 언어를 아는 아이가, 아젤렌 혼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첨엔 아젤란의 연인인 파쿤도가, 자기 감정 하나 컨트롤 못 하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연애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빠 없는 아젤렌이 그 결핍을, 나이 많은 파쿤도와의 사랑으로 메꾸려고 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에 좀 착잡함마저 들었는데,,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 사랑 " 을 제대로 아는 커플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건... 뭘까?

파쿤도와 헤어질 것을 종용하는 엄마 미카엘라에게 던지는 아젤란의 한 마디,

395쪽

" 엄마가 불쌍해. 제대로 된 남자에게 제대로 사랑받은 적이 없는 걸 "

파쿤도와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신하는 아젤렌의 말.

405쪽

" 오늘 파쿤도에게서 문자 메세지가 왔다. 사랑한다고 쓰여 있었다. 나는 내 인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라고도. 그래, 인생이다. 파쿤도는 내 인생이고, 나는 파쿤도의 인생이다. 따라서 포기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도피하듯이 그를 떠난 카리나. 사랑 자체를 믿지 않는 냉소적인 미카엘라. 다른 듯 비슷한 자매들 사이에서 순수한 사랑을 믿는 마젤렌의 모습이 빛나 보였다. 세속의 잣대에 상관없이 그녀를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 별사탕 내리는 밤 ] 은 소재 자체도 신선하고 내용도 파격적이어서 처음엔 어리둥절할 정도로 내용에 적응을 못 했다. 카리나와 미카엘라, 이 두 자매가 너무 친해서 마치 카리나의 남편인 " 다쓰야 " 가 이 둘 사이에 뛰어든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러 여자와 자유 연애를 하는 " 다쓰야 " 가 미워 죽겠고,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는 " 아젤렌" 의 아슬아슬한 사랑이야기에 손에 땀을 쥐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모두들 자기에게 맞는 옷을 찾아서 입을 거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 막장 같은 이야기 속에, 사랑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연애 소설의 대가인 에쿠니 가오리님 작품 답게 너무나 쉽게 술술 읽혀나갔던 작품이다.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 등에 대해서 여러 진지한 질문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깊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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