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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없어도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던 작은 새가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날개가 꺾이는 사고를 당한다. 좌절과 절망으로 얼룩진 눈빛을 한 채, 파닥거려보지만 현실은... 날 수 없다는 사실. 그렇다면 이제 죽는 일만 남은 걸까? 내 인생이 망가진 탓을 남에게 돌리고 좌절과 우울만 안은 채 살아가야 할까?
평소 사법기관의 정의 구현에 대한 물음에 천착하던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 이번엔 감성이 넘치는 추리 미스터리를 안고 돌아왔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여전히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우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장애인의 눈으로 본 비장애인 우선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등등.. 역시 시치리님의 추리 소설 답게, 단순 흥미 위주의 책은 아닌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사회 시스템이나 삶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미스터리의 제왕, 나카야마 시치리 님의 새로운 작품 [ 날개가 없어도 ] 의 주인공 사라는 전도유망한 육상 선수이다. 아직은 올림픽에 나갈 정도는 아니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실력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다. 그녀는 트랙에 서 있을 때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녀에게 있어서 육상, 그리고 달리기는 목숨, 혹은 삶 그 자체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크나큰 불행이 덮친다. 옆집에 살던 중학교 동창, 다이스케가 운전하던 차에 치여서 왼쪽 다리 무릎 아래를 모두 잃어버리게 되는 것. 육상 선수에게 있어서 다리는 목숨과도 같다. 믿겨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는 그녀. 설상가상으로 다이스케는 면허가 없는 탓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댓가도 제대로 치르지 않는다. 허술한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다이스케를 보며, 가슴을 치는 사라와 그녀의 부모.
어느 순간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라. 그러나 다리는 없지만 살아남은 목숨은 유지해 나가야 한다. 회사에도 적응하려 애쓰고 새로 맞춘 의족에도 적응하려 애쓰지만 한쪽 다리가 없어진 지금의 상황이 어색하고 힘들기만 한 사라,,,,, 회사에서는 5분 일하고 5분 쉬어야 한다. 지하철에서는 목발을 짚고 서 있다가 계속 누군가의 자리 양보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 느껴진, 사라는 결국 회사를 그만둬 버린다. 이대로 사라의 시계는 멈추어버릴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 사고를 저지르고 집에 틀어박혀 있던 다이스케가 자신의 방에서 살해를 당한 채로 발견된다. 정황상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라와 그녀의 부모들. 그리고 의심이 가는 또 다른 인물, 다이스케가 교통 사고를 저지른 뒤 선임했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그는 어릴 적에 중죄를 짓고 소년원에 간 적이 있는 인물이라, 다이스케의 죽음에 한 몫을 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한편, 인생의 시계가 이대로 멈추어 버린 줄 알았던 사라는 TV에서 남아공 출신의, 두 다리가 없는 육상 선수 피스토리우스의 사연에 대해서 알게 되고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그가 가진 의족과 비슷한 의족을 주문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달릴 수 있다는 기쁨에 들뜬 그녀. 그런데 의족의 값은 엔화로 200만엔이 넘고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수천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현금으로 의족값을 치르는 그녀... 어디서 돈이 생긴걸까?
책은 의족을 찬 채 이제는 패럴림픽에 도전하는 사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기록 단축에 힘을 쓰고 엄청난 실력을 가진 또다른 장애인 선수와의 대결에서 이기고자 노력한다. 기록 단축을 위해서 살을 빼고 ( 더 뺄 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 경쟁 상대인 상대선수를 꺾기 위해서 그녀의 육상 스타일을 모방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라. 1등을 향한 사라의 절절한 마음과 엄청난 노력에 저절로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
[ 날개가 없어도 ] 는, 감성 미스터리라는 타이틀에 맞게 여타의 추리 소설과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밀실 미스터리처럼 복잡한 트릭을 이용하지도 않고, 잔인한 장면도 별로 없다. 사실 다이스케를 죽인 범인이 누군지 등은 여러 가지 정황들로 인해 쉽게 추리가 가능하다. 이 책을 통해서 아마도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바는. 삶이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세상이 캄캄해진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인 것 같다. 육상 선수인 사라에게 다리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리가 산산조각 났을 때 어떻게 보면 그녀의 삶도 산산조각 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울며 떼쓰며 자신의 운명에 분노한 채 주저앉아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새로운 도약을 시도했다. 꺾였던 날개가 있던 자리에 인공 날개를 달고, 푸르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우리는 책 속의 사라처럼, 생각지 못했던 사건들을 겪을 수 있다.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삶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뭔가를 찾아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절망을 맛본 사라이지만, 외국 속담 " 한 쪽 문이 열리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 라는 말처럼 패럴림픽이라는 대회를 통해 희망이라는 빛을 따라간다. 시치리님의 생생한 묘사로 인해, 독자들은 사라와 함께 숨쉬고 사라와 함께 달리고 사라와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소중한 인생을 찾아가는 사라의 모험에 함께 동참하고픈 독자들은 오늘 이 책과 함께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