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좋은 날
기자영 지음 / 샨티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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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드러나는 글이 있다. 수사와 문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언어의 출처인 영혼의 아름다움이 여백 사이로 엿보이는 글이 있다. 얼마 전 소천(召天) 받은 기자영이란 분의 <내 인생의 좋은 날>이 그런 글이다. 그녀가 남긴 일기 가운데 83편을 골라 묶은 이 글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에 대한 그녀의 깨달음, 영혼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2000년 암 진단을 받고 골반의 절반을 잘라내어 한쪽 다리로 버티며 살아온 그녀의 삶은 흔히 일컫듯 '투병(鬪病)'생활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녀에게 암이란 병은 진정한 휴식을 가져다 준 친구이자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삶에 대해 깊이 천착해 온 그녀는, 항암치료와 재발이 연이은 그 기간 동안에도 생명을 위협하는 병마마저도 그녀 존재의 일부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남긴 글을 읽으며 영혼이 육체에 제한되어 있지 않으며, 고통 속에서도 그 고통에 물들지 않는 존재의 근원 속에서 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흔 중반의 짧은 생애였으나 그것은 상대적인 물리적 시간일 뿐 이미 영원을 맛보고 삶의 매 순간을 깨어 지켜본 그녀에게 이 꿈과 같은 삶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럽다. 그녀는 그녀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다 하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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