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예수 -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
길희성 지음 / 현암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보살예수>는 저명한 비교종교학자인 저자가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소통을 위한 대중강연을 책을 묶은 것이다. 일찍이 <지눌의 선사상>이나 <일본의 정토사상> 등 불교는 물론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과 같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에 대한 연구를 해왔던 저자는 과학적 합리주의의 시대에도 여전히 중세적 신관에 갖혀있는 많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종교와 신앙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 있다.

 

만약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불교적 진리'도 아니고 '기독교적 진리'도 아닌 오직 진리 뿐일 것이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의 문화적 관습에 따른 묘사의 차이가 오늘날 종교간의 차이가 되었다. 예를 들어 인격적 유일신 신앙인 유대문화 속에서 예수는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유대적 문화와 언어 표현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다. 다양한 신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 정교한 논리를 통해 진리를 탐구한 힌두-바라문 문화 속에서 활동한 석가 역시 그러한 문화적 관습과 표현을 이용해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전달했다. 

 

오늘날 세계종교로 성장한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해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비해 오히려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여 충분히 소통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책의 제목에 사용된 '보살'이란 용어와 '예수'의 삶이 보여준 공통점을 봐도 그렇다. '보살'은 '깨달은 중생'이라 할 수 있는데, 중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의 안락을 즐길 수 있음에도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중생제도를 위해 바치는 자가 바로 '보살'이다. '예수'는 그러한 의미에서 분명 보살이다. 불교의 '공'과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자의 '하나님' 역시 차이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이 책은 불교를 이해하려는 기독교인에게도 유용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이해하려는 불교인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흔히 기독교를 타력신앙이라 하고 불교를 자력종교라 구별하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부문은 더욱 그렇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깨달음은 공, 무아를 깨닫는 것인데, 자아의 노력에 의해 그것이 성취될 수 있겠냐는 문제 제기는 많은 불교 수행자들에게 커다란 깨우침을 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자의 입장에서 두 종교간의 교리적 측면에서의 비교분석이라는 면에서 이 책이 갖는 한계도 분명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소통은 말과 생각 이전의 지점에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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