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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간간히 들리는 제목이다.

프랑스 작가 기욤 뫼소의 [구해줘]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들른 서점에서 구해줘를 골라 뒤적거린건 순전히 이 책이 통로쪽에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베스트셀러란 딱지를 달고 얼굴을 들어낸 책들은 언제나 믿을만 하다. 물론 정말 마음을 사로잡는 책들은 먼지 낀 구석에 박혀있게 마련이지만 적당히 읽고 있단 기분을 주기 위해 베스트셀러 딱지는 참 쓸만한 보증이다.

 

다수의 선택.

적어도 장점이 하나는 보장된다는 뜻 아닌가.

그 장점이 기계적으로 짜내는 메마른 감동일지, 여기 저기 쓸만한 글조각을 짜집기한 퍼즐일지 알수 없지만

일단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점에서 실망하지 않을 정도만의 신뢰는 주는편이다.

 

서점에서 뒤적거린 도입부는 나쁘진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이 말랑말랑한 문체가 프랑스 작가 특유의 감성에서 나오는 건지, 로맨스를 암시하는건지 아직은 알수 없지만 일단 여자 주인공의 외모가 합격점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비둘기를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동선의 끝에서 깨어나 아침을 시작하는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 지나치게 진부하고 지나치게 영화적인 느낌을 고려한 시작 두 페이지였다.

 

 

서점에서의 짧은 순간, 난 이 책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고 한달 후 자주 가는 도서대여점에서 구해줘를 다시 만났다. 뒷면에는 이런 글이 씌여 있었다.

 

'나는 당신이 이 소설의 첫 장을 펼쳤을 때보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기욤 뫼소-

 

 

처음엔 베스트셀러니까 재미는 보장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지만 마음이 바꼈다. 그냥 시간때우기용으로 읽기엔 기욤 뫼소라는 작가가 너무 자신만만해 보이니까.

첫 장을 펼쳤을때보다 마지막 장을 덮을때 더 큰 행복감을 느끼길 희망한다고? 말이 쉽지 그게 어디 간단한 일인가? 작가가 자신하는 만큼은 기대를 해주는게 독자로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나는 일단 기욤 뫼소라는 작가에게 전폭적인 믿음을 안겨주기로 했다.

 

어디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줄테냐. 잔뜩 기대해 주겠다.

 

사실.. 이런 마음가짐, 많이 삐뚫어지긴 했다.

삐뚫게 보다보면 조그만 결점에도 '내 그럴줄 알았다. 입만 살았지' 따위의 못된 생각이 들기 쉽상이다.  그렇기에, 끝까지 읽은 지금 나는,이 책을 실제 책이 가진 가능성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서평이란 언제든 지독히 주관적인 글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 까놓고 말하자면 이 책을 덮으며 난 짜증을 냈다.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만 무성의하게 던지고선 그래도 고전적인 테마 사랑의 기적을 다루고 트랜드를 따라 반전도 넣지 않았느냐 아무리 항변해봤자 밋밋한 인물들과 이제는 지겹다 못해 억지스런 우연의 연속을 해명할 순 없다.

 

로맨스 장르의 정석처럼 여겨지는 예쁘장한 외모와 열등감, 많이 쳐줘 꿈밖에 가지지 않은 여자 주인공과 깊은 상처를 안고 사랑을 믿지 않는 (적당히 능력 좋고 외모 되는) 남자주인공의 우연한(그러나 필연적인) 만남.

 

앞 뒤 안 가리고 불처럼 타오르는 하룻밤의 행복, 그리고 나서 찾아오는 현실과의 괴리와 거기서 오는 갈등, 쉽게 해버린 거짓말에서 오는 오해, 머뭇거리는 두 사람, 그로인해 닥치는 사고, 뒤늦은 깨닳음, 온갖 역경과 고난을 넘어 결국 이뤄지는 사랑의 기적..

 

이러한 공식, 이미 지칠대로 널렸지만 또 쏟아져 나오고 다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는다. 정말 맥이 빠진다..

 

아마 구해줘가  단순한 로맨스 노선만 따랐다면 적당한 장르소설로 그만한 인기만 얻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는 스릴러와 드라마라는 양념을 추가했고 덕분에 급격히 요동치는 스토리를 볼 수 있었다.

 

중간부터 갑자기(그야말로 별다른 복선 없이 갑자기) 난입한 그레이스라는 인물은 작가가 부여한 반전을 이뤄내기 위해 정말 급하게 뛰어다닌다. 너무 급해서 그녀에겐 적당한 인격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책임감과 신념을 가진 여형사라는 캐릭터를 지키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녀와 함께 속속 등장하는 그레이스 쪽 인물들 역시 급하게 스토리에 몸을 싫어 과거의 사건을 폭로하느라 캐릭터 자체의 개성을 갖추기 힘들다. 그야말로 몰개성한 인물들 뿐이다.

 

인물들이 자체적으로 움직이기엔 작가의 맘이 급하다. 그도 그럴것이 짜 놓은 스토리를 풀어내기도 모자란 지면인 것이다. 정형화된 인물들이 억지로 짜 놓은 해피앤딩을 위해 제 역활만 하고 사라지는 무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아니 솔직히 불쾌하다.

 

스포일러가 될까 결말을 언급할 순 없지만 결말 역시 지나치게 감성에만 호소하고 있다. 가슴 땃땃하게 퍼져가는 감동과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해. 사랑을 이뤄지고야 마는거야! 하는 대리만족..

작가가 느끼길 바란다는 행복이 고작 대리만족이란 말인가.  정말이지 허탈한 마음 뿐..

 

괜히 기대하고 꾸역꾸역 먹다 체한 기분이다.

차라리 전반의 몰캉몰캉한 분위기만으로 전형적인 장르소설을 썼다면,

차라리 후반의 외국 경찰물 티비 시리즈 같은 느낌으로 드라마적인 느낌만 살렸다면..

 

적어도 베스트 셀러가 되진 않았겠지.

 

세상 뭐 없다.

대중에게 적당히 먹히는 요소를 짜 맞춰 그럴듯한 글로 만들면 일단은 성공한다.

 

라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들어준다.

 

그래봤자 무지한 군중의 하나인 나는 이런 사실을 금새 잊고 베스트셀러 딱지만 보면 일단 콩깍지부터 뒤집어 쓸 테지만 적어도 다음에 기욤 뫼소의 신작을 만나게 된다면, 그 책의 뒷 면에서

'나는 당신이 이 소설의 첫 장을 펼쳤을 때보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라는 글귀를 읽게 되면, 교육의 힘을 빌어 단호히 내려 놓을 것이다.

 그야말로 적당히 팔리기 위해 적당히 치장한 적당한 책으로 부터 나부터 구해줘! 외치고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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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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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독서편력을 가진 나에게 인문서적은 오르기 힘든 산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꾸준히 도전하는 분야는 존재하고 대표적인 것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심리서다.
스스로를 비롯, 주변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나는 어떤 책을 읽든 일단 등장인물에 주의를

기울인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쉽게 작가가 가진 힘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를 매료시키는 힘, 온전히 감정을 몰입하고 작품에 동화되게 하는 힘을 말이다.

이야기의 뼈대는 에피소드와 소재의 차지겠지만 그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분명 등장인물이다.

 

이런 습관은 독서 뿐만 아닌 실생활에서도 당연히 튀어나온다.
나는 사람을 행동 이면에 도사린 동기와 인과관계를 찾기 즐긴다.
[우습게도 이 습관은 내 인간관계에 그렇다 할 이점을 주지 않는다. 중이 제머리 못 깍는다는 말이 백번 옳다.]

 

그리하여 하나 둘 찾아보게 된 심리학 관련 서적들을 고르는 조건은 당연히 '흥미롭고' '잘 읽히는' 이다.
훨씬 전부터 나에 대해 보통보다 조금 떨어지는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흥미롭고' '잘 읽히며' '알지 못했던' 혹은 우리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인간 심리를 다뤄야 한다는,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책이 또 한권 나타났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20세기에 있었던 흥미로운 심리실험 사례 열가지를 모아 놓은 책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작가의 문체가 상당히 드라마틱하다는 것이다.
사례를 옮긴 부분은 대화에 충분한 묘사가 곁들여진 단편소설 같고 저자의 생각이 드러난 부분 역시 말랑한 감수성

이 여기저기 숨어있다. 작가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었지만 그가 여자이거나 적어도 감성적인 글재주를 가진

(이야기꾼 기질이 다분한) 남자일 거라는 예상을 하기 충분했다.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고 나서야 나는 저자가 여자란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의 남편 이야기가 나왔기 대문이다. 더 이후에 겉표지 뒷쪽에서 '미국 최고의 수필상'을 두차례나 수상하고 '뉴

레터 문학상'논픽션 부분 창작상을 수상했다는 이력도 찾아냈다. 그녀는 심리학자이자 작가, 칼럼니스트였다.

 

그것은 그녀의 책이 인간 내면에 신경을 기울일 겨를이 없다 여기는 보통 사람에게 충격을 안겨줄 진실을

능수능란하게 폭로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마치 어렸을때 절대적인 대상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입된 후 당연히 여겨왔던 빨간색이

사실은 빨간색이 아니였다는 말을 듣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의 믿음이 송두리채 흔들리는 기분을 안겨준다.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를 억압하고 조종하는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철석같이 믿어온 기준들을 순식간에 뭉개버린다. 

몰라도 사는데 하등 불편함이 없을테지만,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간 안에 도사린 복잡한 진실들은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책은 말한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사기꾼의 교묘한 궤변처럼 들린다.
우리 의식이 거부부터 하는 교묘한 트릭이 거미줄처럼 우리를 묶고 있다 말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작가가 이처럼 일반인들의 관념을 통채로 부정케하는 사례들을 노련한 이야기로 풀어 나갔음이다.
적당한 완충장치도 놓고 건드려선 안될 부분은 살짝 가리고 지나간다. 그러면서도 순식간에 독자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쇼킹한 힘을 가짐에 분명한 책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작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저자의 흥미 위주로 선택되어진 사례들 중 몇은 실제 학계에선 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실험들이였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작가의 돌발적인 행동들은 책의 설득력을 약화시켰다.

물론 그러한 점 덕분에 책이 흥미로웠던 건 사실이지만 작가가 좀더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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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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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소설에 큰 애착을 갖고 있지 않다.
일본 소설 특유의 하드보일함은 내 생리완 그리 맞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눈에 띄고 손에 잡힌다면 가리지 않고 읽기는 한다.
그렇게 만난 몇몇 작가는 내 맘을 사로잡기도 했지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엔 살짝 김이 빠진 느낌이다.
닮았지만 한편으론 이해할수 없는 문화와 양식을 가진 다른나라 젊은이들의 글은 약간 모자란 감흥만을 남겼다.   

물론 스치듯 단언해버리는 생각이 얼마나 큰 모순을 안고 있는지 나는 안다.
짧은 식견이 낳은 오만방자함이 얼마나 형편없이 날라가던지.
드디어 만난 것이다. 얼토당토 않는 편견을 멋지게 날려버린 타자를!

쉬지도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리면서 나는 기분 좋은 흥분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세상엔 이토록 충만한 즐거움으로 가득 찬 책이 얼마든지 널려있구나.
내가 할 일이라곤 그런 책들을 찾아 읽고 읽고 또 읽으며 즐기는 것 뿐이구나.
취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책을 찾았을때 느낄 수 있는 교감은 언제나 독자를 고취시킨다.
철저히 주관적인 잣대를 빌어 단연 최고의 목록에 합류하게 된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내가 아는 고양이는 몸을 숙이고 바싹 엎드려 볼때 비로소 본 모습을 보여주는 요물이다.
제가 알아서 살피고 인간에 맞춰 행동을 수정하는 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동물이다.
독립적이다 못해 지독히 제멋대로 구는 고양이는 자기보다 강함이 분명한 인간에게도 숙이지 않는다.
자기 안위만 중요할 따름이다. 맛난걸 내줄 듯 하면 다가갔다 내키면 아양을 떨고 해꼬지할 듯 싶으면 피할 뿐이다.
절대 고개를 꺽지 않는 이 동물을 이해하기 위해선 내키지 않더라도 이쪽에서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많은 편견을 가졌으면서도 많은 예술가의 혼을 사로잡은 동물이기도 하다.

 

나쓰메 소세키는 참 괜찮은 작가였으리라.
천재가 되어보지 못해 알수는 없으나 세간에 보여지는 천재들의 행태를 보고있노라면 그 속이 범인과는 다른 모양이다.
뭐가 그리 들끓는지 생각도 못한 기기묘묘한 것들을 샘처럼, 화산처럼 뿜어내곤 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와 같은 천재 작가는 아니였을테다.

천재였다면 내면을 매운 무엇들로 벅차 주변을 둘러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읽은 소세키는 천재와는 거리가 먼, 주변을 둘러 싼 사람들의 행태와 그 안의 본질적인 것까지 고스란히
읽고자 하는 관찰자에 불과하다. 물론 영민한 관찰력 역시 타고 나야 하는 재능이겠지만 그것은 고통과 함께
발전시켜야 하는 씨앗에 불과하다. 소세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재능을 각고의 노력으로 발전시킨 범재다.

손에 잡치지 않는 세계에 고립된 천재보다 우리네들 틈에서 자괴감에 몸부림치며 무언가를 토하는 범인들은
때로 천재보다 더 큰 깨달음을 안겨준다. 나에게 소세키가 그러했다.

       
고양이든 사람이든, 관찰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대상에 맞춰 몸을 숙여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안 사람이였다.
그렇게 탄생한 주인공 (이름조차 없는)고양이는 사람들이 흔히 스쳐 지나 미처 알지 못하는 고양이 그 자체의 고양이였고.
고양이의 관찰대상이 된 선생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쓰메 소세키 자체의 소세키였다.

그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사람 세상에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자체의 사람들인 것이다.

 

좀 더 본질을 들여자보자면 고양이가 서생이요 서생이 소세키니, 소세키는 자신의 허영심을 그대로 들어낸 인물,
게으르고 영특하지도 못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으로 보이고 싶은 헛된 마음에
몰라도 일단 고개부터 끄덕이고 보는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우스갯감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그 우스꽝스러운 서생을 포함한 어리석은 인간 자체를 관조하고 있는 고양이 역시 소세키이다.
소세키는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타인처럼 관망하며 글로 써내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오는 번뇌가 인생을 갉아먹기라도 한 걸까. 책의 앞머리에 실린 작가 소세키에 대한
자료는 그가 그리 행복치 못한 삶을 살았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그가 어떤 삶을 살았던지 간에 그의 작품은 남았다. 그 작품은 나는 고취시켰다.

 

나름 두껍두껍한 책은 별다른 고저 없이 간단한 에피소드들만 나열되어 있다.
구샤미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인생의 대부분을 초등학교 선생으로 허비한 우유부단 고집쟁이 서생은
앞으로도 그리 특별한 계획이 없는 모양이다. 
매일 탁자 앞에 앉아 펼쳐 놓은 책 위에 침을 흘리며 낮잠을 자고, 부인을 닥달하며, 과자를 먹고,
간혹 찾아오는 손님들 앞에서 지식인인양 알아도 아는체, 몰라도 아는체, 하며 살아갈 요량이다.

그를 찾아오는 손님 가운데 가장 빈번한 자가 미학자 메이테이인데 꽤나 매력적인 인물이다.

짐짓 세상사를 초월한 것마냥 재미를 위한 허풍이며, 거짓말로 사람들을 골리길 좋아하고
늘 유쾌하게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메이테이는 어찌보면 다른 인물들과 다른 듯 보이나
그 역시 모순을 바로잡을 용기 없이 적당히 타협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그래도 그런 메이테이의 기지 덕분에 자꾸 웃게 되니 재밌는 인물임엔 확실하다.

 

이름난 사업가의 영양과 스캔들에 휘말리는 젊은 간게쓰군을 보자.
대학을 다니며 논문을 준비하고 나름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보이나 그가 연구하는 주제라는 것이
목을 메어 자살하는 역학이라거나 개구리 눈알의 전동작용에 대한 자외 광선의 영향따위라니,

연구랍시고 유리알만 진지하게 갈아대는 양은 웃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다. 

 

간게쓰군과의 스캔들의 주인공인 가네다양은 갈대처럼 청혼자들을 비웃으며 하녀의 가짓것마저 탐내는
여자지만, 그의 어머니 하나코가 거대한 코를 앞세워 남편의 권세를 자랑하고 다니는 꼴을 보면

그 엄마 아래 어찌 반듯한 딸로 자랄 수 있겠느냐,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하나코는 간게쓰군이 박사라도 되면 졸부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여 가문의 지성을 세우겠다는 요량인데..

그걸 보고 있는 고양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경쾌한지.

 

구샤미 선생을 위시로 한 지식인들은 진흙탕을 뒹굴며 재물을 탐하는 사업가들을 욕하고
사업가 간게쓰를 위시로 한때 구샤미의 제자였으나 사업에 뛰어든 미즈시마들은 급변하는 세상에 등 돌린채
독야청청 달관한 척하는 지식인들을 비웃는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닮고 싶어하니 모순이랄밖에.

 

소설의 배경이 일본이든, 막 개화가 시작된 백년전이든 중요할게 뭐란 말인가.
소세키가 보고 쓴 책 속의 세상은 지금 내가 처한 이곳과 하나 다를게 없었다.

그네들의 행태가 우스워 깔깔대다가도 뜨끔한 것이다.

 

[뜨끔]

 

백년이라는 간극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지 오웰과 더불어 나쓰메 소세키는 풍자소설이란 것이 얼마나 씁쓸한 웃음인지 뼈아프게 깨닳게 한다.
웃으며 즐겁게 볼 수 있는 책이지만, 노트에 옮겨적고 싶은 번득이는 구절로 가득 찬 책이지만,

읽고 나서 남는건 쓸쓸함 뿐이다.

그래도 인간이기에 인간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소세키의 모순이 슬프다.
작가 소세키가 고뇌속에서 몸부림쳐 토해낸 부조리의 진상이니 쓸쓸함이 당연하다.

 

그렇게 실컷 웃고 많이 생각케한 책이였다. 
인간적인, 그래서 더 어려운 고민을 싸안은 일본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노력을 인정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한 책이기도 했다.

 

 

/

 

책의 서두, 실린 글에 나온 것처럼 처음엔 가로안의 한문들과 역주, 낮선 문체가 거슬리기도 한다.
하지만 소세키의 성찰로 부터 우러나는 명문과 경쾌하게 이어지는(어쩌면 음율을 타는듯도 한) 글 본연의
어감을 살리기 위해 옛스러운 구어체를 사용했다는 설명에 아! 아!
정말이지 잘못했으면 느끼지 못했겠구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더불어, 어째서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일본작가들에게서 느끼지 못한 일체감을 소세키에게서 찾았는지 아직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죽어 썩어버렸을 사람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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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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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모나리자의 미소에서 美를 찾을 줄 모르는 무지렁쟁이 입니다. 뚱뚱하고 볼이 빵빵한 아줌마가 날 비웃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더라구요. 언젠가 지나치듯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린다는 베르메르의 진주귀고리소녀를 보게 되었을때도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땐 그저 설 익은 과일처럼 여자라 부르기엔 어린 소녀가 그려진 초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풀려 보이는 눈이랑 살짝 벌어진 입이 멍청해 보인다고까지 느꼈어요. 확실히 대중매체에서 쏟아내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에만 익숙해있던 전 진짜를 보는 눈이 없었던 거죠.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라는 작가는 완벽하게 나를 사로잡았어요. 내가 놓쳤던 그림속에 무수한 해석과 아름다움을 완벽한 묘사로 풀어내어 몇번이고.. 책을 읽는 도중 수차례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표지를 펼쳐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전 아까보다 더 애절하고 더 긴박한 망설임을 담고 있는 소녀를 보게 됩니다. 베르메르가 붓을 들어 그림에 빛을 한번 두번 덧칠해 나간 것처럼 저 역시 점점 생명을 얻어 나와 시선을 교차하는 소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고백하건데 그림의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책 한권이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이 그림을 평생 잊지 못할 환상으로 각인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제 진주귀고리소녀 라는 그림을 보면 가슴 한 구석이 따끔따끔 아파옵니다. 슈발리에가 나에게 들려준 그리트라는 영민한 소녀의 시작도 하기 전에 접어야만 했던 절제된 사랑의 감정이, 그 미묘한 감정을 화폭에 담아 낸 베르메르라는 화가가 생각 나니까요. 물론 이 모든 것은 트레이시 슈발리에라는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이지만 그림에 더할나위 없이 어울리는 이 이야기야 말로 실화보다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로서 나는 나를 감싸고 있던 하나의 껍질을 더 깨부셨고 바늘귀보다 좁은 시야를 조금이나마 더 넓혔습니다. 이제부턴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그게 왜 아름다운지, 거기에 그려진 빛이 무얼 비추고 있는지, 혹은 화가의 시선이 왜 거기에 가 닿았는지 등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그냥 보았을땐 미처 찾을 수 없었던 의미들이 생겨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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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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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은 또 처음 접해보는 거다. 아니 어쩌면 내 기억에 남지 않은 책이 스쳐갔을지 모르니 의식한적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좌우간 책 뒷 표지에 있는 '미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라는 표현을 읽고 일단 심사가 뒤틀려 버렸다. 딱히 반미 사상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요 근래에 나쁘게 박혀버린 그 나라의 이미지를 버릴수는 없나 보다.

작가의 국적에 너무 치중한 탓에 판단력이 흐려진걸까? 아니면 <달의 궁전>이란 제목에서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탓일까? 어쩌면 풀 오스터란 이름 뒤에 따라 다니는 유명세를 너무 의식한건지도 모른다. 대화가 거의 없이 일인칭 독백으로만 이뤄진 책은 말라 비틀어진 바게트처럼 딱딱하고 지루했다. 나오는 인물들이나 가끔 등장하는 달에 대한 이야기 역시 아무 개연성 없이 그저 빨랫줄에 걸린 빨래처럼 줄줄이 나열되었을 뿐 나를 확 사로잡을 건덕지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적어도 절반을 읽을때 까지는.

그래도 한번 펼쳤고 책을 샀으니, 적어도 끝까지는 읽어야 판단을 내릴수 있을거야 하는 생각에 몇번의 끊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까지 꾸역꾸역 다 먹어 치웠다. 처음에는 인스턴트 식품처럼 플라스틱 맛이 났다. 적어도 내 구미에 맞지 않는건 확실했다.

하지만 절반을 넘어서면서 부터 어느정도 문체에 적응이 되자 꾹 참으며 읽어온 인내에 보답이라도 하듯 지나온 장면들이 하나 둘 머릿속에 그려졌다. 딱히 묘사가 아름답다거나 특별하지 않다 생각했건만 무미건조하게만 보였던 글들이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처럼 떠오르는 것이다. 장님이였던 에핑이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세세하고 정확한 묘사를 요구했던 것처럼 작가도 눈으로 읽어지는 상황을 생생히 표현해냈다. 여기서부터 풀 오스터란 작가의 역량을 느끼며 점점 기대가 생겨났다.

달의 궁전은 세 사람의 연대기를 다루고 있다. 먼저 가난의 극한까지를 경험한 젊은이와 그 젊은이가 처음으로 얻은 일자리에서 보살피게 된 괴팍한 늙은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독한 신체적 컴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중년이다. 앞의 두 사람인 젊은이와 늙은이는 꼭 닮아 있는데 절대 타협할줄 모르고 자신만의 세계가 강한 고집쟁이들이다. 두 사람의 경험은 달랐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았고 시간과 거리는 떨어져 있었지만 개요만은 일치했다.

마지막의 중년만은 예외였는데 좀더 온유하고 열려있는 사고를 가져 지독한 비만이라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사람들 앞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나를 가장 매료시킨 인물이다.

결국 뒤죽박죽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듯 보였던 이야기는 종결에 다다르자 상상도 못했던 결말을 토해내고 한동안 충격에 휩싸인 내 심장은 마지막 부분을 읽어가는 동안 두근거렸다. 뛰어난 상상력과 거기에 붙여진 살들이 경의로울 정도였다. 어느새 나는 그에게 쏟아지는 모든 찬사를 이해하고 있었다. 비록 내 취향은 아니였지만.

그러나 역시 초반에 집중하기 힘든 책이란 것에서 입은 데미지가 너무 컸다. 재미를 얻기 위한 기다림이 너무 긴 탓에 설렁설렁 넘겨버린 부분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조만간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을 작정이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아직도 이 책에서 달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인물들과 어우러지지 못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여러각도로 그 점에 대해 생각하고 있고 다시 읽을땐 뭔가 답을 찾을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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