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간간히 들리는 제목이다.

프랑스 작가 기욤 뫼소의 [구해줘]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들른 서점에서 구해줘를 골라 뒤적거린건 순전히 이 책이 통로쪽에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베스트셀러란 딱지를 달고 얼굴을 들어낸 책들은 언제나 믿을만 하다. 물론 정말 마음을 사로잡는 책들은 먼지 낀 구석에 박혀있게 마련이지만 적당히 읽고 있단 기분을 주기 위해 베스트셀러 딱지는 참 쓸만한 보증이다.

 

다수의 선택.

적어도 장점이 하나는 보장된다는 뜻 아닌가.

그 장점이 기계적으로 짜내는 메마른 감동일지, 여기 저기 쓸만한 글조각을 짜집기한 퍼즐일지 알수 없지만

일단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점에서 실망하지 않을 정도만의 신뢰는 주는편이다.

 

서점에서 뒤적거린 도입부는 나쁘진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이 말랑말랑한 문체가 프랑스 작가 특유의 감성에서 나오는 건지, 로맨스를 암시하는건지 아직은 알수 없지만 일단 여자 주인공의 외모가 합격점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비둘기를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동선의 끝에서 깨어나 아침을 시작하는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 지나치게 진부하고 지나치게 영화적인 느낌을 고려한 시작 두 페이지였다.

 

 

서점에서의 짧은 순간, 난 이 책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고 한달 후 자주 가는 도서대여점에서 구해줘를 다시 만났다. 뒷면에는 이런 글이 씌여 있었다.

 

'나는 당신이 이 소설의 첫 장을 펼쳤을 때보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기욤 뫼소-

 

 

처음엔 베스트셀러니까 재미는 보장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지만 마음이 바꼈다. 그냥 시간때우기용으로 읽기엔 기욤 뫼소라는 작가가 너무 자신만만해 보이니까.

첫 장을 펼쳤을때보다 마지막 장을 덮을때 더 큰 행복감을 느끼길 희망한다고? 말이 쉽지 그게 어디 간단한 일인가? 작가가 자신하는 만큼은 기대를 해주는게 독자로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나는 일단 기욤 뫼소라는 작가에게 전폭적인 믿음을 안겨주기로 했다.

 

어디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줄테냐. 잔뜩 기대해 주겠다.

 

사실.. 이런 마음가짐, 많이 삐뚫어지긴 했다.

삐뚫게 보다보면 조그만 결점에도 '내 그럴줄 알았다. 입만 살았지' 따위의 못된 생각이 들기 쉽상이다.  그렇기에, 끝까지 읽은 지금 나는,이 책을 실제 책이 가진 가능성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서평이란 언제든 지독히 주관적인 글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 까놓고 말하자면 이 책을 덮으며 난 짜증을 냈다.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만 무성의하게 던지고선 그래도 고전적인 테마 사랑의 기적을 다루고 트랜드를 따라 반전도 넣지 않았느냐 아무리 항변해봤자 밋밋한 인물들과 이제는 지겹다 못해 억지스런 우연의 연속을 해명할 순 없다.

 

로맨스 장르의 정석처럼 여겨지는 예쁘장한 외모와 열등감, 많이 쳐줘 꿈밖에 가지지 않은 여자 주인공과 깊은 상처를 안고 사랑을 믿지 않는 (적당히 능력 좋고 외모 되는) 남자주인공의 우연한(그러나 필연적인) 만남.

 

앞 뒤 안 가리고 불처럼 타오르는 하룻밤의 행복, 그리고 나서 찾아오는 현실과의 괴리와 거기서 오는 갈등, 쉽게 해버린 거짓말에서 오는 오해, 머뭇거리는 두 사람, 그로인해 닥치는 사고, 뒤늦은 깨닳음, 온갖 역경과 고난을 넘어 결국 이뤄지는 사랑의 기적..

 

이러한 공식, 이미 지칠대로 널렸지만 또 쏟아져 나오고 다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는다. 정말 맥이 빠진다..

 

아마 구해줘가  단순한 로맨스 노선만 따랐다면 적당한 장르소설로 그만한 인기만 얻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는 스릴러와 드라마라는 양념을 추가했고 덕분에 급격히 요동치는 스토리를 볼 수 있었다.

 

중간부터 갑자기(그야말로 별다른 복선 없이 갑자기) 난입한 그레이스라는 인물은 작가가 부여한 반전을 이뤄내기 위해 정말 급하게 뛰어다닌다. 너무 급해서 그녀에겐 적당한 인격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책임감과 신념을 가진 여형사라는 캐릭터를 지키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녀와 함께 속속 등장하는 그레이스 쪽 인물들 역시 급하게 스토리에 몸을 싫어 과거의 사건을 폭로하느라 캐릭터 자체의 개성을 갖추기 힘들다. 그야말로 몰개성한 인물들 뿐이다.

 

인물들이 자체적으로 움직이기엔 작가의 맘이 급하다. 그도 그럴것이 짜 놓은 스토리를 풀어내기도 모자란 지면인 것이다. 정형화된 인물들이 억지로 짜 놓은 해피앤딩을 위해 제 역활만 하고 사라지는 무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아니 솔직히 불쾌하다.

 

스포일러가 될까 결말을 언급할 순 없지만 결말 역시 지나치게 감성에만 호소하고 있다. 가슴 땃땃하게 퍼져가는 감동과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해. 사랑을 이뤄지고야 마는거야! 하는 대리만족..

작가가 느끼길 바란다는 행복이 고작 대리만족이란 말인가.  정말이지 허탈한 마음 뿐..

 

괜히 기대하고 꾸역꾸역 먹다 체한 기분이다.

차라리 전반의 몰캉몰캉한 분위기만으로 전형적인 장르소설을 썼다면,

차라리 후반의 외국 경찰물 티비 시리즈 같은 느낌으로 드라마적인 느낌만 살렸다면..

 

적어도 베스트 셀러가 되진 않았겠지.

 

세상 뭐 없다.

대중에게 적당히 먹히는 요소를 짜 맞춰 그럴듯한 글로 만들면 일단은 성공한다.

 

라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들어준다.

 

그래봤자 무지한 군중의 하나인 나는 이런 사실을 금새 잊고 베스트셀러 딱지만 보면 일단 콩깍지부터 뒤집어 쓸 테지만 적어도 다음에 기욤 뫼소의 신작을 만나게 된다면, 그 책의 뒷 면에서

'나는 당신이 이 소설의 첫 장을 펼쳤을 때보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라는 글귀를 읽게 되면, 교육의 힘을 빌어 단호히 내려 놓을 것이다.

 그야말로 적당히 팔리기 위해 적당히 치장한 적당한 책으로 부터 나부터 구해줘! 외치고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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