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다의 환상 - 하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절판


온다 리쿠의 책 '흑과 다의 환상' 이예요.
표지의 그림이 독특하죠,

상의 표지 입니다.
숲을 걸어가는 네명의 사람.
리에코, 아키히코, 마키오, 세쓰코지요.

개인적으로 하권의 표지 그림이 더 맘에 듭니다.
활짝 피어있는 삼고의 벚나무..
책 중에선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치 않은 나무죠,
일년에 세번 꽃을 피운다는 삼고의 벚나무는
마음에 걸리는게 없는 사람만 볼 수 있다고 해요
삼나무 숲에 벚나무라니, 꽃이 피었다면 눈에 확 띌텐데
어째서 봤다는 사람과 못 봤다는 사람으로 갈리는지..
전설 비슷하게 되어버린 삼고의 벚나무지요.

상과 하의 속표지입니다.
책을 읽지 않고 보았을땐 하권의 그림이 더 강렬하겠지만
(숲 속에 서있는 흰 옷의 여자, 으스스한 느낌이죠)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상권의 그림이 더 끌립니다.
왜 인진 직접 확인하세요. 훗,

상에서 1부 리에코, 2부 아키히코,
하에서 3부, 마키오, 4부, 세쓰코,
이렇게 나뉘죠,
각자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매력적인 두 사람이죠,
리에코와 아키히코,

하지만 감정이입이 가장 깊이 된 인물은 세쓰코였어요.
처음엔 짐작도 못했던 의외의 역활을 완벽하게 소화했죠.
반면 마키오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타입..
내 주변에 있다면 괴롭혀줄거예요.

맘에드는 4부의 세쓰코 표지입니다.
중간부분이라 자꾸 페이지가 넘어와 손으로 잡고 찍었어요.

마키오의 속표지,
어쩌면 가장 서술적인 삽화인지도 몰라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이 생각나네요.

수수께끼와 과거로의 사색.
이 책을 한 문장으로 꼽으라면 여길 고르겠어요.

마지막으로 흑과 다의 환상에 대한 서평을 제블로그에 올려 놓았습니다.
부족한 점이 더 많은 글이지만, 사진과 함께 서평도 즐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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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lgray 2007-01-1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즐겁게 읽었어요. 지금 나온 온다 리쿠의 책을 다 읽었지만, 가장 마음에 오래 남는 책을 하나 고르면... 흑과 다의 환상인 것 같아요. 저는 리에코가 마음에 들던걸요.. ^^

夢猫 2007-01-15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저도 처음엔 리에코에게 잔뜩 물들어버렸는데 나중에 등장한 세쓰코가 더 와 닿더라구요, 닮았다는 느낌 때문에 그랬을거예요,

푸른신기루 2007-01-1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인지는 직접 확인하세요' <- 이런 말 쓰시면 또 지름신 내려오신단 말입니다~!! ㅜ.ㅜ 궁금함은 참을 수 없는 성격;; 사족이지만 손 예쁘시네요ㅋ 특히 손톱 부럽슴다;; 어릴 때 나쁜 습관 때문에 짧은 손톱이 된지라;;;

夢猫 2007-01-1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 말하는 게으른 손이죠, ㅎ 실제로도 게을러서..- _ -;; 일본소설, 여류소설, 좋아하심 지르셔도 절대 후회 안하실거예요, 저도 잘 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 그래도 무리가 되심, 조금 시간을 갖고 있다가 지르심이..ㅎ 많이 주문해놔봤자, 담달 허리나 휘고, 막상 많으면 훌훌 읽히지도 않더라구요
 
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여섯번째 사요코, 흑과 다의 환상.

 

 

 

 

흑과 다의 환상을 읽는데 삼일이 걸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여섯번째 사요코를 읽었다.

 

흑과 다의 환상이 몇번이나 내 생각을 다른곳으로 이끌었다면 사요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집중케했다. 이 사실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단순히 흑과 다의 환상이 더 지루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흑과 다의 환상이 더 풍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쪽일까..?

 

둘 다 맞다.

사요코는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학창시절의 추억어린 경험들을 끄집어 내는
메타포일 뿐이다. 아름다운 급우를 동경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시기.
열 아홈살, 아이와 어른의 경계라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막연한 불안감과 기대를 동시에 품었던 시기,
학교라는 테두리에 압박을 느끼면서도 교복을 입었단 이유로 어떤 행동도 용서 받을거라 믿는 호승심의 시기,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 지금의 내 모습은 없었다.

미래는 막연했고 오히려 당시에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데 당혹감마저 느껴진다.

짧았고, 이미 필요없는걸 너무 많이 알아버린 상태론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때,
그렇기에 더 아름답게 미화되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열 아홉살의 학교,
사요코가 있는 곳이 바로 그 학교이기에 책을 읽으며 당시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다.

심령현상, 불온한 분위기, 자꾸만 등장하는 미스테리들은 우리의 부푼 추억의 힘을 입어
여섯번째 사요코의 존재감을 확장시킨다.

 

이런저런 실상을 덜어내고 나면 남는게 무얼까.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 여고괴담을 닮은 이야기 뿐이다.
단지 그 이야기가 여고괴담보다 치밀하고, 그럴법할(그래서 실제적인) 뿐이다.

 

이 책에서 작가 온다 리쿠는 자신의 소녀적 감성을 뽐내듯 드러내고 있다.
부끄러운 기색도, 우쭐한 기색도, 회상에 잠긴 기색도 찾아 낼 수 없다.
온다 리쿠는 마치 아름다운 외양에 경외와 두려움과 권력까지 느끼고 마는
십대시절의 소녀로 돌아간 양 글을 풀어낸다.

 

덕분에 당시의 내가 어떤 소녀였는지 생각하며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뜨끔, 이나 잠시 멈춰 한 문장에 얽힌 기시감에 대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십대의 나는 이미 지나버렸으니까.
나는 더 이상 열 아홉살이 아니다.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온다 리쿠가 던지는 미스테리에 흠뻑 빠져 끝까지 그녀의 의도대로 몸을 맞기고 흘러간다.

십대 소년 소녀들의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튀어나가 버릴 것 같은 분위기.
학교라는 막힌 공간에서 불안한 상태의 아이들 사이로 은밀히 퍼지는 괴담.
그걸 실현시키고 확장하는 작가의 손 끝,


충분히 재밌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흑과 다의 환상에서와 같은 진득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순식간에 빨려들듯 사요코를 단숨에 읽었고, 읽는 내내 재미를 느꼈지만
기분나쁘게 발을 걸며 생각을 강요했던 흑과 다의 환상 쪽이 더 끌린다.

 

사요코에서의 온다 리쿠라면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보기 좋구나' 여기고 말겠지만,
흑과 다의 환상에서의 온다 리쿠라면 눈을 마주하고 앉아 밤새 사치스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미 내 나이가 십대의 관문을 넘었기에 그러하다.
좀 더 일찍 사요코를 만났다면 그 나이대 아이들이 그러듯,
아름다운 사요코를 더 신비스럽게 여길 수 있지 않았을까..

 

덧붙여..

온다 리쿠의 머릿속을 떠다니는 몇가지 단어들이 보인다.

아름다운 여성이 지닌 권력과 폭력성(자기 파멸욕구라 해도 상관없지만)

미스터리, 관계와 관찰자, 특히 관찰자는 온다 리쿠 자신의 특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등장한다.

그게 그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직접 물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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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 - 상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라는 인상을 풍기는 책이다.
실제로 흑과 다의 환상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아직 베일을 덮여있다.

 

그 중에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가지와라 유리.

 

흑과 다의 환상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뉘어 있다.
냉정하고 분석적인 리에코. 주연으로 타고 났지만 조연의 삶을 살겠다는 아키히코.
어딘가 중요한 부분이 단선된 마키오. 누구보다 정확한 세쓰코.

 

젊은 시절의 일부들을 함께한 중년의 네 남녀는 Y섬 여행을 한다.
여행을 추진한 아키히코는 '과거의 기억을 찾는 여행' 부제처럼 아름다운 수수께끼를 생각해 보자 제안한다.
결과적으로 네 남녀는 지나간 과거에서 서로에게 얽혀있던 복잡한 감정과 의문을 이 여행을 통해 풀게된다.

 

절묘하다 싶었던 점은 여행의 진행을 따라 네 사람의 시점이 변한 다는 것,

각각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가 된다.
처음 등장한 리에코는 그들 과거에 얽힌 인물 가지와라 유리와 대학시절 애인이였던 마키오 간의
수수께끼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분석적이지만 원치 않는 결론은 무의식 중에 차단한다'는 세쓰코의 말처럼
답은 내리지 못한다.

 

그녀가 제시한 수수께끼는 바톤을 이어 받은 아키히코의 유년시절 친구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로 이어지고
그 미스테리의 열쇠를 쥐고 있던 마키오에 의해 진실이 밝혀진다.
마키오를 친구로서 동경하고 사랑하던 아미히코와 그의 누나의 굴절된 사랑이 자아낸 한 소년의 희생.
어디까지나 가지와라 유리와의 직접적인 접점이 없던 아키히코 편에서 유리에 대한 미스터리는
몇개의 단편적인 사실로만 흰트가 될 뿐, 이야기를 궁극적으로 풀어 낼 사람은 마키오다.

 

마키오 편에서야 유리, 리에코, 마키오 세 사람을 둘러싼 의문이 모두 밝혀지고
아키히코와 리에코 모두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마키오라는 인물에 대한 가닥이 잡힌다.
어찌보면 나머지 세명을 묶고 있는 가장 큰 연결고리는 마키오다.

 

흐름을 읽고 어느 무리에서나, 누구든 무리 없이 대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해설자 역활의 세쓰코는
조금씩 모난 세사람을 적당히 조율하고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는 관찰자적 인물이다.
외려 아키히코 보다도 유리와의 연결점이 없는 세쓰코는 그렇기에 이야기에서 제외될 법도 하지만
누구보다 세 사람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단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결국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는 사람으로 가장 적임자가 아니였다 싶다.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독자적으로 자신의 수수께끼를 푼다.

 

일인칭 시점 책을 접했을때 항상 드는 느낌은 지나친 끈적함이다.
본이 아니게 한 사람의 마음속까지 속속들이 살피게 된다. 현실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 실현된다.
그러면서 발견하는 나 자신의 관음증적 욕구가 끈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더구나 온다리쿠의 스타일은 인물의 눈을 통해 바깥과 다른 인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게 아니라
인물 내면의 복잡하고 셈세한 방들을 뒤지는 식이다. 누구도 봐선 안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끄집어 내어 해부한다.

 

지나치게 입체적인 그녀의 인물들이 전개하는 일인칭은 그래서 더욱 곤란하다.
우리와 똑같이 과거속의 트라우마와 약한 부분을 간직한 그들의 마음속이 여과없이 들어나
감정이입 이전에 관음욕구까지 자극하는 것이다.

 

그만큼 온다 리쿠의 인물들은 실제적인 힘을 갖고 있다.

 

그녀의 문장들은 때때로 섬뜩한 느낌을 준다. 어디선가 느껴본, 어디선가 떠올린 생각들이
활자가 되어 그녀의 책에 인쇄되어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녀 안에 이 많은 문장들은 어디로 갔을까.
온다 리쿠는 작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일 것이다.

 

낮선 곳으로의 여행.
익숙하지만 각자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진 않는 거리의 젊은 시절의 친구 셋과 함께 하는 여행.
마음 속에 묻어 두었던 젊은날의 의문들, 중년이 되어 이제사 마주할 결심이 든 무서운 기억,
일상에 ?겨 흘려버린 작은 미스테리들을 생각하는 사치, 이 모든것이 어우러져
네 남녀는 나름대로의 '극복'을 하고 여행의 끝과 함께 흑과 다의 환상도 막을 내린다.

하지만 책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수께기를 남기고 있다.

 

그 수수께끼들은 온다 리쿠의 다른 작품들에 발을 담그고 있다.


흑과 다의 환상이라는 그리 짧지 않은 글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온다 리쿠란 작가에겐
숨겨놓은 다른 부분이 더 많은것 같단 기분이 들기에, 보물찾기를 하고 싶기에, 상관없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복잡한 내면이 매력적인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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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간간히 들리는 제목이다.

프랑스 작가 기욤 뫼소의 [구해줘]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들른 서점에서 구해줘를 골라 뒤적거린건 순전히 이 책이 통로쪽에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베스트셀러란 딱지를 달고 얼굴을 들어낸 책들은 언제나 믿을만 하다. 물론 정말 마음을 사로잡는 책들은 먼지 낀 구석에 박혀있게 마련이지만 적당히 읽고 있단 기분을 주기 위해 베스트셀러 딱지는 참 쓸만한 보증이다.

 

다수의 선택.

적어도 장점이 하나는 보장된다는 뜻 아닌가.

그 장점이 기계적으로 짜내는 메마른 감동일지, 여기 저기 쓸만한 글조각을 짜집기한 퍼즐일지 알수 없지만

일단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점에서 실망하지 않을 정도만의 신뢰는 주는편이다.

 

서점에서 뒤적거린 도입부는 나쁘진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이 말랑말랑한 문체가 프랑스 작가 특유의 감성에서 나오는 건지, 로맨스를 암시하는건지 아직은 알수 없지만 일단 여자 주인공의 외모가 합격점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비둘기를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동선의 끝에서 깨어나 아침을 시작하는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 지나치게 진부하고 지나치게 영화적인 느낌을 고려한 시작 두 페이지였다.

 

 

서점에서의 짧은 순간, 난 이 책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고 한달 후 자주 가는 도서대여점에서 구해줘를 다시 만났다. 뒷면에는 이런 글이 씌여 있었다.

 

'나는 당신이 이 소설의 첫 장을 펼쳤을 때보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기욤 뫼소-

 

 

처음엔 베스트셀러니까 재미는 보장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지만 마음이 바꼈다. 그냥 시간때우기용으로 읽기엔 기욤 뫼소라는 작가가 너무 자신만만해 보이니까.

첫 장을 펼쳤을때보다 마지막 장을 덮을때 더 큰 행복감을 느끼길 희망한다고? 말이 쉽지 그게 어디 간단한 일인가? 작가가 자신하는 만큼은 기대를 해주는게 독자로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나는 일단 기욤 뫼소라는 작가에게 전폭적인 믿음을 안겨주기로 했다.

 

어디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줄테냐. 잔뜩 기대해 주겠다.

 

사실.. 이런 마음가짐, 많이 삐뚫어지긴 했다.

삐뚫게 보다보면 조그만 결점에도 '내 그럴줄 알았다. 입만 살았지' 따위의 못된 생각이 들기 쉽상이다.  그렇기에, 끝까지 읽은 지금 나는,이 책을 실제 책이 가진 가능성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서평이란 언제든 지독히 주관적인 글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 까놓고 말하자면 이 책을 덮으며 난 짜증을 냈다.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만 무성의하게 던지고선 그래도 고전적인 테마 사랑의 기적을 다루고 트랜드를 따라 반전도 넣지 않았느냐 아무리 항변해봤자 밋밋한 인물들과 이제는 지겹다 못해 억지스런 우연의 연속을 해명할 순 없다.

 

로맨스 장르의 정석처럼 여겨지는 예쁘장한 외모와 열등감, 많이 쳐줘 꿈밖에 가지지 않은 여자 주인공과 깊은 상처를 안고 사랑을 믿지 않는 (적당히 능력 좋고 외모 되는) 남자주인공의 우연한(그러나 필연적인) 만남.

 

앞 뒤 안 가리고 불처럼 타오르는 하룻밤의 행복, 그리고 나서 찾아오는 현실과의 괴리와 거기서 오는 갈등, 쉽게 해버린 거짓말에서 오는 오해, 머뭇거리는 두 사람, 그로인해 닥치는 사고, 뒤늦은 깨닳음, 온갖 역경과 고난을 넘어 결국 이뤄지는 사랑의 기적..

 

이러한 공식, 이미 지칠대로 널렸지만 또 쏟아져 나오고 다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는다. 정말 맥이 빠진다..

 

아마 구해줘가  단순한 로맨스 노선만 따랐다면 적당한 장르소설로 그만한 인기만 얻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는 스릴러와 드라마라는 양념을 추가했고 덕분에 급격히 요동치는 스토리를 볼 수 있었다.

 

중간부터 갑자기(그야말로 별다른 복선 없이 갑자기) 난입한 그레이스라는 인물은 작가가 부여한 반전을 이뤄내기 위해 정말 급하게 뛰어다닌다. 너무 급해서 그녀에겐 적당한 인격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책임감과 신념을 가진 여형사라는 캐릭터를 지키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녀와 함께 속속 등장하는 그레이스 쪽 인물들 역시 급하게 스토리에 몸을 싫어 과거의 사건을 폭로하느라 캐릭터 자체의 개성을 갖추기 힘들다. 그야말로 몰개성한 인물들 뿐이다.

 

인물들이 자체적으로 움직이기엔 작가의 맘이 급하다. 그도 그럴것이 짜 놓은 스토리를 풀어내기도 모자란 지면인 것이다. 정형화된 인물들이 억지로 짜 놓은 해피앤딩을 위해 제 역활만 하고 사라지는 무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아니 솔직히 불쾌하다.

 

스포일러가 될까 결말을 언급할 순 없지만 결말 역시 지나치게 감성에만 호소하고 있다. 가슴 땃땃하게 퍼져가는 감동과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해. 사랑을 이뤄지고야 마는거야! 하는 대리만족..

작가가 느끼길 바란다는 행복이 고작 대리만족이란 말인가.  정말이지 허탈한 마음 뿐..

 

괜히 기대하고 꾸역꾸역 먹다 체한 기분이다.

차라리 전반의 몰캉몰캉한 분위기만으로 전형적인 장르소설을 썼다면,

차라리 후반의 외국 경찰물 티비 시리즈 같은 느낌으로 드라마적인 느낌만 살렸다면..

 

적어도 베스트 셀러가 되진 않았겠지.

 

세상 뭐 없다.

대중에게 적당히 먹히는 요소를 짜 맞춰 그럴듯한 글로 만들면 일단은 성공한다.

 

라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들어준다.

 

그래봤자 무지한 군중의 하나인 나는 이런 사실을 금새 잊고 베스트셀러 딱지만 보면 일단 콩깍지부터 뒤집어 쓸 테지만 적어도 다음에 기욤 뫼소의 신작을 만나게 된다면, 그 책의 뒷 면에서

'나는 당신이 이 소설의 첫 장을 펼쳤을 때보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라는 글귀를 읽게 되면, 교육의 힘을 빌어 단호히 내려 놓을 것이다.

 그야말로 적당히 팔리기 위해 적당히 치장한 적당한 책으로 부터 나부터 구해줘! 외치고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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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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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독서편력을 가진 나에게 인문서적은 오르기 힘든 산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꾸준히 도전하는 분야는 존재하고 대표적인 것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심리서다.
스스로를 비롯, 주변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나는 어떤 책을 읽든 일단 등장인물에 주의를

기울인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쉽게 작가가 가진 힘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를 매료시키는 힘, 온전히 감정을 몰입하고 작품에 동화되게 하는 힘을 말이다.

이야기의 뼈대는 에피소드와 소재의 차지겠지만 그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분명 등장인물이다.

 

이런 습관은 독서 뿐만 아닌 실생활에서도 당연히 튀어나온다.
나는 사람을 행동 이면에 도사린 동기와 인과관계를 찾기 즐긴다.
[우습게도 이 습관은 내 인간관계에 그렇다 할 이점을 주지 않는다. 중이 제머리 못 깍는다는 말이 백번 옳다.]

 

그리하여 하나 둘 찾아보게 된 심리학 관련 서적들을 고르는 조건은 당연히 '흥미롭고' '잘 읽히는' 이다.
훨씬 전부터 나에 대해 보통보다 조금 떨어지는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흥미롭고' '잘 읽히며' '알지 못했던' 혹은 우리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인간 심리를 다뤄야 한다는,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책이 또 한권 나타났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20세기에 있었던 흥미로운 심리실험 사례 열가지를 모아 놓은 책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작가의 문체가 상당히 드라마틱하다는 것이다.
사례를 옮긴 부분은 대화에 충분한 묘사가 곁들여진 단편소설 같고 저자의 생각이 드러난 부분 역시 말랑한 감수성

이 여기저기 숨어있다. 작가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었지만 그가 여자이거나 적어도 감성적인 글재주를 가진

(이야기꾼 기질이 다분한) 남자일 거라는 예상을 하기 충분했다.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고 나서야 나는 저자가 여자란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의 남편 이야기가 나왔기 대문이다. 더 이후에 겉표지 뒷쪽에서 '미국 최고의 수필상'을 두차례나 수상하고 '뉴

레터 문학상'논픽션 부분 창작상을 수상했다는 이력도 찾아냈다. 그녀는 심리학자이자 작가, 칼럼니스트였다.

 

그것은 그녀의 책이 인간 내면에 신경을 기울일 겨를이 없다 여기는 보통 사람에게 충격을 안겨줄 진실을

능수능란하게 폭로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마치 어렸을때 절대적인 대상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입된 후 당연히 여겨왔던 빨간색이

사실은 빨간색이 아니였다는 말을 듣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의 믿음이 송두리채 흔들리는 기분을 안겨준다.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를 억압하고 조종하는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철석같이 믿어온 기준들을 순식간에 뭉개버린다. 

몰라도 사는데 하등 불편함이 없을테지만,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간 안에 도사린 복잡한 진실들은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책은 말한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사기꾼의 교묘한 궤변처럼 들린다.
우리 의식이 거부부터 하는 교묘한 트릭이 거미줄처럼 우리를 묶고 있다 말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작가가 이처럼 일반인들의 관념을 통채로 부정케하는 사례들을 노련한 이야기로 풀어 나갔음이다.
적당한 완충장치도 놓고 건드려선 안될 부분은 살짝 가리고 지나간다. 그러면서도 순식간에 독자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쇼킹한 힘을 가짐에 분명한 책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작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저자의 흥미 위주로 선택되어진 사례들 중 몇은 실제 학계에선 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실험들이였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작가의 돌발적인 행동들은 책의 설득력을 약화시켰다.

물론 그러한 점 덕분에 책이 흥미로웠던 건 사실이지만 작가가 좀더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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