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여섯번째 사요코, 흑과 다의 환상.

 

 

 

 

흑과 다의 환상을 읽는데 삼일이 걸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여섯번째 사요코를 읽었다.

 

흑과 다의 환상이 몇번이나 내 생각을 다른곳으로 이끌었다면 사요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집중케했다. 이 사실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단순히 흑과 다의 환상이 더 지루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흑과 다의 환상이 더 풍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쪽일까..?

 

둘 다 맞다.

사요코는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학창시절의 추억어린 경험들을 끄집어 내는
메타포일 뿐이다. 아름다운 급우를 동경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시기.
열 아홈살, 아이와 어른의 경계라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막연한 불안감과 기대를 동시에 품었던 시기,
학교라는 테두리에 압박을 느끼면서도 교복을 입었단 이유로 어떤 행동도 용서 받을거라 믿는 호승심의 시기,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 지금의 내 모습은 없었다.

미래는 막연했고 오히려 당시에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데 당혹감마저 느껴진다.

짧았고, 이미 필요없는걸 너무 많이 알아버린 상태론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때,
그렇기에 더 아름답게 미화되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열 아홉살의 학교,
사요코가 있는 곳이 바로 그 학교이기에 책을 읽으며 당시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다.

심령현상, 불온한 분위기, 자꾸만 등장하는 미스테리들은 우리의 부푼 추억의 힘을 입어
여섯번째 사요코의 존재감을 확장시킨다.

 

이런저런 실상을 덜어내고 나면 남는게 무얼까.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 여고괴담을 닮은 이야기 뿐이다.
단지 그 이야기가 여고괴담보다 치밀하고, 그럴법할(그래서 실제적인) 뿐이다.

 

이 책에서 작가 온다 리쿠는 자신의 소녀적 감성을 뽐내듯 드러내고 있다.
부끄러운 기색도, 우쭐한 기색도, 회상에 잠긴 기색도 찾아 낼 수 없다.
온다 리쿠는 마치 아름다운 외양에 경외와 두려움과 권력까지 느끼고 마는
십대시절의 소녀로 돌아간 양 글을 풀어낸다.

 

덕분에 당시의 내가 어떤 소녀였는지 생각하며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뜨끔, 이나 잠시 멈춰 한 문장에 얽힌 기시감에 대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십대의 나는 이미 지나버렸으니까.
나는 더 이상 열 아홉살이 아니다.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온다 리쿠가 던지는 미스테리에 흠뻑 빠져 끝까지 그녀의 의도대로 몸을 맞기고 흘러간다.

십대 소년 소녀들의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튀어나가 버릴 것 같은 분위기.
학교라는 막힌 공간에서 불안한 상태의 아이들 사이로 은밀히 퍼지는 괴담.
그걸 실현시키고 확장하는 작가의 손 끝,


충분히 재밌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흑과 다의 환상에서와 같은 진득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순식간에 빨려들듯 사요코를 단숨에 읽었고, 읽는 내내 재미를 느꼈지만
기분나쁘게 발을 걸며 생각을 강요했던 흑과 다의 환상 쪽이 더 끌린다.

 

사요코에서의 온다 리쿠라면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보기 좋구나' 여기고 말겠지만,
흑과 다의 환상에서의 온다 리쿠라면 눈을 마주하고 앉아 밤새 사치스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미 내 나이가 십대의 관문을 넘었기에 그러하다.
좀 더 일찍 사요코를 만났다면 그 나이대 아이들이 그러듯,
아름다운 사요코를 더 신비스럽게 여길 수 있지 않았을까..

 

덧붙여..

온다 리쿠의 머릿속을 떠다니는 몇가지 단어들이 보인다.

아름다운 여성이 지닌 권력과 폭력성(자기 파멸욕구라 해도 상관없지만)

미스터리, 관계와 관찰자, 특히 관찰자는 온다 리쿠 자신의 특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등장한다.

그게 그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직접 물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