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동안 사람과 컨택을 못했던 여파인지 오늘 일이 끝날 무렵부터 말문이 트였다. 물론 알만한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오후에는 난데 없이 전화를 걸어온 J씨와 거의 싸울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흥분했을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처하자는 마음을 다행히도 바로 광분하기 직전 집어 삼켰기에 다행이었다. J씨도 나처럼 때로는 눈물 흘리는 사람이겠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J씨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물론 그전에도 들렸지만-귀머거리는 아니니까요.)이때부터는 내가 굳이 흥분해서 뭔가 외치지 않아도 이미 그가 알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그도 나도 서로 알면서 괜히 한번 쓰는 '훼이크'같은 거다. (너 아프지? 나도 아파.)

어쨌든 중요한 건 말문이 트여서 마구마구 떠들었다는 거다. 그것도 O랑. 중간에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길 미끄러우니까 동네 들어올 때 조심하라고. 친구 J에게는 문자가 왔다. 아까 출발했는데 길 막혀서 인제 집에 왔다고. 그렇게 떠들고도 모자라서 들어오는 길에 O랑 둘이 앉아서 떡볶이랑 순대랑 튀김도 먹었다.(떡볶이 2000원, 순대 1000원, 튀김 2000원:O가 계산했다. 순대는 O가 특별히 1000원어치만 주문했다.) O는 이제 다른 동네로 간다. 다른 세계로 영영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O가 솔직히 부러웠다. 내가 배운 외국어의 세계가 싫어지려고 할 때, 그 외국어를 사용하는 무리로부터 떨어지고 싶을 때 항상 O가 생각날 것이다.

속으로는 너무 겁이 나서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를 지경이라도 겉으로는 눈빛으로 레이저 광선을 쏘면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O씨와 나는 닮은 사람들이었다. 라고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만큼 뭔가와 싸워 이기겠다는 의지도 언젠가부터는 잃어버린지 오래다.(이기면 뭐할까? 나 그냥 질래요.) 전철에서는 어떤 아저씨가 내려야 할 곳에서 아주머니가(아저씨의 부인처럼 보였음) 몸을 못가누셔서 바로 앞에 서있던 내가 조건 반사처럼 팔을 부축해 드렸는데, 잠깐 그렇게 받아 드렸던 것인데도 그 무게감이 내 몸에서 한참 동안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내가 좋아서 배웠던 말을 사용해서 역시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상처(=훼이크)를 주고 받는다. 거리에 쌓인 눈 위에 사금 조각처럼 반짝이는 불빛이 총총 박혀 있었다. 젠장할 눈물이 났다.

어쨌든 O씨, 당신은 부디 행복하세요. 이제 우리 동네로는 오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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