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적어도 1권 이상의 다이어리를 산다(쓴다는 게 아니라). 3년 다이어리라는 상품을 보자마자 오홋! 하고 외쳤다. (심지어 5년, 7년 다이어리도 있었다.) 그러니까 페이지 하나가 3년 동안의 기록에 이용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좋은 생각이군 했다. 가끔 1년 전 혹은 그보다 오래 전 다이어리를 일부러 꺼내보는 일도 있으니까.

그런데 최근 몇 년을 돌아보니 3년 다이어리 같은 것을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 여겨진다. 만약 오늘 써야 할 페이지에 지난 두 해의 기록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면, 약간은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과거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Scott Spencer의 "Endless Love"라는 소설에 보면 사랑하는 애인의 집에 불을 질러 고등학생의 나이로 정신 감호소 처분을 받은 뒤,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그 애인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과거란 과거 안에 머무는 것'이라고.

다이어리 상품 소개글에는 이런 구절도 보였다. '3년 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알 수 있는 놀라운 다이어리입니다.' 흠. 그럴 거다. 놀라울 거다.

 

끝내기 전에 "Endless Love"(Scott Spencer)의 한 장면 부기

(... ...)

"Now it's your turn, David. It's time for you to realize to yourself that what's in the past is in the past." "I don't think I know what the past is. I don't think there's any such thing." "You want to know what the past is?" said Arthur. "It's what's already happened. It's what can't be brought back." "The future can't be brought back, either. Neither can be the present." "I'll show you what the past is," said Arthur. He clapped his hands together once, waited a moment, and clapped them again-the sound was hollow, forlorn. "The first clap was the past," he said with a subdued yet triumphant smile. If we had shared the sort of life that Arthur had wanted for us it would have contained hundreds of conversations just like this one. "Then what was the second clap?" I said. "That's the past too, isn't it? And right now, while I'm saying this, isn't this the past too, now?"

(... ...) 

부모의 이런 저런 설득과 회유가 오가는 와중에 이미 자식 쪽에서는 감정이 마구 격앙되어 쓸데없이 싸움이 커지는 것은 동서양 구분 없이 똑 닯은 듯. (그냥 네 하고 얌전히 있으면 될 것을, 나부터도 늘 그 모양이니까.. ) 어쨌든 과거가 뭔지를 손뼉을 쳐서 보여주는 아버님도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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