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만화를 읽는 습관이 없다. 그런데 이 만화 "슬램덩크 1"은 앞날개에 적혀 있는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글을 스윽 보자마자 그만 가슴이 물렁해져서 그 자리에서 덥석 집어 들고 (계산한 다음) 품에 안고 서점을 나왔었다. 그냥 하루하루가 짐승처럼(말 못하는 설움-이라기보다는 글 못쓰는 설움, 왠지 친근한 허기) 비굴한 눈치 보기였던 유학생에게는 알지도 못하는 만화가가 앞날개에 쓴 몇 마디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고 보면 된다.

신의 호의로 유학생 신분은 가까스로 벗었지만, 요즘도 가끔씩은 내가 사람인지 아니면 그 비슷한 것인지 헷갈릴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 용기를 북돋워주곤 하는 만화가 님의 선언은 다음과 비슷하다.(프랑스어로 적혀 있던 몇 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한국어로 옮긴 뒤라서, 같다고 하기는 좀.) 

고등학교 때 나는 농구를 했다. 우리 동아리는 센 것과는 정말 거리가 멀었지만 나는 농구에 심하게 재미를 붙였다. 보통은 뭔가 '좋아한다'고 얘기할 때면 그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고백하는 것이, 뭔가 모르게 난처한 느낌이 있고, 그러다 보면 심지어 좋아하지 않는다고까지 얘기하는 일도 생긴다. 그러나 농구와 관련된 것이라면 '나 그거 좋아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 날은, 난생 처음으로 가슴에 만화를 품고 기숙사로 돌아온 짐승도 괜히 기뻐서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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