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남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7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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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나서 느낀 것은 '존재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담은 책'이란 것이다. 주인공은 35에 부자인 먼 친척이 죽으면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 업무에 지친 K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백만장자가 되었다?!'의 당사자가 바로 주인공인 '나'이다. 




이보다 더 현 시대의 직장인의 맘을 표현한 글이 있을까싶다. 권태로운 , 일상을 벗어나는 이벤트가 생겼다. 새 보금자리를 얻고, 직장을 시원하게 그만둔다. 밥벌이로 고통받지 않는 삶...이것은 누구나 부러워할 행운이겠지만, 과연 이것은 행운이었을까?


철학은 있는자들의 특권이라는 말처럼 밥벌이같은 일차원적인 고민에서 해방된 나는 당분간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아늑한 보금자리, 단골 식당, 아무리 술을 마셔도 다음날 숙취를 부여잡고 출근을 해야하는 걱정을 하지 않는 삶. 이윽고 나는 근원적인 물음,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갖게된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하는지 말이다. 권태와 불안은 그를 좀먹어간다. 결론을 낼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여전히 이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화를 설치하고, 철학자와 이야기하며 해답을 얻으려하지만, 결국 술로 모든 것을 잊자 생각한다. 남들과 서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던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된다. 아파트 수위가 바뀌고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이 죽고, 세월이 흘러도 나는 변한 것이 없다. 나는 석가모니나 다른 성자(聖者)들 처럼 어떤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깊은 고독의 무저갱에 빠진 외로운 남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는 이 권태로움 마저도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뜻밖의 행운은 과연 삶의 필요충분조건일까,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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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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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문학동네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테스트를 했었는데, 나와 잘 맞는 책 중 하나가 모니카 마론의 ‘슬픈짐승’이라는 결과가 나왔었다. 그때부터 호기심이 생겨 읽어볼까 하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얇은 두께와 흡입력 있는 문체로 출퇴근길에 호로록 금방 읽은 책이다.

단순하게만 보면 중년의 불륜 스토리이고, 좀 더 생각해보면 독일 통일 직후서독, 동독 출신의 두 남녀가 겪는 격정적인 사랑과 집착을 통해 전쟁, 분단, 그리고 화합의 시대 속에서 혼란스러운 감정과 사회를 온 몸으로 맞아낸 이들을 그려낸 소설이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
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p.9


나 또한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화자의 이유와는 조금 달랐지만 내 안에 너무 많은 가능성을 쏟아낸 뒤에는 죽음만이 당연하다 생각했었다. 백 살 혹은 구십세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나’의 옛 연인에 대한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구 동독 출신인 나는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에서 고생물학자로 근무한다. 서독 출신 개미연구가 프란츠를 만나 사랑에 빠져 남은 생을 이 사랑에 모두 바친다. 그와 헤어진 후에도 사랑의 기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나는 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나는 더이상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 것”
p159



결혼하여 아이를 두고 평균적인 삶을 살았던 나는 어느날 거리에서 발작 후 죽을뻔 했다. 이후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청춘의 사랑이라 일컫는 프란츠를 만나 사랑에 몰두한다. 나중엔 사랑 그 자체에 집착하는 ‘나’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과정이 너무 버거웠다. 프란츠를 사랑했던 것인지 아니면 사랑에 빠진 나를 잃지 않으려는 것인지, 내 삶의 목표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프란측 떠난 뒤로 ‘나’의 시간은 멈춘다. 외부세계와의 교류도 차단한 체, 과거에 머문다. 그녀의 사랑은 과거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현재 진행형이다. 사랑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려했으나 그 사랑이 족쇄가 된 ‘나’가 바로 슬픈 짐승인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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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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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이란 것이 무엇인지 나도 느껴봤고, 이 글을 보고있는 그 누구나도 한번쯤 스쳐지나갔던 감정 또는 모르고 지나간 감정일 것이다. 막연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감정을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때 생각을 한 적있다.

처음에 어떤 내용을 다룬 책일까 궁금했었는데, 어린이책 디자이너에서 만화가로 전직한 작가의 스킬답게 이야기는 담담한 그림체로 쉽고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다. 

가정불화의 원인이자 엄마를 평생 고생시켰던 아버지의 고독사를 주제로 30대 여성이 겪은 상실감, 우울감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사람들은 자식을 낳아 길러보면 부모를 이해하게 된다지만 이 기간이 쌓일수록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더 홧병이나고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나 또한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를 이해하겠지 싶었던 사람으로 저자가 왜 화가나고 눈물만 나던 시간이 많았는지, 이 상실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혼란스러운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같았다. 나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슬픔보다는 알 수 없는 기분이 없는 기분을 저자처럼 느낄 것만같다.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고 자식의 도리를 안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이 설명할 수 없는 끈적거리는 검은 타르같은 감정의 덩어리를 어떻게 풀어내야할까, 미래에 같은 사건을 마주할 나는 과연 어떻게 이것을 풀어나갈까 문득 생각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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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는 곤란해 - 한국 사람이 좋아서 한국 영화가 끌려서
피어스 콘란 지음, 김민영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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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북클럽으로 받은 책. 제목만 봤을 땐 ‘도대체 뭐가 곤란하다는 것일까?’궁금했다. 필수씨는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외국인 피어스 콘란이다. 말장난을 좋아한다는 설명답게 피어스 콘란=필수는 곤란해가 책의 제목이 된 것. 에세이라면 에세이라도 볼 수 있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 덕후의 ‘덕질의 연대기’ 혹은 한국영화 덕심의 일부분을 표출했지만, 조금만 읽어봐도 이 사람 엄청난 덕후 일 것같다는 느낌을 물씬 받을 수 있는 책이다. 한 마디로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어느 외국인의 일상생활과 그 속에서도 연관성을 지울 수 없는 한국영화 사랑일까?

한국영화를 사랑하지만 한국sf영화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파트가 공감됐다. 나 또한 sf느낌만 살짝 내는 지리멸렬한 영화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쓴소리 속에서도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걸 느낄 수 있는 글이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이거 꽤 재밌는 사람이네’하고 순식간에 후루룩 읽어나간 산문집. 무언가에 깊게 몰두할 수 있고, 몰두하는 사람이란 얼마나 행복할까 한국에 사는 한국영화러버 필수씨는 오늘도 행복한 영화 덕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겠구나 부럽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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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앙의 책
오다 마사쿠니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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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만난 훌륭한 킬링타임용 소설집. 이토준지와 에도가와 란포가 생각나는 책이다. 너무 심하게 기괴하고 기분나쁜 일본 특유의 변태스러움이 아니라 적당히 선을 지키는 괴기함이랄까? 



각 단편은 모두 입, 귀, 눈, 살, 코, 머리카락, 나체로 이어지는 '인체'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먹고 피어난 매력적인 이야기 모음이다. 책을 먹으면 바로 책 속으로 들어가 결국 정신이 잠식되어버린다는 독특한 발상의 '식서', 타인의 귓속으로 들어가 기억을 읽고 조종한다는 '미미모구리', 잘라낸 코를 심어 인간을 복제하는 것인지 생산하는 '농장', 머리카락 신을 모시는 '머리카락 재앙', 그리고 노출과 신 인류를 다룬 '나부와 나부' 특히 머리카락, 나체 관련 단편은 읽는 동안 이토준지 단편 만화 한 편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책 발간 전에 만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니 더 기대된다. 



모두 그로테스크한 소재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가 펼쳐져 순식간으로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왜 제목을  '화-재앙의 책'이라고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모두 재앙을 다루고 있지만 재앙이 아닌 느낌이 드는 결말도 있어서 조금 다른 제목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아무튼  몰입할 수 있는 킬링타임용 소설을 찾는 분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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