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위의 삶 -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가 수술실에서 마주한 죽음과 희망의 간극
라훌 잔디얼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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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삶』은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이자 뇌 과학자인 라훌 잔디얼의 회고 에세이다. 『내가 처음 뇌를 열었을 때』 (2020, 윌북)에 이어 한국어로는 두 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 잔디얼은 현재 통합 암 치료 전문 기관인 시티 오브 호프 재단에서 '잔디얼연구소'를 운영하며 암이 뇌로 전이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에 힘쓰고 있다. 책은 10가지 키워드에 맞춰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환자와의 관계 속에서 얻은 생각들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칼날과 외과의사의 삶 혹은 칼날 위(에 놓인 환자)의 삶

『칼날 위의 삶』이라는 제목과 저자가 신경외과 의사라는 정보를 접하면 일단 메스부터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책을 읽기 전엔 외과 의사의 삶에서 결코 뗄 수 없는 칼날(메스)을 상징하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는 마치 칼날 위(위험하고 위태로움)에 사는 것 같았던 그의 곡절 많은 삶을 비유하는 듯 보였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저자의 칼날에 몸을 맡긴 환자들의 삶까지 염두에 둔 제목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쨌든 책에서 저자는 거듭 환자들로 인해 많이 배웠다고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 책과의 차이점

배송을 기다리며 먼저 나온 책을 읽어봤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전 책과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 『내가 처음 뇌를 열었을 때』 (2020, 윌북)는 의욕적인 뇌 과학자가 최신 뇌과학을 알기 쉽게 파헤쳐 드립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뇌 건강 생생정보통(원제가 Neurofitness다.)에 가깝다. 그러나 이 책은 여느 개인과 다름없이 불안에 떨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어려운 문제도 마주하면서 종종 윤리적인 문제와도 부딪히는 인간의 삶을 집중 조명한 인간극장에 더 가깝다. 수술 과정을 묘사하며 자연스럽게 뇌의 각 부위와 기능을 언급하는 부분도 있지만 정보 전달의 목적보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환자와 겪은 갈등과 자신의 선택, 시간이 흐른 뒤 깨달은 고찰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유능한 의사지만 저도 사람이랍니다

저자의 솔직함에 놀랐다. 첫 장인 트라우마에서부터 자신의 트라우마를 밝히며 시작한다. 충격적인 기억이 어떻게 현재의 자신에 이르도록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외상 후 장애보다 외상 후 성장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성장기, 레지던트 시절 악명 높은 대학교수와의 위기, 자신을 위협하는 이웃과의 갈등,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후회, 수혈을 거부하는 교리를 고집하는 부모와 자녀의 생명을 사이에 둔 갈등처럼 개인의 삶과 의사의 삶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지한 주제 앞에서 독자의 마음이 무거워질 때조차 저자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모든 선택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 그럼에도 몰입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좌절을 딛고 매일 새로운 도전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신경세포를 연상시키는 이것

표지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겠다. 일러스트 속 선명하게 보이는 눈이 마치 고래의 눈처럼 보였다. 물론 내가 떠올린 이미지와 책 내용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그보다 뒤늦게 발견하고 깜짝 놀란 부분은 제목과 부제 부분이다. 주의를 기울여야 알 수 있는 형압이다. 굵은 서체의 제목을 강조하기 위한 형압 후가공은 사실 책 표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주목한 것은 티가 날 것 같지도 않은 얇디얇은 서체에 굳이 음각 효과를 넣은 점이었다. 손끝으로 표지를 문질러보다가 우연히 알아챘다.


왜 굳이 이런 '티 안 나는' 수고를 들였을까 생각하면서 손끝의 감각에 다시 집중했다. 서체 두께가 얇아서 촉감만으로는 이것이 글자라는 형체를 가졌다는 것조차 파악할 수 없다.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여기 존재하고 오밀조밀 얽혀있다는 막연한 느낌만 남는다. 이 애매한 느낌이 마치 저자가 반복해서 얘기한 신경세포 찾기와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지만 인상적이었다. 실물 책을 산다면 꼭 한 번 표지를 만져보시라고 알려주고 싶어 언급한다.



추천하고픈 독자

병상에서 맞이할 죽음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본 사람

주변 혹은 자신이 뇌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각종 의학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사람

암 가족력으로 건강염려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뇌에 관한 책이라면 빠짐없이 읽고 보는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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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 인생에서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존 이조 지음, 박윤정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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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컨설턴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이조가 235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죽기 전에 발견해야 할 5가지 비밀을 밝힌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Five Secrets You Must Discover Before You Die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실제로 삶에 '비밀'이 있다는 생각과 '죽기 전에' 중요한 것들을 서둘러 깨달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게 위해 영문판 원서 제목을 이렇게 정했다고 설명한다.



'죽기 전에'라는 말이 다소 우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 말이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임을 강조한다. 삶이 정말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사실 우리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와 달리 한국어판 제목에서는 '죽기 전에'라는 부분이 빠졌다. 한국의 정서를(?) 고려한 선택일까? 오히려 너무 흔해서 식상하기 때문에? '죽기 전에'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면 무려 167건이 검색된다. 후자의 이유가 컸을 듯 싶다.




사실 제목이 너무 길어서 한 번에 외워지지가 않는다.

뭔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제목이 아니어서 아쉬운 한편, 이 무난한 제목처럼 너무 쉬운 삶의 진실을 담고 있기에 담백한 제목을 선택한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생의 유한성에 대해 각성한 계기는 아내의 갑작스런 뇌출혈이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을 두려워하며 이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지혜는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삶의 진정한 의미도 깨닫지 못한다.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29



【첫 번째 비밀 :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죄라는 말은 궁술에서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는 것처럼 '과녁을 놓치다'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가장 큰 죄는 삶의 목적이라는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64


"자신을 알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자신에게 '기분 좋은 피곤'을 선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65쪽)이다. 명료하게 와닿는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몸은 피곤하지만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런 것을 찾고 따르라는 의미다.



자신의 가슴이 이끄는 대로 살려면 주변의 다른 목소리들을 잠재울 수 있어야 하고 행동할 용기도 있어야 한다. 삶을 대대적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생계를 위한 일을 유지하면서 서서히 자신이 원하는 일 쪽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나가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두 번째 비밀 : 후회를 남기지 말라】


사랑에도 언제나 거부의 위험성이 있으며, 꿈을 좇아도 실패할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주어지는 건 실패뿐이다.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97


읽다보면 어느 순간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나 문득 겁이 난다. 남이 시키는 대로,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에 맞춰 성실히 살아왔을 뿐인 사람은 굳이 이 모든 걸 갈아엎을 필요가 있나 생각할 지도 모른다. 모든게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게 아니라면 현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망하면 어떡하지?

후회하면 어떡하지?

큰 빚이라도 지면 어떡하지?

평판에 금이 가면 어떡하지?


짊어질 의무가 늘어갈수록 내 목소리에만 집중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이기적인 선택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에선 오히려 위험을 감수할수록 후회가 줄어든다고 일러준다.


그녀는 결정할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나이 들어 흔들의자에 앉아 지난 삶을 돌아볼 때,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좋았다고 생각하게 할까?"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107


이 말도 인상 깊었다.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미래의 나를 떠올리며 어떤 기억을 선물할까 고민하는 것. 후회를 남기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일들이 깊은 후회를 남긴다. '실수'를 통해 배움을 얻을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도 놓치지 않는다.



【세 번째 비밀 : 스스로 사랑이 돼라】


자신을 사랑하는 여러 방법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먹을거리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를 결정짓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다.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129


책 132쪽에 실린 나바호족 전통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악한 늑대와 선한 늑대 중 누가 이길까하는 얘기다. 결국 내가 먹이를 주기로 마음 먹은 쪽이 이긴다는 대답을 읽고 먹먹해졌다. 나는 내 마음에 어떤 먹이를 주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됐다.


나는 스스로 사랑이 되는 것이 타인들도 이롭게 하는 길일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도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의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수록, 우리는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된다.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145


【네 번째 비밀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순간을 산다는 것은 삶의 모든 순간 속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삶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160


삶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다면 '지루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추방하라는 말도 인상 깊었다. 현재를 온전히 즐긴다는 게 도무지 뭔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 강아지와의 산책을 얘기하는데서 의미를 깨달았다. 강아지는 매 순간을 후회없이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왜 그런 설레는 마음으로 매 순간을 즐기지 못할까?


"걱정은 결코 내일의 슬픔을 씻어주지 않는다. 언제나 현재의 기쁨을 앗아갈 뿐!"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168


【다섯 번째 비밀 : 받기보다는 주는 데 힘써라】

우리 대부분에게는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와 연결되고픈 갈망이 있다. 우리를 더 큰 무언가와 이어주는 것은 바로 베풂이다.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188


우리는 잠시 '빌린' 세계에서 살고 있다. 각각의 세대는 이전의 세대에게 '빌린' 세계를 아직 오지 않은 세대를 위해 잠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195



【비밀을 실천하는 방법】


우리가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향해 움직인다는 말이다. 이는 삶의 변화를 이뤄내는 데 아주 중요하다. (중략) 무언가를 의식 속에 강하게 품고 있을수록, 그것을 향해 나아갈 가능성은 커진다.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214


8장 비밀을 실천하는 방법에서 제시하는 연습 방법이 예상 밖이었다. 정말 이걸로도 가능하다고 싶었지만 깡그리 무시하기엔 이런 무의식이나 마인드 설정의 중요성에 대해 다룬 책을 여러권 접한 터였다.



긍정확언을 쓰며 뇌에 각인시키기 같은 내용을 다룬 자기계발서, 유튜브 영상이 수두룩하다. 흰 눈으로 보며 이거 다 뻘짓아냐? 라고 넘기곤 했는데 맙소사 여기서 또 만나게 되다니.



저자는 변화를 이끌어 내는 자연적인 학습 과정을 설명한다. 바로 인식과 실험이다. 이는 우리가 걷기와 모국어를 익힌 과정과 같다. 무언가를 의식하고 지속적으로 기억한다. 반복하여 실험하고 연습하다. 그러면 어느 날 목표는 이뤄져있다. 설명은 간단하다.



연구 결과 하나를 인용하며 저자는 카드를 이용한 반복 인식 학습법을 제안한다.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가장 중요한 것을 카드에 적고 항상 지니고 다니며 하루 열 번에서 스무 번씩 꺼내보고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카드를 항상 지참하는 게 번거롭다면 질문 목록을 만들어 매일 혹은 매주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찰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질수록 더욱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전한다.



"비전이 없는 행동은 자신의 시간을 탕진하는 것에 불과하고, 행동이 없는 비전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습니다."

『너무 쉬워 놓쳐버린 삶의 다섯 가지 비밀』 (2024, 문예춘추사) p.230


이 책을 읽고 진정한 나를 찾는 것에서 시작해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한 인간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



진실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원하는 삶을 추구하고 후회없이, 현재를 즐기고 감사하며 살다가 종국에는 세상에 자신와 성취와 사랑을 돌려주는 영화 한 편이 그려진다.



이 모든게 참 이상적인 선순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삶을 추구한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이런 마음가짐을 상기한다면 서로를 보고 얼굴 붉히는 일이, 오해하고 의심하고 괴롭히는 일이 줄지 않을까?



나는 일단 두 가지를 자주 떠올릴 것 같다. 오늘 하루 '기분 좋은 피곤'을 느꼈는지, 흔들의자에 앉아 과거를 반추하는 노인을 상상하며 지금 내 인생을 어떻게 회상하고 싶은지를 말이다.




■ 추천포인트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하여 공감하기 쉽다.

저자가 추린 가장 중요한 내용만 담겨 있다.

매 장마다 실천을 위한 질문 목록이 실려 있다.

밑줄 긋고 늘 기억하고픈 따뜻한 말들이 가득하다.



■ 추천하고픈 독자

제목에 곧장 이끌린 사람

좀 더 활기찬 인생을 꿈꾸는 사람

개인적인 계기로 삶을 돌아보게 된 사람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가진 사람

충만하고 행복한 노년을 꿈꾸는 사람

육아로 눈코뜰새없이 바쁜 사람

졸업이나 퇴직 후 갑자기 길을 잃은 느낌에 사로잡힌 사람

진로 찾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모든 사람

명절 때마다 '그 때 그걸 했어야 하는데' 타령을 하는 친척어른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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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무서운 사람들을 위한 책 - 불안 전문 심리치료사가 알려주는 스트레스 없는 대화법
리처드 S. 갤러거 지음, 박여진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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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의 원제부터 확인하자.


Stress-Free Small Talk : How to Master the Art of Conversation and Take Control Your Social Anxiety


한국어판 제목은 좀 더 광범위한 '대화'를 말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은 스몰 톡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우리는 왜 대화를 해야 할까?

책은 대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한다.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안전한 존재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신호다.

- 자신과 상대가 비슷한 성향이나 성격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 공통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 돈독한 인간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대화가 필요한 순간들】

- 네트워킹

- 비즈니스

- 명절, 기념일 등 특별한 행사

- 지역, 취미 등 공동체

- 개인 생활



네트워킹 부분은 IT업계에선 활발한 것으로 아는데 다른 직종에도 이런 기회가 많은지 모르겠다.



북미의 스몰 톡 문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실상 한국인 입장에선 적용하기 애매하다 느낀 부분도 많았다. 피곤한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서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이와 대화하기? 산책길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대뜸 말 걸기? 이웃과도 대화할 일이 드문 곳에서 이상한 사람이라는 오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론 우리 사회는 타인과 부담 없이 가볍게 대화할 기회 자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우린 낯선 이들과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지 않는다 뿐이지 SNS을 통해 대화하는 경우가 요샌 훨씬 많지 않은가? 댓글 소통도 대화라고 친다면 말이다. 물론 책에선 그런 부분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책 표지에는 전화도 언급하고 있는데 정작 전화 통화에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모든 내용은 사람과 직접 대면해서 대화하는 상황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원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대화를 할 때 종종 잊곤 하는 부분도 환기시켜 준다.



"대화를 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라는 점"(39쪽) 과 "상대가 당신의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가 더 중요"(39쪽) 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추가로 참고하면 좋은 부분은 적극적 경청의 4단계였다.



【적극적 경청 active listening 4단계】

- 바꿔 말하기

- 감정 짚어주기

- 타당성

- 동일시



​저자는 수줍음, 내향성, 사회불안을 분류하고 불안으로 인해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돕는 방법도 제시한다.



【수줍음과 내향성, 사회불안은 다르다!】


■ 수줍음

주로 ​불편해하는 태도​로 드러남.

대체로 상황에 따라 단기간 나타남.

그 자리를 벗어나면 괜찮아지는 경우 많음.


​■ 내향성

주로 에너지 고갈로 드러남.

아무리 즐겁게 대화를 나눠도 마지막에는

온몸에 힘이 쏙 빠진다.


​■ 사회불안

주로 공포​로 드러남.

사회적 상황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애쓴다.

수줍음이 과도해져 사회불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불안을 유발하는 요소를 파악하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첫 단계"(73쪽)이며 감정, 신체 변화 등 영향을 받는 요소들을 상세하게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회불안장애로 대화가 어렵다면】

- 마음 알아차림

- 감정 적어보기

- 천천히 호흡하기

- 세분화하기 (몸과 마음의 감각을 상세히 기록)

- 목표를 시각화하기


"인지행동치료의 목적은 현실을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93쪽)이라고 강조하며 수집한 케이스를 바탕으로 인지 재조정을 시도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인지 재조정 cognitive restructuring’ 시도하기】

1단계

두려운 생각을 떠올려보고 기록하기

(반드시 손으로 기록한다!)


2단계

떠올린 생각에 담긴 오류 찾아내기

(인지 왜곡 cognitive distortions 찾기 - 과장, 예측, 기대 등)


3단계

왜곡되지 않은 생각으로 다시 써보기

(왜곡된 사고에 반박하기)



【대화는 기술이다!】


저자는 걸음걸이를 배우고 피아노를 익히듯이 대화 또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 장 중간에 등장하는 [연습해보기] 는 앞에서 이해한 내용을 적용할 수 있는 실천 사항들이 적혀있다. 대화의 ‘기술’에 숙달되는 방법은 꾸준한 연습과 반복뿐이라고 하니 바로 시작해도 좋다.



어떤 상황에 떨어져도 곧장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과 요령이 없다면 준비가 필수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만남의 목적을 고려하여 미리 적절한 대화 소재를 준비하라고 일러준다.



【의외라고 느낀 점】


스몰 톡에서 가장 무난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주제인 날씨를 지루하다는 이유로 좋지 않은 대화 주제로 분류한 것이 의외였다.



스몰 톡이 워낙 빈번한 북미 문화에선 판에 박힌 따분한 대화 주제가 될진 몰라도 낯선 이와 좀처럼 대화를 나누지 않는 문화권이라면 날씨 주제는 여전히 대화 소재로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상대방의 인간관계, 이를테면 아내는 잘 지내시냐 자녀들은 잘 지내냐 같은 질문이 상대에 따라 난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혼했거나 사별했을 수도 있고 자녀와의 관계가 나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상대에게 관심을 표하고 싶다면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의외로 관성적으로 내뱉기 쉬운 질문이라 실수하기 쉬운데 이렇게 한 번 짚어준 게 좋았다.



반드시 피해야 할 주제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듯이)

정치, 종교, 비난, 불평이다.



​【티 안 나게 대화에서 빠지는 방법】


나에게 유용했던 부분은 적당히 예의를 갖춰 말을 마무리 지은 후 대화에서 빠지는 법이었다. 나는 거절을 못 해서 원치 않는 회식 뒤풀이에까지 억지로 끌려가기 일쑤였다. 한 번도 빠짐없이 항상 후회했다.



​후회는 '왜 그때 나는 거절을 하지 못했을까'에서 '그러게 왜 나를 끌고 간 거야'라는 원망으로 곧잘 이어졌다. 내가 거절하지 못해 생긴 불편한 감정이 부끄러움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남 탓으로 이어졌다. 회피를 방치하면 이런 왜곡이 쉽게 일어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정말 피곤한 사고방식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나를 힘든 상황에서 제때 구출하지 않으면 애먼 사람들만 원망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적당히 맺고 끊을 수 있다면 상대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기고 나 또한 만족스럽게 만남을 마무리할 수 있다. 나와 상대 누구도 탓하지 않고!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찾아온다. 역시 모든 문제의 시초는 나라는 진리로(?) 돌아온다.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따라 하라】


잘 모르겠으면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배우라는 것도 유용한 팁이었다.



사실 나는 이것을 댓글 쓸 때 활용하고 있다. 워낙 무플로 정보 취득만 해 온 인생이라 이웃의 글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게 처음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바로 앞선 사람의 댓글을 참고하는 것!



​소통 초보자인 나는 어떤 식으로 댓글을 남겨야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까 고민하는데 그럴 때 베테랑 블로거들의 댓글 대화가 도움이 된다. 저 정도의 거리와 예의를 갖춰 댓글을 달아야 하는구나라는 걸 배운다. 어디서든 배움의 기회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지구에 처음 오셨나요?

인간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하고 외계의 방문자에게 매뉴얼로 내밀면 좋을 책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한 성인이라면 딱히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란 말이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마음을 열어두라.

상황을 통제하려는 압박에서 벗어나라.

완벽주의를 버려라.

실수에 관대해져라.

인간적인 면은 호감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걱정 마라)

마주하는 상황들에서 항상 배우는 태도를 가져라.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나 멘토가 있다면

접할 수 있는 수준의 조언들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찾을 수 있는 조언들이다.



​너무 당연해서 '이걸 굳이 책으로?'라는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때론 너무 힘들어서 이런 삶의 기술을 잠시 잊게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대화의 감각을 상실한 사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

추천하고픈 독자

​지구에 처음 방문한 외계인

회화와는 평생 담을 쌓은 탓에 입이 안 떨어지는 분

사회성 없다는 소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분

데이트 후 애프터를 항상 거절당하는 분

북미 스몰 톡 문화에 이골이 난 해외 교민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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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40가지 철학의 순간들
인생학교 지음, 정은주 옮김, 알랭 드 보통 기획 / 오렌지디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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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들어봤는데 지은이가 인생학교라고? 그게 뭐지?

나도 정확히 무슨 활동을 하는지 살펴본 적이 없어 표지의 소개부터 읽었다.




인생 학교 The School of Life는 알랭 드 보통이 주축이 되어 만든 프로젝트 학교다. 2008년 런던에 처음 문을 연 이래 유럽 곳곳에 분교를 세웠고 삶의 본질과 연결된 다양한 질문에 대해 토론하는 공간이라는 게 이곳의 정체다.

 

유튜브 채널 주소가 있길래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바로 들어가 봤는데 인생학교를 소개하는 영상에는 다행히 한글 자막이 달려 있었다. 최근 영상순으로 확인해 보니 안타깝게도 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영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인생학교 유튜브 채널에서 다루는 영상의 주제는 인생학교가 다루는 질문의 수만큼 다양했다. 알기 쉬운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영상부터 분량이 좀 더 긴 강의 영상도 포함되어 있다.

 

인생학교의 활동을 번역한 책으로 접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책으로 엮기엔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으니 좀 더 빨리 접하고 싶은 분들은 홈페이지나 유튜브 채널을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상당수의 콘텐츠가 영어로 제공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책 얘기를 해야 하는데 서두가 길었다.

 

철학을 주제로 삼는 책 치곤 꽤나 발랄한 느낌이 드는 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힐링 에세이류 표지 같기도 하고, 심지어 187쪽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다. 적은 지면에 무려 40가지 철학적 질문을 담았다고 하니 어떤 책일지 더 궁금해졌다.

 

채널을 먼저 살펴본 것이 책이 이렇게 나온 것을 이해하는 데에 의외의 도움을 주었는데 바로 인생학교가 심오한 질문을 무겁지 않은 톤으로 전달하려 한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받으면 책장 전체를 휘리릭 훑어보고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 나름의 의례인데 처음 이 책을 훑어보고는 텍스트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파본을 받은 줄 알았다.

 

설마 그럴 리가, 이미지만으로 사유해 보라는 깊은 뜻인가? 혼자 별의별 추측을 하다 놀라서 다시 한 장 한 장 떼어서 살펴보니 사진과 사진 사이에 글이 놓여있었다.

 

책을 엮을 때 종이 방향의 영향인지, 아님 인쇄할 때부터 의도한 것인지, 모두 상관없이 내가 받은 책만 우연히 이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신기했다.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법

2. 불안에 흔들리지 않는 법

3. 관계에서 중심을 잡는 법

4.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법

 

각 장의 주제에 어울리는 질문을 제시하고 그 질문에 영감을 주는 철학 아이디어가 짧게 실려있다. 글보다 사진을 먼저 접했을 땐 특별한 의미 없이 어울리는 사진을 넣었을거라 생각했는데 글을 먼저 읽고 사진 페이지로 넘어가니 앞서 설명한 내용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이미지였다.

 

왜 이렇게 많은 사진을 그것도 양 페이지 가득 채워 넣었을까? 주된 텍스트 한 켠에 첨부로 삽입한 이미지가 아니라 텍스트 분량과 정확히 동일한 분량을 이미지가 차지하는 데는 그만한 편집 의도가 있을 것이다. 책 전체를 읽고 나니 빼곡한 텍스트로는 느낄 수 없는 전면 이미지가 주는 낯선 울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꿈틀거리는 질문을 곱씹은 후 책장을 넘겨 정적인 이미지와 마주하는 순간, 그 장면은 더는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라 사유가 뿌리 내릴 수 있는 장면이 된다. 글을 읽고 골똘히 생각한 만큼 이미지를 오래 응시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장면, 내 일상에서도 만날 법한 익숙한 장면들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보통 철학이라하면 까다롭고 장황한 이론과 꼬리를 무는 문답이 연상되는데 이 책을 통해 글과 말을 넘어 이미지 사유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인문학 책은 골치가 아프고 따분할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에게 우선 추천하고 싶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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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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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소한 이름이었다. 이 책을 선택하는 데는 사실 서문을 쓴 리베카 솔닛의 이름이 좀 더 결정적이었다. 어떤 이의 책이길래 그가 서문을 써주었을까 하고 흥미가 생겼다. 배리 로페즈의 책 중 한국어로 출간된 것은 2014년에 봄날의책에서 나온 『북극을 꿈꾸다』가 유일한데 그마저도 현재는 품절이다. (다행히 이 책이 나온 북하우스에서 『북극을 꿈꾸다』와 『호라이즌』이 나올 예정이다.) 

 

  지명도 생소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도시에서 생활하고 심지어 여행을 가도 타국의 도시만을 경유하는 현대인이라면 접하기 어려운 지역, 낯선 국가의 더 낯선 강과 시내의 이름들, 숲과 평원과 사막의 이름을 읽을 땐 어렴풋하게나마 연상되는 이미지가 없어서 언젠가 미디어를 통해 접한 재현된 자연에 의지해 읽어 나가야 했다. 내가 직접 볼 수 없을 숱한 생명체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독서 초반엔 이 낯섦 때문에 미로 중간에 놓인 기분이었다. 어떤 독자에겐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배리 로페즈가 2020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출간된 에세이 모음집이다. 표지의 부제처럼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을 담고 있다. 각 글이 쓰인 시기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시간 순으로 실은 것인지 분명하진 않다. 의도한 배치인지, 4개의 주제별로 나눈 글들의 순서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마지막 글에 다다랐을 때는 벅찬 기분마저 들었다.


그는 자기 시련이 이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구원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더 넓은 인식을 직조해냈다. 그런 관대함은 회고록이 어떤 글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사적 세계와 외부 세계가 한 호흡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지 어느 장편 회고록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시사했다.

배리 로페즈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2023, 북하우스) p.11 서문 중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사적 세계와 외부 세계가 한 호흡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지’에 밑줄을 그었다. 그 부분이 이 책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아볼 요량으로.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서문으로 돌아와보니 저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실린 글 들 중 <초대>(p.192~p198)가 가장 인상 깊었다.

 

  어떤 글을 ‘자연 에세이’라고 부를 때 자연의 범주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단순히 야생 동물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공간만을 상상할 수도 있다. 자연환경을 외부의 대상으로, 그것을 경험하는 나는 관찰자로 상정하고 쓴 글도 어색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펼치는 이야기는 그보다 더 확장된 자연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연을 통해 얻은 가르침이 결국 그것을 감각하는 신체, 곧 나의 몸 얘기로 연결되는 것이 놀라웠다.

 

  현대인의 피상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선주민과 보낸 대화가 필요 없는 시간에서 알게 된 깨달음. 왜 우리는 점점 더 빠른 피드백에, 더 빠른 정보의 공유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그 부산함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앎이란 종종 얼마나 얄팍한가. 그와 대비되는 기나긴 침묵과 오로지 누적된 경험과 감각으로 체득하는 지식의 존재. 우리는 그런 것을 기다릴 인내심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추천하고픈 독자

시간 있으시면 모두 읽어주세요 제발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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