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 10주년 개정증보판
오프라 윈프리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임』 선정 ‘20세기의 위대한 인물’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오른 오프라 게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에 대해 더 설명이 필요할까? 자신의 이름을 건 ‘오프라 윈프리 쇼’로 미국 TV 토크쇼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1954년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70세를 맞이했다. 이 책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은 정확히 10년 전, 그의 나이 예순에 처음 세상에 나왔다.



원제는 『What I Know For Sure』이고 한국어판 제목 역시 이를 그대로 옮긴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다. 제목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때는 1998년, 당시 오프라 윈프리가 출연한 영화 <빌러비드Beloved> 홍보차 영화평론가 진 시스켈을 만난다. 인터뷰 중 그에게 “당신이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오프라는 혼란에 빠진다. 결국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얼버무린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자리 잡는다.



그 후 오프라 윈프리는 『O매거진』에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14년간 연재했다. 긴 세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써온 글을 돌아보며 비로소 질문에 답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엮은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초판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2024년에 10주년 기념 증보판을 내며 2024년판 프롤로그와 에세이 ‘마음 씀Caring’이 추가되었다.



뛰어난 공감 능력으로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사람답게 책의 어조는 친근하다. 그의 영향력과 유명세에 비하면 꽤 소탈한 느낌이다. 자신이 삶에서 깨달은 것을 모은 에세이기에 자연히 자기계발 범주에 포함되지만 기업인들 사이에서 흔한 주제인 ‘성공’보다는 ‘행복’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삶과 행복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차례의 각 장 제목을 보고 나는 과연 이 중에서 확실히 아는 게 무엇일까 고민해 봤는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각 장의 제목 하나하나가 각각 책 한 권씩 쓸법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서 큰 화두들이었다.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어쩐지 매일 의식할 만큼 신경 쓰지는 않는, 가치를 잊고 지내기 쉬운 주제다.



힘든 시련과 상처를 극복해 온 여성 당사자의 입장에서 과거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상황에 지금 머물고 있을 미지의 여성들을 향해 용기의 말을 전한다. 인생의 기쁨을 찾는 법, 실패에 무릎 꿇지 않고 디딤돌 삼아 성장을 향해 도약하는 방법, 소외된 나를 되찾는 방법,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는 방법, 소중한 시간을 제대로 쓰는 법 등 오랜 세월 일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아낸 깨달음을 쉬운 언어로 전달한다.



느낌 좋은 문장이 주는 고양감에 취해 기분 전환 겸 자기계발서를 읽고는 곧장 책장을 덮고 만족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이 메시지에 접근하려는 독자는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이 서로 충돌하는 혼란 속에서 예기치 못한 난관에 처한다. 원대하게 꿈꾸되 너무 허황되면 안 된다, 너를 타인에게 온전히 내어주되 전부는 주지 마라, 지금 당장 네가 꿈꾸는 그 존재가 된 것처럼 행동하되 네 주제를 알아라처럼 모순되지는 않지만 까다로운 요구 앞에서 독자는 미묘하고 비좁은 중도의 길을 찾아야 하는 임무를 떠맡는다.



책을 다 읽을 무렵엔 오프라가 오랜 기간 마음에 품었던 질문이 자연스럽게 독자에게로 넘어온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전달했다. 독자는 단순히 증인이 되기 위해 책을 읽지 않는다. 결국 자기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모든 조언을 삶의 지침으로 삼을 순 없겠지만 오프라의 목록을 지도 삼아 내 인생에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나만의 목록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다.




[다른 점]

반짝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오랜 삶의 경험을 돌아보며 직접 찾아낸 이야기다.

무겁거나 지나치게 비장하지 않다.

독자를 겁주거나 깔보거나 협박하지 않는다.


[아쉬운 점]

자기계발서를 많이 접한 독자에겐 상투적이다.

부담 없이 다가오지만 휘발성도 강하다.

영성에 대한 부분은 독자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추천하고픈 독자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

거들먹거리는 자기계발서에 신물이 난 사람

워밍업 하듯 가볍게 읽을 책을 찾는 사람

일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한 사람

의존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여성


*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쓰기의 감각 -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 스티븐 핑커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인지, 언어, 사회 관계를 연구하며 인간의 마음과 언어, 본성과 관련한 연구와 대중 저술 활동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자 인지 과학자로 손꼽힌다. 대표작으로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빈 서판』, 『언어본능』,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지금 다시 계몽』 등이 있다. 책날개에 언급한 대표작 중 『이성이란 무엇인가』는 아직 국내 미출간 도서다.



이 책은 영어로 글을 쓸 줄은 알지만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 또한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조언을 구하지는 않지만 언어와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 언어는 어떤 상황에서 최선으로 기능하는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인간 정신을 연구하는 과학들이 어떤 도움을 주는가 하는 문제에 흥미가 있는 독자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18쪽


서론에서 저자는 “논픽션, 그중에서도 특히 명료함과 일관성을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장르에 초점을 맞출 것”(18쪽)이라고 저술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시간이 흐르면 언어는 변한다는 사실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의 낡은 글쓰기 지침서들을 비판하면서 옛 지침서들처럼 무턱대고 강권하지 않고 제시한 규칙이 어떤 효과를 달성하는지 그 근거를 알려주겠다고 강조한다.


영어 글쓰기에 관한 책이어서 한국어로도 겨우 글을 쓰는 내가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 의아했기에 먼저 옮긴이 후기부터 보았다. 옮긴이는 같은 작가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 2014)도 우리말로 옮겼는데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내용을 번역했을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잘 씀으로써 번역가를 도와주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630쪽)고 썼다. 이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꼈는데 스티븐 핑커가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의 ‘어법 패널’ 의장을 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니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옮긴이는 언어와 무관하게 모든 독자에게 도움이 될 내용으로 1~3장과 5장을 추천했고 그 중에서도 책의 핵심으로 2장과 3장을 꼽으며 ‘세상이 모든 작가에게 강제로라도 읽히고 싶은 내용’이라고 했다. 얼마나 날카로운 내용이기에 이런 말을 남긴 걸까. 궁금함과 기대를 품고 책장을 펼쳤다.




1장에서는 ‘나도 저 사람처럼 잘 쓰고 싶다’는 의욕을 일으킬만한 탁월한 글들을 살펴본다. 각각 좋은 점을 분석하고 마지막에는 해당 장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다. 1장의 서술 방식에서 이어질 나머지 장들의 구성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다. 다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끝에 저자가 해놨을 요점 정리를 기대하며 끈기를 발휘하게 된다.


이 저자들은 마치 우리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쓴다. (...) 이 저자들은 마치 우리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장면이 있는 것처럼 쓴다. 바로 이 점이, (...) 글쓰기의 감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59쪽



2장에서는 좋은 글을 쓰는 방법으로 고전적 글쓰기 스타일을 제안한다. 고전적 글쓰기 스타일? 그게 뭔데? 라고 되물을 독자를 위해 바로 설명이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쓰라는 것이다.”(66쪽) 그저 잘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글로 어떻게 보여주라는 거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또 다시 예시가 주어진다. 여기서는 전문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자의식 과잉 글쓰기의 폐해도 보여준다.



지식의 저주는 음흉하다. (...) 우리가 무언가를 잘 알면, 자신이 그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추상적인 형태로 생각하는지를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온 다른 사람들은 나만이 고유하게 겪어 온 추상화의 역사를 똑같이 겪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139쪽



3장은 지식의 저주에 압도된 나머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을 잊은 사람에게 유용한 해결 방법을, 4장은 분지도를 이용하여 복잡한 영어 구문을 이해하는 방법을 파헤친다. 5장은 이야깃거리와 말하고 싶은 바를 모두 갖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법을, 6장은 영어 글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문법, 단어 선택, 구두법 규칙을 설명한다.



핵심은 독자가 여러분만큼 수준 높고 지적이지만 어쩌다 보니 여러분이 아는 어떤 사실을 미처 모르는 상태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143쪽




4장~6장은 영어 문법 공부를 열심히 한 이들에겐 낯설지 않은 내용 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럼에도 개선한 쪽이 훨씬 명료하게 뜻이 파악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석될 여지가 여러 갈래인 예문들을 읽고 번역가의 고충을 아주아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일부러 다중 해석을 의도한 문장은 차치하고 저자가 자신의 의도를 망각한 채 세상에 내뱉은 애매한 문장은 정말이지 최악이라는 것을 거듭 실감했다.




500자면 충분한 최소 권장 분량을 훌쩍 넘어 시키지도 않았는데 3,000자를 쓰곤 하는 내 글쓰기와 견주어보며 내심 찔리는 구석도 많았다.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욕은 장황한 문장으로 이어질 때가 많고 정리하지 못한 욕심이 의도를 더욱 미궁 속에 감추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방금도 그런 짓을 또 한 것 같기도 하지만) 




몇몇 조언은 한국어 글쓰기 책에서 익히 봐 온 조언이었다. 소리 내어 읽어볼 것,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볼 것, 다른 이에게 읽어 봐 달라고 부탁할 것, 추상적인 표현과 전문용어를 피할 것, 문장 부호를 적절히 사용할 것 등. 언제 글을 쓰고 싶어질지 알 수 없지만 아직은 성실한 독자의 길을 걷고 싶은 내게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다고 느낀 문장은 “좋은 작가가 되는 출발점은 일단 좋은 독자가 되는 것이다.”(28쪽)였다.




추천하고픈 독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번역을 보면서 번역가만 원망했던 사람

알맹이는 없고 허울만 한 트럭인 뻥튀기 글에 낚여본 사람

생생하고 실감 나는 글을 쓰는 비법이 궁금했던 사람

영어일기 쓰기 챌린지를 하는 사람

설득력 있는 자료를 찾는 글쓰기 전문 강사




*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갑자기 막대한 부의 상속인이 된 어린 여성, 그를 착취하고 이용할 궁리만 하는 후견인, 그리고 예정된 부당한 결혼. 수도원에서 예정된 결혼식 전날 오만한 남작이 주검으로 발견된다. 바로 전날 그에게서 해고된 향사가 갑자기 도둑으로 지목되고 그는 사람들이 접근하길 꺼리는 장소에 몸을 숨긴다.


우연의 일치치곤 참으로 묘하게도 어린 신부를 곤혹스럽게 만든 이들만이 희생자가 된다. 그럼에도 살해 방법은 수수께끼고 진범의 행방 또한 묘연하다. 나환자들의 요앙소인 세인트자일스 병원에서 봉사하고 있던 마크 수사가 결정적인 증언으로 도망자의 누명을 벗는데 도움을 준다.


남다른 기운을 내뿜던 노인의 정체가 밝혀졌을 땐 한동안 잊힌 존재였다가 어느 날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영웅 신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자신의 유일한 혈육을 위한 마지막 일을 마치고 홀로 길을 떠나는 모습이 쓸쓸했지만 헤어짐 뒤에 이어지는 문장 덕분에 그의 뒷모습이 더욱 숭고하게 느껴졌다.



정해진 길을 따라 목적을 가지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이, 서두르지 않되 그렇다고 지체하지도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숙명과도 같았다.


엘리스 피터스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북하우스, 2024) 321쪽





책을 다 읽고 나서 출판사의 SNS 계정을 찾아보고 내가 놓친 정보가 있는 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래는 북하우스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 캐드펠 수사 시리즈 기본 판본과 다른 점 (출처 : 북하우스 공식 트위터)

1. 1권, 2권, 5권 제목을 영어 원제에 가깝게 바꿨습니다.

2. 시리즈 순서를 알기 쉽도록 각 도서에 번호를 붙였습니다.

3. 정확하면서도 잘 읽히도록 교열하면서 기존 판본의 오류들을 잡고, 인명/지명을 현재의 외래어표기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1번과 2번의 개선점이 마음에 든다. 특히 1권의 제목은 기존 제목보다 훨씬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어서 더 좋았다. 


(순서대로 구판 → 개정판) 

1권 『성녀의 유골』 →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2권 『99번째 주검』 →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5권 『죽음의 혼례』 →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3번의 개선 사항도 물론 환영한다. 하지만 오류가 종종 눈에 띄어 표지만 새로 입히고 원고 검토는 생략한 줄 알았다. 교열하면서 기존 오타를 놓친 것인지 이번 판에서 새로 발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정판의 옥에 티* 같아 아쉽다.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서 이 모든 걸 새로 반영한 판이 또 나왔으면 좋겠다.


* 작가소개의 연도 오류, 드라마 제작 방송국 불일치, 본문의 오탈자, 주석 누락, 중세 지도상의 표기와 본문 표기의 불일치 등



∎ 추천 사유 1 : 재밌으니까


시리즈물의 특성상 에피소드마다 완성도와 재미의 편차가 있을 법한데 다섯 권을 읽는 동안 그런 아쉬움은 느끼지 못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첫 권을 읽었을 때 싹튼 기대는 내내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다음 이야기를 읽을수록 점점 좋아졌다.



사람마다 자신이 선택한 소설에서 기대하는 바가 다르고 특히 취향을 많이 타는 장르라는 걸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떻게 구슬려도 ‘그 장르 내 취향 아님’으로 무장한 독자를 설득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은 권하고 싶다. 재밌으니까.



내가 이 장르를 처음 접했다는 점에서 비교 대상 자체가 없기에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재미의 본질을 핑계로 그냥 우기고 싶다. 재미만큼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권하고 싶다. 재밌으니까.




∎ 추천 사유 2 : 질문에서 해방


왜 좋았나? 정의는 살아있다는 이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진실에 불을 밝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희생자의 원한을 반드시 풀어주니까. 어릴 적 읽었던 전래동화도 이런 모양새였다. 꼬여있던 오해가 풀리고, 억울함이 해소되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남은 이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야기.



개운한 마무리가 오히려 약점일까? 결말이 깔끔해서 읽은 후에 사뭇 심란한 숙제**를 독자에게 남기지 않는다. 질문이 남지 않는 것, 독서 후 독자의 생각과 삶이 이전과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기준으로 진정한 독서의 가치를 논한다면 아마 순전히 오락의 기쁨만을 선사하는 소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다.


** 인간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사회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삶은 왜 모순으로 가득한지, 희망은 있을지 따위의 질문




그럼에도 우리는 늘 의미만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맘 편히 현재를 즐기는 순간도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순간을 함께하기에 좋은 책이다. 정형화된 결말이 식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 중요한 건 결말이 아니라 시종 우리는 붙드는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닐까.



다섯 편의 리뷰를 준비하면서 개정판의 다양한 부분을 조목조목 살펴보기 위해 노력했다. 구판과 달라진 점, 워크룸의 표지 디자인, 추리문학상과 저자가 해당 장르에서 차지하는 지위, 중세물의 클리셰, 독초에 관한 짧은 정보 등 겨우 맛보기로 찾아봤을 뿐이지만 스스로 찾아 정리했다는 데에 만족을 느낀다.



한때의 영광이 무색하게 그 명성이 후대의 독자까지 이어지지 않는 작품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시간의 검증을 거쳐 현대의 독자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놀라움을 준다. 허브향에 취해 여름밤을 새우던 나는 이제 오매불망 후속편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리뷰가 끝에 다다른 이 순간,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가 가장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 베드로 축일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권은 성 베드로 축일 전후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룬다. 축일장 전야, 축일장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축일장이 끝난 뒤까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터의 부산함과 왁자지껄함 속에서 일어난 도난과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밤에 일어난 살인 사건, 무언가를 찾는 듯 다음 표적을 찾는 범인의 목적과 정체는 아리송하고 캐드펠의 수사도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다.



에마의 행동과 증언은 어딘가 탐탁지 않은 구석이 있고 공교롭게도 희생자마저 그의 주변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가장 많은 희생자가 생겼지만 범인은 거의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었다. 불안한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철부지 같았던 필립이 결정적 증거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급진전을 보인다.



중세 지도 구석에 작게 그려진 선술집에서 머리를 맞대고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장면 이후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야욕에 사로잡힌 교활한 범인은 끝까지 욕심에 눈이 멀어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처음에 등장한 슈루즈베리 상인들과 수도원의 갈등도 원만하게 해결된다.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사고도 치고 활약도 펼친 필립은 자신이 첫 눈에 반한 사람의 든든한 짝이 된다.



친분도 없는데 지나치게 친절하게 구는 사람은 현실이든 소설에서든 역시 의심하고 봐야한다. 힘든 문제를 마주했을 때 지지는커녕 무작정 잊으라고 부추기거나 해결과는 동떨어진 곳으로 끌어당기며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사람도 경계해야 한다. 문제 인물의 유형을 파악하며 다음 이야기에서는 꼭 먼저 범인을 찾아내야지 생각하지만 아직은 쉽지 않다.





∎ 마시장 터 구석의 여인숙? 선술집?

마시장 터 구석에 위치한 월터 리널드의 여인숙에서 술잔이 오가며 이야기의 퍼즐이 맞춰지는 데 본문에선 이 이름의 애칭을 워트로 표기, 책의 앞에 수록된 중세 지도에는 같은 위치가 와트의 선술집으로 표기. 여인숙이 선술집도 겸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인물명은 일치시키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



∎ BBC 드라마 맞아요?

뒤표지에 BBC 드라마 〈캐드펠〉 원작이라는 문구가 있어 찾아보았다. DVD에는 총 13개 에피소드가 실려있고 지금도 구매 가능한 아마존 링크가 나온다. 근데 IMDb를 봐도 BBC가 아니라 ITV 제작 드라마로 나오는데 착오가 있었던 걸까? BBC랑 ITV랑 같은 곳인가? 설마 영국서 드라마화 되었다는 정보 하나만으로 BBC라고 적은 건 아니겠지? 궁금하니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 개정판 표지 디자인 대만족

서양 회화 속 인물의 눈을 과감하게 확대하여 실은 표지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텍스트 배치와 대담한 컬러 조합도 마음에 든다. 각 표지마다 3~4개의 테마 컬러를 사용하는데 그 중 하나는 표지를 펼치자마자 보이는 면지 컬러와 일치한다. 표지에서 받은 인상이 내부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디테일까지 고려하는 디자이너들이 정말 좋다!)



주요 색상 요소가 표지, 책등, 책날개, 면지까지 일관성 있게 배치되도록 신경 썼다. 그저 컬러 블록을 짜 맞춘 단순한 조각보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아름답다. 조각보라는 단어가 연상된 김에 생각을 확장해보면 이것 또한 책의 스토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뚜렷한 색상 대비로 선명하게 나뉜 구역, 반듯한 경계, 우회하는 곡선 하나 없이 직선으로만 구성된 화면이 주는 메시지를 떠올릴 수 있다. 명료함, 속도감, 타협하지 않음 등이 연상된다. 예리한 관찰과 추리로 사건을 풀어나가며 선과 악을 가리는 결말로 곧장 직진하는 추리 시리즈에 대한 해석으로 괜찮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미스터리인 시리즈 특성 또한 제대로 살렸다. 눈만 클로즈업 했을 뿐인데 어쩐지 인물마다 석연치 못한 구석이 있을 것 같고 의뭉스러운 수상함을 자아낸다. 처음 출판사 공식 홍보 이미지를 접하고 각 표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 보자마자 ‘이거 누구 디자인이야!’하고 찾아보니 워크룸이었다. 탁월한 선택이다.



*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7년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으로 시작한 캐드펠 시리즈의 3권 『수도사의 두건』은 1981년*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실버 대거 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1, 2권으로 기대가 점점 올라가는 상황에 상까지 수상한 작품이라니 한층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 책날개의 작가소개를 인용했는데 연도에 오류가 있는 것 같다. CWA 역대 수상자 목록을 검색하면 1980년 수상작으로 나온다.



이왕 추리문학상 얘기가 나온 김에 한번 찾아보았다. 영국 추리작가협회(The Crime Writers' Association)에서 수여하는 대거 상(Daggers Award)은 미국 추리작가협회(Mystery Writers of America)에서 수여하는 에드거 상(Edgar Award)**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추리문학상이다. 최우수 장편에 ‘골드 대거’를 수여한다. 1969년부터 2005년까지 준우승에 ‘실버 대거’를 수여했으나 이후 폐지되었다.


** 엘리스 피터스는 1963년 『죽음과 즐거운 여자』로 에드거 상도 수상한 바 있다.  



엘리스 피터스는 1993년 영국추리작가협회 평생공로상에 해당하는 Diamond Dagger를 받았다. Historical Dagger라는 부문이 있어 더 알아보니 익숙한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CWA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1977-1994)로 역사 미스터리 장르를 대중화한 것으로 평가받는 엘리스 피터스를 기념하여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그의 이름을 딴 Ellis Peters Historical Dagger를 수여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는 Ellis Peters Historical Award로 불렸고 현재는 CWA Historical Dagger라는 이름으로 수여하고 있다.




해당 기간의 수상작을 검색하면 작품 표지 사진 아래 ‘Estate of Ellis Peters’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폰서가 바뀔 때마다 이름이 자주 변경되는 대거 상의 특성상 이전 명칭을 따로 표기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후 영미권 역사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면 Historical Dagger 수상 목록을 참고해도 좋겠다. thecwa.co.uk/past-winners에서 검색할 수 있다.





독살에 주로 쓰이는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추리소설 애독자라면 3권의 제목만 보고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물론 나는 지식이 전무했기에 이번에 새로 알게 되었다. 수도사의 두건(monk's hood)은 그 생김새를 본떠 붙인 풀의 이름이다. 한국어로도 투구 모양을 닮았다하여 투구꽃이라 부른다. 



캐드펠이 ‘수도사의 두건’ 뿌리로 만든 약물이 이번 살인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독살 당한 영주를 중심으로 이권이 얽힌 인물들이 하나둘 소환된다. 음흉한 제롬 수사와 성질 급한 행정관이 사사건건 캐드펠의 추리를 가로 막지만 이번에도 적절한 탈출 기회를 만나는 주인공은 범인과의 거리를 좁혀간다. 



3권의 배경은 1138년 12월이다. 2권에서 만난 인물과의 반가운 재회도 있고 로버트 부수도원장의 코가 납작해지는 반전도 있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사건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급박하게 전개된다. 양 떼를 몰던 캐드펠이 헛간에서 범인의 진실을 들은 후 내리는 마지막 선택의 순간과 크리스마스 아침에 맞이하는 평화로운 정경의 대비가 극적이다.



이번에도 살인 사건은 무사히 해결되고 죄인은 스스로 회개할 자유를 얻는다.  정말이지 모두가 기쁘고 축복받는, 누구도 괴롭지 않은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동화가 연상된다. 그날 아침에는 결국 모두 웃게 되는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결말에 다다른 후에야 왜 이 작품이 수상작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짙은 허브향과 겁 없이 투닥투닥 장난치는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에피소드다.



∎ 3권에서 찾은 옥에 티

195쪽 9행, 열한 살 소녀가 오기는 모습을 → 오가는 모습을

248쪽 18행, 고개를 숙이 뒤 → 숙인

313쪽 13행, 오아인 귀네드 26번 주석 누락 → 1권의 오아인 왕자, 2권의 오아인 귀네드를 참고할 것 



*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