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피
나연만 지음 / 북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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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스토리 대상은 OSMU(One Source-Multi Use)가 가능한 원천 스토리를 발굴하기 위한 교보문고의 IP 사업 중 하나다. 기성 작가와 신인 불문 응모 자격에 제한이 없고 장르와 내용에도 제한이 없으며 심지어 미완결 작품도 응모 가능하다. 가산점 부여 기준 중 하나인 '영화, 드라마, 웹툰 등 2차 콘텐츠로 발전 가능한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상업성을 만족하는지, 사람들을 사로잡을 만한 오락성을 갖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는 공모전이다. 







공모전의 존재는 알았지만 장르물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아 부러 찾아보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다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작품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재미있어 믿고 본다'는 내용의 댓글을 우연히 보고는 관심이 생겼다. 『돼지의 피』는 202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소설 「까치」로 등단한 나연만의 장편소설로 2023년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최근에 유유에서 나온 『충청의 말들』을 보고 흥미가 동해 다음에 볼 책으로 찜해두었는데 마침 같은 저자여서 궁금했다.











제목에서부터 강조하는 '피'의 이미지와 뒤표지의 소개 글을 먼저 읽고 느낀 이 책의 첫인상은 '읽기 두렵다'였다. 잔인한 장면을 잘 보지 못해 영화에서도 공포나 스릴러는 기를 쓰고 피하는 편이라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영상보단 문자는 덜 힘들겠지 생각하며 책장을 펼쳤고, 완독한 후의 소감은 '후반부로 갈수록 긴박하게 전개되는 속도가 매력적이나 만약 영상화된다면 나는 못 볼 것 같다.'이다. 사실 1부 첫 장부터 만만치 않았다. 부연 없이 숨 막히는 장면 한가운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촉발된 궁금증은 스토리의 마지막까지 긴장감 있게 유지되어 중도 하차를 할 수가 없다. 



비밀의 타래를 풀어나가는 재미는 확실하지만 연쇄 살인의 피의자와 그 추격자 간의 대립과 갈등 상황은 조금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비밀을 발견하는 과정도 조각조각 단서만 늘어놓을 뿐 캐릭터의 심리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워 전반적으로 이야기 자체가 거친 스케치 같기도 했다. 장면 장면은 눈앞에 그려질 듯 강렬하지만 캐릭터 각각의 매력도 미묘하게 평이하다. 공모전의 목적에는 확실히 부합하는 스토리이지만 손에 땀을 쥐며 2시간을 앉아있었지만 상영관을 빠져나오면 '그 영화 봤다' 말고는 별다른 감상이 남지 않는 영화를 보고 난 기분과 흡사했다.




*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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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몸값 캐드펠 수사 시리즈 9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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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에 나온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1~5권에 이어 이번에 6~10권이 나왔다. 다섯 권 모두 멈출 수 없는 재미를 선사했기에 나머지 시리즈가 어서 나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이번엔 9권 『죽은 자의 몸값』을 읽었다.



왕권을 둘러싼 스티븐 국왕 측과 모두 황후 측의 내전이 계속되던 1141년 2월, 전투 중 슈롭셔의 행정 장관이 포로로 붙잡히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오아인 귀네드의 동생은 웨일스인 무리를 이끌고 약탈을 일삼는다. 5권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에 등장한 손베리의 어바이스는 이제 매그덜린 수녀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포로를 데리고 캐드펠을 찾아온다.



행정보좌관 휴 베링어는 신속히 포로 교환을 추진하지만 갑자기 포로 중 한 명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포로들에게 크고 작은 원한을 품고 있던 과거의 인연들과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둔 사연들이 쏟아져 나오며 범인을 찾으려는 독자의 추리에 혼란을 일으킨다. 많은 사건을 해결하며 신뢰를 얻은 캐드펠 수사가 다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다.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는 세심한 관찰력은 이번에도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죽은 자의 몸값’은 목숨으로 갚는 게 과연 맞을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용서가 과연 무엇인지, 제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멜리센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만 한 사람의 선행을 모두 합쳐도, 그 양이 아무리 엄청나다 해도, 그가 저지른 단 한 번의 죄악을 덮을 수 없다는 서글픈 논리가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세상의 손실이기도 하죠. 그리고 전 더 이상의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충분해요. 또 다른 죽음을 부른다고 먼젓번 죽음이 치유될 수는 없죠.”

엘리스 피터스 『죽은 자의 몸값』 (북하우스, 2024) 339쪽



“(...) 참회에 대해선, 그 자신이 이미 깊이 뉘우치고 있으니 일평생 그 마음을 간직하고 살 걸세. 자네든 다른 누구든 그에게 강요할 수 있는 건 그저 죽음뿐, 마음의 짐은 그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법이지. (...)”

엘리스 피터스 『죽은 자의 몸값』 (북하우스, 2024) 342쪽


24년 8월에 개정판 1~5권이 나온 뒤 두 달 만에 6~10권이 세상에 나왔다. 이 시리즈가 다시 나오길 기다린 애독자 뿐만 아니라 평소 책 욕심이란 없던 사람도 어쩐지 소장욕을 자극하는 시리즈 10권 박스 셋도 판매 중이다. 먼저 1~5권 세트를 산 사람은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격 혜택에 차이가 있다.  이런 시리즈는 전권 나온 뒤에도 박스 셋이 나올 테니 전집 모으기를 목표로 한다면 완간까지 기다려보는 것도 좋겠다.



*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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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역사 - 알지 못하거나 알기를 거부해온 격동의 인류사
피터 버크 지음, 이정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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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 유럽에 관한 혁신적인 주제와 연구 방법론으로 문화사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피터 버크는 1937년 런던 출생으로 예수회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서식스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강의했고 현재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이매뉴얼 칼리지 종신 석학교수다. 국내에 먼저 소개된 책으로는 『폴리매스』, 『지식의 사회 1·2』, 『지식은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하는가』, 『문화 혼종성』, 『문화사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무지가 유용하다는 주장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결국 ‘누구에게 유용한 것인가?’라는 통찰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무지의 부정적인 면이 긍정적인 면보다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터 버크 『무지의 역사』 (한국경제신문, 2024) 21쪽



『무지의 역사』는 부제처럼 ‘알지 못하거나 알기를 거부해온 격동의 인류사’를 이야기한다. 책은 1부 사회의 무지와 2부 무지의 결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인간 사회에 자리한 무지를 살펴본다. 무지의 종류, 철학자들의 견해, 개인의 무지와 집단의 무지, 무지의 연구, 종교·과학·지리학의 무지 등 무지의 역사를 다룬다. 2부에서는 전쟁·비즈니스·정치 분야에서 찾을 수 있는 실패의 흑역사를 줄줄이 나열하며 저자가 앞서 언급한 무지의 부정적인 면들을 낱낱이 보여준다.



무지의 사회학은 ‘누가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지하다. 다만 무지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독자들은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이 명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피터 버크 『무지의 역사』 (한국경제신문, 2024) 24쪽



역사란 반복되어서는 안 될 흑역사를 갈무리한 부분이 많고 흑역사란 필연적으로 무지와 떼려야 뗄 수 없기에 서구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 상당수가 예시로 등장한다. 대부분은 시간 순으로 끌고 가지만 주제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서술도 있어 읽다가 집중을 잃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어리석은 와중에도 용케 여태 생존해 왔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든다. 인류의 역사가 그동안 얼마나 허접하게, 근근이 이어져 왔는지를 깨닫고 겸손해지기까지 한다. 치명적인 재앙을 피하기 위해 과거를 거울 삼아 현재의 무지를 돌아보기에도 바쁜 와중에 안타까운 점은 지금도 이런 무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한 의사결정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오만으로 무장한 무지는 여전하다.



정보가 너무 없어도 문제고(소문, 음모) 정보가 너무 많아도 문제(필터링)라는 부분에서도 무지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는 것에서 조금 답답해지기도 했다. 모든 걸 안다고 해서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긴 한가? 애초에 안다는 것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안다는 것인가? 무지가 말끔히 해소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결정이란 없으니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인용이 많은 만큼 각주의 양도 상당한데 언급한 책들 중 한국어로 번역된 책의 제목도 함께 실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애당초 이런 주제에 흥미를 가질 독자라면 각주를 그냥 넘길 리 없을 텐데 왜 이렇게 실었을까? 출간 일정상 시간이 없어서 생략한 것인지, 알고도 굳이 전부 실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여 싣지 않은 것인지, 이런 부분에서 깊은 아쉬움을 느낄 독자를 고려하지 못한 편집부의 무지 탓인지?



서구 역사 속의 의도적 무지를 접하고 보니 우리 역사 속에서 이와 같은 무지에 파묻힐 위기에 처한 사건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환기시킨 무지의 영역. 광주 5.18과 제주 4.3처럼,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더 가깝게는 이태원 참사와 같이 무지가 초래하고 무지로 은폐하려 하는 사건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책이었다.




추천하고픈 독자

피터 버크의 책을 접한 적 있는 독자

무지의 종류가 많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사람

가짜 뉴스나 왜곡된 진실 등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

우리 역사 속 의도적 무지에 대해 고찰해 보고 싶은 사람

인간은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궁금한 사람




*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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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 10주년 개정증보판
오프라 윈프리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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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선정 ‘20세기의 위대한 인물’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오른 오프라 게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에 대해 더 설명이 필요할까? 자신의 이름을 건 ‘오프라 윈프리 쇼’로 미국 TV 토크쇼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1954년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70세를 맞이했다. 이 책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은 정확히 10년 전, 그의 나이 예순에 처음 세상에 나왔다.



원제는 『What I Know For Sure』이고 한국어판 제목 역시 이를 그대로 옮긴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다. 제목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때는 1998년, 당시 오프라 윈프리가 출연한 영화 <빌러비드Beloved> 홍보차 영화평론가 진 시스켈을 만난다. 인터뷰 중 그에게 “당신이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오프라는 혼란에 빠진다. 결국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얼버무린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자리 잡는다.



그 후 오프라 윈프리는 『O매거진』에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14년간 연재했다. 긴 세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써온 글을 돌아보며 비로소 질문에 답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엮은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초판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2024년에 10주년 기념 증보판을 내며 2024년판 프롤로그와 에세이 ‘마음 씀Caring’이 추가되었다.



뛰어난 공감 능력으로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사람답게 책의 어조는 친근하다. 그의 영향력과 유명세에 비하면 꽤 소탈한 느낌이다. 자신이 삶에서 깨달은 것을 모은 에세이기에 자연히 자기계발 범주에 포함되지만 기업인들 사이에서 흔한 주제인 ‘성공’보다는 ‘행복’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삶과 행복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차례의 각 장 제목을 보고 나는 과연 이 중에서 확실히 아는 게 무엇일까 고민해 봤는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각 장의 제목 하나하나가 각각 책 한 권씩 쓸법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서 큰 화두들이었다.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어쩐지 매일 의식할 만큼 신경 쓰지는 않는, 가치를 잊고 지내기 쉬운 주제다.



힘든 시련과 상처를 극복해 온 여성 당사자의 입장에서 과거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상황에 지금 머물고 있을 미지의 여성들을 향해 용기의 말을 전한다. 인생의 기쁨을 찾는 법, 실패에 무릎 꿇지 않고 디딤돌 삼아 성장을 향해 도약하는 방법, 소외된 나를 되찾는 방법,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는 방법, 소중한 시간을 제대로 쓰는 법 등 오랜 세월 일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아낸 깨달음을 쉬운 언어로 전달한다.



느낌 좋은 문장이 주는 고양감에 취해 기분 전환 겸 자기계발서를 읽고는 곧장 책장을 덮고 만족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이 메시지에 접근하려는 독자는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이 서로 충돌하는 혼란 속에서 예기치 못한 난관에 처한다. 원대하게 꿈꾸되 너무 허황되면 안 된다, 너를 타인에게 온전히 내어주되 전부는 주지 마라, 지금 당장 네가 꿈꾸는 그 존재가 된 것처럼 행동하되 네 주제를 알아라처럼 모순되지는 않지만 까다로운 요구 앞에서 독자는 미묘하고 비좁은 중도의 길을 찾아야 하는 임무를 떠맡는다.



책을 다 읽을 무렵엔 오프라가 오랜 기간 마음에 품었던 질문이 자연스럽게 독자에게로 넘어온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전달했다. 독자는 단순히 증인이 되기 위해 책을 읽지 않는다. 결국 자기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모든 조언을 삶의 지침으로 삼을 순 없겠지만 오프라의 목록을 지도 삼아 내 인생에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나만의 목록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다.




[다른 점]

반짝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오랜 삶의 경험을 돌아보며 직접 찾아낸 이야기다.

무겁거나 지나치게 비장하지 않다.

독자를 겁주거나 깔보거나 협박하지 않는다.


[아쉬운 점]

자기계발서를 많이 접한 독자에겐 상투적이다.

부담 없이 다가오지만 휘발성도 강하다.

영성에 대한 부분은 독자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추천하고픈 독자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

거들먹거리는 자기계발서에 신물이 난 사람

워밍업 하듯 가볍게 읽을 책을 찾는 사람

일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한 사람

의존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여성


*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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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감각 -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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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스티븐 핑커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인지, 언어, 사회 관계를 연구하며 인간의 마음과 언어, 본성과 관련한 연구와 대중 저술 활동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자 인지 과학자로 손꼽힌다. 대표작으로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빈 서판』, 『언어본능』,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지금 다시 계몽』 등이 있다. 책날개에 언급한 대표작 중 『이성이란 무엇인가』는 아직 국내 미출간 도서다.



이 책은 영어로 글을 쓸 줄은 알지만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 또한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조언을 구하지는 않지만 언어와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 언어는 어떤 상황에서 최선으로 기능하는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인간 정신을 연구하는 과학들이 어떤 도움을 주는가 하는 문제에 흥미가 있는 독자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18쪽


서론에서 저자는 “논픽션, 그중에서도 특히 명료함과 일관성을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장르에 초점을 맞출 것”(18쪽)이라고 저술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시간이 흐르면 언어는 변한다는 사실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의 낡은 글쓰기 지침서들을 비판하면서 옛 지침서들처럼 무턱대고 강권하지 않고 제시한 규칙이 어떤 효과를 달성하는지 그 근거를 알려주겠다고 강조한다.


영어 글쓰기에 관한 책이어서 한국어로도 겨우 글을 쓰는 내가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 의아했기에 먼저 옮긴이 후기부터 보았다. 옮긴이는 같은 작가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 2014)도 우리말로 옮겼는데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내용을 번역했을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잘 씀으로써 번역가를 도와주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630쪽)고 썼다. 이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꼈는데 스티븐 핑커가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의 ‘어법 패널’ 의장을 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니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옮긴이는 언어와 무관하게 모든 독자에게 도움이 될 내용으로 1~3장과 5장을 추천했고 그 중에서도 책의 핵심으로 2장과 3장을 꼽으며 ‘세상이 모든 작가에게 강제로라도 읽히고 싶은 내용’이라고 했다. 얼마나 날카로운 내용이기에 이런 말을 남긴 걸까. 궁금함과 기대를 품고 책장을 펼쳤다.




1장에서는 ‘나도 저 사람처럼 잘 쓰고 싶다’는 의욕을 일으킬만한 탁월한 글들을 살펴본다. 각각 좋은 점을 분석하고 마지막에는 해당 장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다. 1장의 서술 방식에서 이어질 나머지 장들의 구성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다. 다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끝에 저자가 해놨을 요점 정리를 기대하며 끈기를 발휘하게 된다.


이 저자들은 마치 우리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쓴다. (...) 이 저자들은 마치 우리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장면이 있는 것처럼 쓴다. 바로 이 점이, (...) 글쓰기의 감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59쪽



2장에서는 좋은 글을 쓰는 방법으로 고전적 글쓰기 스타일을 제안한다. 고전적 글쓰기 스타일? 그게 뭔데? 라고 되물을 독자를 위해 바로 설명이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쓰라는 것이다.”(66쪽) 그저 잘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글로 어떻게 보여주라는 거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또 다시 예시가 주어진다. 여기서는 전문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자의식 과잉 글쓰기의 폐해도 보여준다.



지식의 저주는 음흉하다. (...) 우리가 무언가를 잘 알면, 자신이 그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추상적인 형태로 생각하는지를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온 다른 사람들은 나만이 고유하게 겪어 온 추상화의 역사를 똑같이 겪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139쪽



3장은 지식의 저주에 압도된 나머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을 잊은 사람에게 유용한 해결 방법을, 4장은 분지도를 이용하여 복잡한 영어 구문을 이해하는 방법을 파헤친다. 5장은 이야깃거리와 말하고 싶은 바를 모두 갖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법을, 6장은 영어 글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문법, 단어 선택, 구두법 규칙을 설명한다.



핵심은 독자가 여러분만큼 수준 높고 지적이지만 어쩌다 보니 여러분이 아는 어떤 사실을 미처 모르는 상태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143쪽




4장~6장은 영어 문법 공부를 열심히 한 이들에겐 낯설지 않은 내용 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럼에도 개선한 쪽이 훨씬 명료하게 뜻이 파악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석될 여지가 여러 갈래인 예문들을 읽고 번역가의 고충을 아주아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일부러 다중 해석을 의도한 문장은 차치하고 저자가 자신의 의도를 망각한 채 세상에 내뱉은 애매한 문장은 정말이지 최악이라는 것을 거듭 실감했다.




500자면 충분한 최소 권장 분량을 훌쩍 넘어 시키지도 않았는데 3,000자를 쓰곤 하는 내 글쓰기와 견주어보며 내심 찔리는 구석도 많았다.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욕은 장황한 문장으로 이어질 때가 많고 정리하지 못한 욕심이 의도를 더욱 미궁 속에 감추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방금도 그런 짓을 또 한 것 같기도 하지만) 




몇몇 조언은 한국어 글쓰기 책에서 익히 봐 온 조언이었다. 소리 내어 읽어볼 것,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볼 것, 다른 이에게 읽어 봐 달라고 부탁할 것, 추상적인 표현과 전문용어를 피할 것, 문장 부호를 적절히 사용할 것 등. 언제 글을 쓰고 싶어질지 알 수 없지만 아직은 성실한 독자의 길을 걷고 싶은 내게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다고 느낀 문장은 “좋은 작가가 되는 출발점은 일단 좋은 독자가 되는 것이다.”(28쪽)였다.




추천하고픈 독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번역을 보면서 번역가만 원망했던 사람

알맹이는 없고 허울만 한 트럭인 뻥튀기 글에 낚여본 사람

생생하고 실감 나는 글을 쓰는 비법이 궁금했던 사람

영어일기 쓰기 챌린지를 하는 사람

설득력 있는 자료를 찾는 글쓰기 전문 강사




*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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