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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감각 -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스티븐 핑커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인지, 언어, 사회 관계를 연구하며 인간의 마음과 언어, 본성과 관련한 연구와 대중 저술 활동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자 인지 과학자로 손꼽힌다. 대표작으로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빈 서판』, 『언어본능』,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지금 다시 계몽』 등이 있다. 책날개에 언급한 대표작 중 『이성이란 무엇인가』는 아직 국내 미출간 도서다.
이 책은 영어로 글을 쓸 줄은 알지만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 또한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조언을 구하지는 않지만 언어와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 언어는 어떤 상황에서 최선으로 기능하는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인간 정신을 연구하는 과학들이 어떤 도움을 주는가 하는 문제에 흥미가 있는 독자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18쪽
서론에서 저자는 “논픽션, 그중에서도 특히 명료함과 일관성을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장르에 초점을 맞출 것”(18쪽)이라고 저술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시간이 흐르면 언어는 변한다는 사실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의 낡은 글쓰기 지침서들을 비판하면서 옛 지침서들처럼 무턱대고 강권하지 않고 제시한 규칙이 어떤 효과를 달성하는지 그 근거를 알려주겠다고 강조한다.
영어 글쓰기에 관한 책이어서 한국어로도 겨우 글을 쓰는 내가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 의아했기에 먼저 옮긴이 후기부터 보았다. 옮긴이는 같은 작가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 2014)도 우리말로 옮겼는데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내용을 번역했을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잘 씀으로써 번역가를 도와주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630쪽)고 썼다. 이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꼈는데 스티븐 핑커가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의 ‘어법 패널’ 의장을 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니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옮긴이는 언어와 무관하게 모든 독자에게 도움이 될 내용으로 1~3장과 5장을 추천했고 그 중에서도 책의 핵심으로 2장과 3장을 꼽으며 ‘세상이 모든 작가에게 강제로라도 읽히고 싶은 내용’이라고 했다. 얼마나 날카로운 내용이기에 이런 말을 남긴 걸까. 궁금함과 기대를 품고 책장을 펼쳤다.
1장에서는 ‘나도 저 사람처럼 잘 쓰고 싶다’는 의욕을 일으킬만한 탁월한 글들을 살펴본다. 각각 좋은 점을 분석하고 마지막에는 해당 장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다. 1장의 서술 방식에서 이어질 나머지 장들의 구성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다. 다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끝에 저자가 해놨을 요점 정리를 기대하며 끈기를 발휘하게 된다.
이 저자들은 마치 우리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쓴다. (...) 이 저자들은 마치 우리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장면이 있는 것처럼 쓴다. 바로 이 점이, (...) 글쓰기의 감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59쪽
2장에서는 좋은 글을 쓰는 방법으로 고전적 글쓰기 스타일을 제안한다. 고전적 글쓰기 스타일? 그게 뭔데? 라고 되물을 독자를 위해 바로 설명이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쓰라는 것이다.”(66쪽) 그저 잘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글로 어떻게 보여주라는 거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또 다시 예시가 주어진다. 여기서는 전문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자의식 과잉 글쓰기의 폐해도 보여준다.
지식의 저주는 음흉하다. (...) 우리가 무언가를 잘 알면, 자신이 그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추상적인 형태로 생각하는지를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온 다른 사람들은 나만이 고유하게 겪어 온 추상화의 역사를 똑같이 겪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139쪽
3장은 지식의 저주에 압도된 나머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을 잊은 사람에게 유용한 해결 방법을, 4장은 분지도를 이용하여 복잡한 영어 구문을 이해하는 방법을 파헤친다. 5장은 이야깃거리와 말하고 싶은 바를 모두 갖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법을, 6장은 영어 글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문법, 단어 선택, 구두법 규칙을 설명한다.
핵심은 독자가 여러분만큼 수준 높고 지적이지만 어쩌다 보니 여러분이 아는 어떤 사실을 미처 모르는 상태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사이언스북스, 2024), 143쪽
4장~6장은 영어 문법 공부를 열심히 한 이들에겐 낯설지 않은 내용 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럼에도 개선한 쪽이 훨씬 명료하게 뜻이 파악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석될 여지가 여러 갈래인 예문들을 읽고 번역가의 고충을 아주아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일부러 다중 해석을 의도한 문장은 차치하고 저자가 자신의 의도를 망각한 채 세상에 내뱉은 애매한 문장은 정말이지 최악이라는 것을 거듭 실감했다.
500자면 충분한 최소 권장 분량을 훌쩍 넘어 시키지도 않았는데 3,000자를 쓰곤 하는 내 글쓰기와 견주어보며 내심 찔리는 구석도 많았다.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욕은 장황한 문장으로 이어질 때가 많고 정리하지 못한 욕심이 의도를 더욱 미궁 속에 감추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방금도 그런 짓을 또 한 것 같기도 하지만)
몇몇 조언은 한국어 글쓰기 책에서 익히 봐 온 조언이었다. 소리 내어 읽어볼 것,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볼 것, 다른 이에게 읽어 봐 달라고 부탁할 것, 추상적인 표현과 전문용어를 피할 것, 문장 부호를 적절히 사용할 것 등. 언제 글을 쓰고 싶어질지 알 수 없지만 아직은 성실한 독자의 길을 걷고 싶은 내게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다고 느낀 문장은 “좋은 작가가 되는 출발점은 일단 좋은 독자가 되는 것이다.”(28쪽)였다.
추천하고픈 독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번역을 보면서 번역가만 원망했던 사람
알맹이는 없고 허울만 한 트럭인 뻥튀기 글에 낚여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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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일기 쓰기 챌린지를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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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이북 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